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가 간 갈등 해결 수단으로 전쟁이 빈발하면서 국제사회의 오랜 평화기가 저물고 다시금 전쟁의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력으로만 평가되던 국력도 군사력 없이는 무용지물이라는 인식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각국이 서둘러 국방비를 증액하고 군사력 강화에 힘쓰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전쟁을 예방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정보력도 매우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전쟁', 즉 정보전의 중요성은 고대부터 강조되었지만 현대전에서는 그 비중이 급격히 커졌으며, 정보기관의 역할이 전쟁 수행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미국·이스라엘-이란의 전쟁은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만 아니라 정보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보기관들은 러시아의 침공 계획을 사전에 공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대응을 유도하고, 러시아의 기습 효과를 상당 부분 무력화했다. 정보의 '보안'이 아니라 '공개'가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또한 서방이 지원한 위성정보, 신호정보(SIGINT), 사이버 정보가 전장의 흐름을 좌우했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의 뛰어난 휴민트(HUMINT, 인간 정보) 능력도 미국 CIA와 영국 MI6의 도움으로 훈련된 공작 역량에 기반한 것이다.
가자지구 전쟁에서는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해 충격을 주었다. 관련 첩보가 있었는데도 정보 판단과 대응 실패로 치명적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반면에 전쟁 발발 이후에는 정밀 표적 정보를 지원할 뿐 아니라, 장기 공작을 통해 미리 투입해 둔 헤즈볼라 전투원들의 무전기와 무선호출기를 일시에 폭발시켜 전투력을 상실케 하는 등 기발한 정보전 능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란 전쟁에서도 정보전이 중심에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전쟁 초기에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이란 정부지도부, 군 장성, 핵 과학자들을 핀셋 제거했으며, 이란 내부에 구축해 둔 스파이망을 가동해 내부에서 드론 공격을 감행하는 등 준비된 정보전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미국은 위성, 레이더, 감청 등 방대한 정보를 AI로 통합 분석해 표적을 식별하고 타격 무기와 연동해 놀라운 속도로 작전을 수행, AI의 실전 능력을 과시했다. 현대전에서 정보기관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전쟁을 억제하거나 대비하기 위한 사전 정보활동이다. 적의 의도와 능력을 정확히 파악해 정책 결정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대비책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는 전쟁 수행 과정에서의 실시간 정보 지원이다. 정밀 타격, 심리전, 사이버전 등 모든 군사 활동은 정보 없이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정보 실패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정보 우위는 전쟁을 억제하거나 승리로 이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활동이 평소 국민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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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국가 정보기관이 강한 정보력을 가지려면 국민의 정보전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신냉전이라 불리는 오늘날의 국제 환경에서 보이지 않는 정보력이야말로 우리의 일상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핵심 축이라는 것을 국민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