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전면적이고 영구적인 접근권을 얻기 위해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그린란드를 매입해 미국령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불러 일으켰다. 그는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며 파병한 유럽 8개국에 추가 관세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1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그린란드에 대해 "미래 합의의 틀을 마련했다"며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철회했다. 22일엔 폭스 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그린란드에 아무런 대가 없이 전면적이고 영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유럽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결국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을 괜히 병합하겠다고 큰 소리치다 오랜 군사적, 경제적 동맹이던 유럽과의 관계를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그린란드 전략은 또 한 번의 타코(TACO·트럼프는 늘 뒤로 물러난다) 사례로 실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궁극의 거래 해결사"로 자처해 왔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그린란드 도박에서도 자신이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그린란드에 대한 전면적이고 영구적인 접근권을 얻는다면 그린란드를 통해 원했던 두 가지, 즉 러시아와 중국의 북극 진출을 막는 것과 그린란드에 매장돼 있는 희토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어서다.
애초에 그린란드 소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적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는 늘 최대한의 요구를 던지고 상대의 반응과 시장의 움직임을 관찰한 뒤 조정한다. 처음부터 그린란드 문제에 전통적인 외교법으로 접근했다면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미국도 적지 않은 양보를 하며 비용을 치러야 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2일 폭스 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현재 협상 중인 그린란드에 대한 전면적이고 영구적인 접근권을 얻는 대가로 "미국은 아무것도 지불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의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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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간과한 것이 있다. 미국은 이미 그린란드 소유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 대한 신뢰 하락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특히 국채에 투자하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에는 미국에 대한 신뢰가 있다. 이런 믿음이 미국 달러와 국채를 금에 버금가는 안전자산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미국 달러와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부터 미세하게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그린란드 문제로 유럽에 추가 관세 부과를 위협하자 지난 20일에도 안전자산인 금 가격은 올랐지만 미국 국채와 달러는 주식과 함께 일제히 떨어졌다.
미국이 글로벌 무역전쟁과 정책 불확실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위기 때 미국 국채와 달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표면적인 입장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21일 유럽 기관투자가들이 미국 국채를 매도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며 "미국 국채 입찰을 보면 해외 자금 유입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베선트 장관의 말이 맞기는 하다. 지난해 미국의 상호관세 폭풍이 휩쓸고 간 뒤에도 '셀 아메리카'(Sell America)는 본격화하지 않았고 미국으로의 글로벌 자금 유입은 계속됐다. 이에 대해 코넬대 무역정책 및 경제학 교수인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배런스와 인터뷰에서 "국제 금융면에서는 모든 것이 상대적"인데 "상대적으로 미국 투자는 여전히 가장 유망한 선택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 쌓이면 미국 투자의 상대적 우위도 계속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세계 최대의 채권 운용사인 핌코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댄 이바신은 지난주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때문에 미국 자산에서 벗어난 분산 투자를 진행 중이며 이 과정은 수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의 실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동안 탈 아메리카라는 거대한 자산 이동은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누적된 효과가 언젠가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