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모습이 달라졌다. 과거 국가안보의 중심이 군사력과 영토 방어였다면, 오늘날에는 반도체, 핵심 광물, 첨단기술 하나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공급망의 단절이 공장을 멈추고, 핵심기술의 유출이 산업 경쟁력을 무너뜨리며, 특정 국가의 수출 통제와 경제적 압박이 기업뿐 아니라 국가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시대다. 경제와 안보를 별개로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최근 개정된 국가정보원법이 국정원의 직무에 '경제 안보'를 명시한 것도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정보기관의 권한 확대라는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필요성은 크다. 공급망 안정,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자원안보, 첨단 전략산업과 기술 보호 등이 이제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세계 주요국의 움직임은 이미 이를 보여준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기술 이전뿐 아니라 자본 투자까지 안보 문제로 다루고 있다. 외국인의 미국 기업 투자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통해 심사한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미국 자본이 경쟁국으로 흘러가는 것까지 국가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재무부의 해외투자안보프로그램(OISP)은 2025년 1월부터 중국의 반도체·정밀전자, 양자정보,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미국인 투자를 금지하거나 신고하도록 했다. 이어 2025년 12월에는 이러한 통제를 법률로 뒷받침하는 포괄적해외투자국가안보법(COINS Act)을 제정하고, 대상 국가도 러사아·이란·북한·쿠바·베네수엘라로 확대했다. 자본의 흐름 자체를 안보 문제로 보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는 더 직접적이다. 영국 국내정보기관 MI5는 2026년 9월 30일 '중국범용기술연구원(CGTRI)'이 중국 국가안전부(MSS)의 첩보 역량을 강화하는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 분야에는 AI와 사이버보안은 물론, 스파이 활동에 필요한 비밀통신 기법인 스테가노그래피 기술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100명이 넘는 영국 연구자들이 이 기관이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한다.
MI5는 대학과 연구 기관에 협력 관계 점검과 자금 출처 확인을 권고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정보기관의 활동이 더 이상 전통적 스파이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대학의 연구실, 기업의 투자 계약, 공급망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 안보 정보활동이 과거와 같은 광범위한 국내 정보수집이나 민간 기업 경영에 대한 정부의 개입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정보기관의 역할은 기업의 의사결정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연구 기관이 파악하기 어려운 외국 정부와 정보기관의 움직임, 기술 탈취 시도, 공급망 교란과 경제적 압박의 징후를 먼저 파악해 정부와 민간이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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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곧 안보가 된 시대에 필요한 논의는 경제 안보를 정보기관의 업무로 볼 것인가 차원이 아니라, 변화한 안보 환경에 맞는 정보활동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이를 어떤 법적 통제와 책임 아래 수행하도록 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