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다시 파행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25일 미디어 관련법을 기습 상정한 게 발단이 됐다. 민주당은 반발했고 국회는 또 멈췄다. 여당은 "상정 후 논의"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라며 몰아붙인다. 반면 야당은 "다수의 횡포"라며 맞선다. 지난 연말 봤던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의아한 게 있다. 날치기 '통과'가 아니라 날치기 '상정'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의문이다. 심의나 토론을 충분하게 하지 못한 채 법안을 처리했다면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법안 심사의 첫 단계인 '상정' 자체가 문제가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난 13일 미국 하원의 모습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당시 미 하원은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안을 표결 처리했다. 공화당 소속 의원 전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같은 날 상원에서도 법안이 통과됐지만 중도 성향의 3명을 제외하고 공화당 의원들은 모두 반대했다. 경기 부양안 처리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생각은 정반대였고 이는 표결 결과로 재확인됐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게 경기부양안에 대한 의회 내 토론과 표결이 모두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상정, 심의·토론, 표결 등 법안이 탄생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합리적 절차를 그대로 밟았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미 언론들이 경기 부양안 표결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정치적 도박을 했다"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우리 모습은 다르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를 해야 법안이 책상 위에 올라갈 수 있다. '법안 상정 = 통과'로 여겨지는 희한한 구조다. 심의나 토론은 뒷전으로 밀린다. 민주당은 "소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호소하지만 합리적 절차를 무시하는 가운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민주당은 "국민은 한나라당을 엄중히 심판할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심판은 국민에게 맡기고 당당하게 의석에 앉는 것이 어떨까. 국민 지지를 받는 대안을 제출하고 한판 붙는 게 더 효율적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