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6일, 한국 증시는 역사를 새로 썼다.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6.45% 폭등하며 사상 처음으로 7000선을 넘어 7384.56에 마감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14.41% 급등했고, SK하이닉스는 10.64% 올랐다. 모든 방송과 포털의 헤드라인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수가 신고가를 경신하던 그날,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는 자책과 분노로 들끓었다. '지난달에 불안해서 삼성전자를 팔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나만 소외된 것 같다'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한 정세 불안 등으로 시장이 흔들리던 시기에 삼성전자(8조 원 상당)와 SK하이닉스(3조 원 상당)를 대량 매도했던 개인투자자들이 뒤늦게 깊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지수는 사상 최고지만,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다. 이것이 지금 시장의 자화상이다.
몇 년 전 우리 사회에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소득이 줄거나 생활 수준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의 자산 가치가 급등하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는 공포를 표현한 말이었다. 그 공포는 이제 주식 시장에서 'FOMO(Fear Of Missing Out)', 즉 나만 기회를 놓쳤다는 두려움으로 진화했다.
FOMO의 증상은 구체적이다. 자다가도 새벽에 주식 시세창을 확인하고, 회의 중에도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고점이라는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리지만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결국 빚을 내서 주식을 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사상 처음으로 36조 원을 돌파했다. 소외감을 견디지 못한 개인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려 추격매수에 나서는 사례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다. 이러한 투자 심리에는 아무리 '피크아웃(Peak-out)' 우려가 있다 해도 '결국 코스피는 계속해서 올라서' 8000을 넘어 9000, 10000을 기록할 것이라는 '확증 편향'이 자리 잡고 있다.
스웨덴의 의사이자 통계학자인 한스 로슬링은 그의 저서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서 인간이 오해하는 열 가지 본능에 대해 분석했다. 그중 투자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직선 본능(The Straight Line Instinct)'이다.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직선 본능은 주식 시장에서 치명적으로 발현된다. 차트가 우상향 하면 우리 뇌는 자동으로 그 선을 미래로 연장한다. 코스피가 4000에서 5000, 6000, 7000을 찍으며 오르는 동안 투자자들은 차트의 직선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든다. 역사는 이 착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1989년 일본 닛케이 지수는 3만 9000포인트에 육박하며 '일본경제는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말을 낳았다. 그리고 붕괴했다. 2000년 닷컴버블 당시 나스닥은 5000을 돌파했고 언론은 인터넷 기업의 무한 성장을 예찬했다. 그리고 추락했다. 2007년 미국 부동산 시장은 '집값은 절대 안 떨어진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2008년 금융위기가 그 신화를 산산조각 냈다. 2021년 한국에서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이후 금리 인상 사이클이 찾아왔다. 직선은 언제나 곡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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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슬링의 통찰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세상의 모든 추세는 직선이 아니라 S자형, 활형, 봉우리형 곡선을 그린다. 주식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지금 이 순간의 추세를 미래로 무한히 연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두려움이 이 본능을 더욱 강화한다. 나만 기회를 놓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사실을 받아들일 여지를 차단한다.
여기에 더 기이한 역설이 추가된다. 수익을 낸 투자자들조차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A는 올해 초 삼성전자에 투자해 40%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선택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직장 동료 B가 SK하이닉스로 150%를 벌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 40%의 수익이 '실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성공이 패배로 탈바꿈한 것이다.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 효과다. 수익이 주는 만족감은 금방 사라진다. 뇌는 더 강한 자극, 더 높은 수익률을 원한다. 준거 집단이 상향되면서 만족의 기준치가 끝없이 높아지고, 투자자는 점점 더 위험한 베팅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악순환에 빠진다. 50%를 벌면 100%를, 100%를 벌면 옆 사람의 200%를 부러워한다. 이 게임에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
소셜미디어는 이 비교심리를 증폭시키는 기계다. 사람들은 손실 계좌는 보여주지 않는다. 인증샷은 항상 빨간색(수익) 화면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끊임없이 노출시키며 자책을 유도한다. 과거에는 비교 대상이 마을 이웃 몇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수백만 명의 하이라이트 장면과 실시간으로 비교당한다. 인간의 진화적 본능(무리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생존 감각)이 21세기 디지털 환경을 만나 과부하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슬링이 강조한 '사실 충실성(Factfulness)'의 4가지 원칙은 '직선의 함정'과 '비교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
첫째, 직선 본능을 의심하라. 차트가 오른다고 영원히 오르지 않는다. 지금의 상승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현재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60을 넘어섰다. 시장이 과열에 대한 불안을 스스로 내포하고 있다는 신호다. 공매도 잔고액이 20조 원을 넘어선 것도, 하락에 베팅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모두가 오를 것이라고 확신할 때'가 바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둘째, 비교의 기준을 바꿔라. 인간은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비판적 사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타인의 수익률은 나의 손실이 아니다. 비교 대상을 '어제의 나'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목표는 무엇인지, 위험 감수 능력은 어느 수준인지, 이 투자가 10년 후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옆집이 얼마 벌었나'를 묻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인 질문이다.
셋째, 공포와 탐욕이 만드는 극단적 판단을 경계하라. 빚을 내어 추격 매수하는 행동은 FOMO가 만든 전형적인 공포의 산물이다. 워런 버핏은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야 한다'고 했다. 신용잔고가 36조 원을 넘긴 시장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냉정함이 결국 소중한 자산을 지킨다.
넷째,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라. 수익을 냈음에도 불행한 이유는 결과만을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투자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켰다면 결과와 무관하게 그것은 성공적인 투자 행위다. 불확실한 미래에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것보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중요하다.
이번 기차를 놓쳤다고 해서 인생 선로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보면, 주식 시장의 급등 이후에는 반드시 조정이 찾아왔고, 그 조정 속에서 준비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빚을 내어 7000의 코스피를 추격한 사람보다, 다음 사이클을 기다리는 사람이 결국 더 좋은 기차를 탈 수도 있다.
지금 느끼는 박탈감과 FOMO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그 감정에 의사결정을 맡겨서는 안 된다.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할 때 사실을 받아들일 여지는 사라진다. 그리고 그 결정은 대부분 후회를 남긴다. 행복은 수익률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타인의 성과로부터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직선처럼 보이는 세상이 사실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지혜. 그것이 이 시장의 광풍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값진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