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자산 이전 오랜 노동의 정당한 보상
강남 집값 잡기보다 살기 좋은 집 늘려
젊은세대가 내 평생 첫집 살 수있게 해야
1990년대 중반, 첫 직장인 산업은행 시절의 일이다. 함께 일하던 과장님은 명문 상업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분이었다. 사모님도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다니셨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 자랐다면 명문대 커플이 되었을, 실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분들이었다.
함께 일한 지 반년쯤 지난 어느 날, 과장님이 팀원들을 집들이에 초대하셨다. 강북의 작은 새 아파트에 둘러앉은 그날, 다른 이야기는 다 잊었는데 세 형제의 막내였던 그분의 한마디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 평생 처음으로 우리 집을 가져봅니다." 오랜 셋방살이 끝에 마련한 첫 집이었다. 형 들을 대학에 보내려 자신은 상업고등학교를 택했던 분의 담담한 그 말에, 긴 세월의 인내와 성취감이 담겨 있었다.
30년 전 과장님 집들이의 추억은 한국 사회에서 '내 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정책 당국자에게 주택은 수급 곡선이나 규제 비율, 투기 억제의 대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에게 집은 투자 자산 이전에,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안식처이자 오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그 보상을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한국은행 국민계정을 보면 1인당 국민 총소득은 2016년 약 3198만 원에서 2025년 약 5242만 원으로 10년간 60% 남짓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 집값은 소득 증가율을 크게 웃돌아 지역에 따라 두 배 이상 오른 곳이 적지 않다. 중산층의 몫이라 여겨지던 서울 외곽의 집들마저 10억 원을 넘어섰다. 월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집값만 앞서 달아나니, 성실히 저축해 온 이들의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물가 통계는 이 부담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 우리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전·월세를 합한 비중은 10%가 채 안 되고, 자기 집에 사는 비용은 주된 지표에서 빠져 있다. 반면 미국의 주거비는 물가 지수 가중치의 3분의 1을 넘는다. 생활에서 가장 큰 지출이 통계에서 이렇게 가볍게 다뤄지니 공식 숫자와 국민이 느끼는 현실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물가와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한 정부가 신뢰를 잃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되풀이된 일이다. 취임 1년 남짓한 정부의 지지율이 흔들리는 배경에도 이런 주거 불안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정책의 초점은 유독 강남 집값에 쏠려 있는 듯하다. 강남은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집값도, 시장의 중간값도 아니다. 강남의 집값을 누를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면 된다.
정작 물어야 할 것은 방향이다. 정부 정책의 목표가 시장 안정인지 가격 하락인지, 우선순위가 분명하지 않다. 서울과 수도권은 여유 있는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다. 집값이 폭등했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소방관과 교사처럼 도시에 꼭 필요한 이들이 살 집을 구하지 못해 먼 곳으로 밀려나면서 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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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 다르지 않다. 강남의 고가 아파트에 사는 사람만 서울에 살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들어오려는 젊은 세대에게도 내 집을 마련할 사다리는 남아 있어야 한다. 인구가 줄면 일본처럼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던 20년 전의 전망은 빗나갔다. 기대수명이 늘고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주택 수요의 구조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것도, 오래된 동네를 전부 재개발하는 것만이 답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손쉬운 규제가 아니라 정직한 청사진이다. 1·2인 가구 분화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중장기 공급은 어떤 궤적을 그릴지, 아파트뿐 아니라 빌라를 비롯한 다양한 주거 형태를 어떻게 안전한 선택지로 만들지를 데이터로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완벽한 정책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지도다. 그 지도가 있어야 내 집 마련을 계획하고 앞날을 설계할 수 있다. 30년 전 그 자리에서 과장님이 건네신 "내 평생 첫 집"이라는 말이,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도 이룰 수 있는 꿈으로 남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