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년 초, 월가(Wall Street)에 새로운 공포가 덮쳤다. 단 몇 주 만에 글로벌 SaaS 기업들의 주가가 평균 35% 급락한 것이다. SaaS(Software as a Service,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란 클라우드 환경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서비스 모델이다. 한 번에 큰 비용을 내고 구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매달 또는 매년 사용료를 지불하는 구독형 모델(Subscription)이 일반적이다.
세일즈포스(Salesforce), 워크데이(Workday), 서비스나우(ServiceNow) 같은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매도 폭탄을 맞았다. 시장의 공포에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라는 이름도 만들어졌다. SaaS와 Apocalypse(종말)의 합성어다. 사스포칼립스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앤트로픽(Anthropic)이 클로드 코드(Claude Code)와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를 공개하고, OpenAI의 에이전트 기능이 고도화된 금년 1월부터다. 최근 AI 기술, 특히 'AI 에이전트'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기존의 구독형 소프트웨어 산업이 몰락하거나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며 등장한 개념이다.
사실 이러한 공포의 서막은 2022년 말 ChatGPT 등장과 함께 이미 열렸다. 당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회사는 미국의 온라인 교육 플랫폼 '체그(Chegg)'였다. 체그는 학생들이 에세이 작성이나 과제 풀이에 활용하는 구독형 서비스인데, ChatGPT가 등장하자 2023년에만 주가가 80% 이상 폭락했다. 체그의 CEO 댄 로젠스웨이그는 회사의 실적 발표 자리에서 "학생들이 ChatGPT를 사용해 보고, 우리 제품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AI의 영향력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체그의 사례는 일종의 전초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특정 분야에 한정된 충격'으로 여겨졌지만, 2025년을 거치며 AI 에이전트 기술이 정교해지자 충격은 전 산업으로 확대됐다. 4월 초 Fortune지는 사스포칼립스에 대해 "2월이 변곡점처럼 느껴졌다. AI는 오랫동안 잠재력으로만 평가됐지만, 이제는 실제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SaaSpocalypse가 구조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AI가 SaaS 회사의 수익 모델을 근본적으로 흔들기 때문이다. 그 균열은 크게 세 방향에서 오고 있다.
첫째, AI 에이전트가 인터페이스를 장악한다. 기존 SaaS 모델의 핵심은 '사용자가 소프트웨어의 UI(User Interface,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는 가정에 있다. 그런데 AI 에이전트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에 직접 연결해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소프트웨어를 구독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구조 변화를 반영하듯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평균 수익률은 50% 정도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둘째,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을 회수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SaaS가 황금기를 누린 근본적 이유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비싸고 어렵다'는 데 있었다. 비록 개발을 위해 수백만 달러의 비용과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지만, 만들기만 하면 수많은 기업들이 소프트웨어를 정기적으로 구독했기 때문에, 개발비를 충분히 회수하고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AI 코딩 툴의 등장으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회사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됐다. 누구나 저렴하고 빠르게, 필요에 맞는 솔루션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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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수천 마리 피라냐(Piranha)'의 등장이다. SaaS 시장의 경쟁 구도는 소수의 대형 플레이어 사이의 싸움이었다. 이제는 AI의 도움으로 누구나 소규모 소프트웨어를 빠르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한 마리 상어가 아니라 수천 마리의 피라냐가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특정 시장에 집중하는 소규모 버티컬(Vertical) SaaS들이 쏟아지면서, 기존 대규모 SaaS들은 더 이상 프리미엄 가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aaSpocalypse의 충격은 기업마다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어도비(Adobe)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어도비의 핵심 도구인 Photoshop, Premiere, Illustrator 등 크리에이티브 소프트웨어가 AI 생성 이미지·영상 툴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미드저니(Midjourney), 런웨이(Runway), 소라(Sora) 같은 AI 툴들이 창작 작업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면서 Adobe의 프리미엄 구독이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피그마(Figma)와 캔바(Canva)도 비슷한 상황이다. 워크데이와 서비스나우와 같은 HR·업무 자동화 SaaS에도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
반면 AI를 자사 제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기업들은 이러한 위기를 오히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계기로 삼고 있다. Microsoft는 Copilot을 Office 365 전체에 통합하며 AI를 위협이 아닌 업셀링(Upselling) 수단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세일즈포스는 '에이전트포스(Agentforce)'라는 AI 에이전트 플랫폼을 출시하며 자사 CRM 생태계를 AI 허브로 리포지셔닝 했다. 결국 SaaSpocalypse는 소프트웨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따라가지 못하는 소프트웨어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격변의 시대에 어떤 SaaS가 살아 남을까. AI로 대체하기 힘든 세 가지 영역의 기업들이 거론된다. 독점적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거나, 규제와 컴플라이언스 허들이 높거나, 고객과의 긴밀한 통합(Deep Integration)이 필요한 경우다. AI는 범용 지식에는 강하지만, 특정 기업의 히스토리 데이터, 고객 행동 패턴, 수십 년의 업계 데이터에는 접근하기 어렵다. 스노우플레이크(Snowflake)나 블룸버그(Bloomberg)의 데이터 플랫폼처럼 '독점적 데이터 웨어하우스'를 보유한 기업은 AI가 오히려 의존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AI는 엔진이고, 독점 데이터가 연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금융·법률 분야 SaaS는 단순한 기능 경쟁이 아닌 규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규정이나 법률을 다루는 소프트웨어는 단순하고 쉽게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맞춤형 AI로 대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울러 고객사의 내부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결된 SaaS는 교체 비용이 매우 높다. ERP나 공급망 관리 솔루션 등은 오랜 기간 '커스터마이징(Customization)'과 '데이터 마이그레이션(Data Migration)'으로 인해,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바꾸기 어렵다. 이른바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이 높으면, AI 충격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분명 SaaSpocalypse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AI 에이전트의 인터페이스 장악, 개발 비용 붕괴, 무한 경쟁의 시대 등 구조적 위협은 분명히 실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시장에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조만간 AI 에이전트 하나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거의 모든 SaaS 구독을 끊어서 시장 전체가 붕괴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비관론도 있고, AI가 아무리 획기적이고 새로운 업무 방식을 만들어내더라도 그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SaaS가 끊임없이 탄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낙관론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 데이터 거버넌스(Data Governance), AI 에이전트 관리 플랫폼 같은 새로운 카테고리의 소프트웨어가 급성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완전한 종말'보다 '구조적 재편'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에게 SaaSpocalypse는 피할 수 없는 실제 종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시장의 소멸이 아니라, '도구로서의 소프트웨어'가 '지능형 파트너'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통에 가깝다. 결국 살아남는 자는 AI에 대체되는 기능이 아니라,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고객과의 신뢰 관계와 독보적인 데이터 자산을 증명해 내는 기업이 될 것이다. 기술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넘을 새로운 비즈니스 항법의 재설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