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
중국이 시장이면, 미국은 생존의 문제
반도체 대체불가 공급력이 살 길이다
기업 물심양면 지원이 우리사회의 몫

"중국과의 관계는 이익의 문제지만, 미국과는 생존의 문제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던 2018년 반도체 최고 전문가에게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에 한국이 서야 할지를 물은 적이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최고위 관계자의 답은 단호했다.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세계 시장의 절반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반도체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는 오랜 산업현장에서 얻은 경험칙이다. 한국 메모리 기업이 사용하는 EUV(극자외선) 장비는 네덜란드 ASML 제품이지만 핵심 광원 기술은 미국 기업 싸이머가 쥐고 있고, 반도체 설계 필수 툴인 EDA(전자설계자동화)는 시높시스·케이던스 등 미국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미국이 마음먹으면 첨단 반도체 공정 자체가 멈춘다. 중국은 '시장'이지만 미국은 '공급망의 숨통'을 쥐고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2013년 중국에서 20%의 시장점유율로 1위였지만 사드 사태 등을 거치며 점유율이 0%가 됐다.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삼성의 스마트폰 사업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시장 하나를 잃는 것과 공급망이 멈추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미국은 '숨통을 죄는' 그 힘을 실제로 썼다. 2019년부터 ASML EUV의 대중 수출을 통제하자 중국의 첨단 반도체 산업은 멈췄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자금투입으로 저사양 메모리에서 연명하고 있다. 공산사회의 지원이 중국 반도체 기업의 생명을 연장한 셈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제재로 한국만 시간을 번 것은 아니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자립의 길을 더 빨리 걸었고 창신메모리(CXMT)·양쯔메모리(YMTC)가 약진했다. CXMT는 1년 전 3%였던 전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을 올해 1분기 8%로 끌어올렸고, YMTC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점유율 13%로 이미 두 자릿수에 진입해 마이크론·샌디스크와 겨루는 상황이다.
우리는 중국과의 격차가 좁혀질 가능성에 대비한 '대체불가'의 전략이 필요하다. 틈만나면 반도체 겨울을 외치던 '모간스탠리'가 이번에는 AI투자 위축과 중국의 공급확대 등을 빌미로 다시 메모리 고점론을 들고 나왔다. 그 전망이 다시 한번 무색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조짐은 벌써 보인다.
지난 10일(현지시간) SK하이닉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행사에서 최태원 SK 회장 말처럼 실리콘사이클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지금의 AI는 4~5살짜리 어린아이와 같다"며 빅테크 기업들이 더 많은 메모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기반의 자율주행·휴머노이드 시대가 오면 그 성장세는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승패의 관건은 공급능력이다.
전자산업계에는 절대강자가 없다. 반도체 탄생 이후 수십년간 '외계인이 만든 기업'으로 불렸던 인텔은 모바일과 AI 반도체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순간을 놓쳐 ARM이나 엔비디아·AMD에 밀려났다. 삼성·SK하이닉스도 지금의 호황에 안주하면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우리도 이익의 금고가 아닌 생존의 키를 쥐고 있어야 한다.
독자들의 PICK!
고객확보를 위해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과 함께 미국 선밸리 앨런&컴퍼니 컨퍼런스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자금조달을 위해 나스닥 ADR 상장에 나선 최태원 회장이 가야하는 길은 '대체불가'의 공급 경쟁력을 갖추는 것 뿐이다. 반도체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를 두고 논쟁을 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 기업들이 대체불가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