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난투극' 여야 "국민을 위해서"?

[기자수첩]'난투극' 여야 "국민을 위해서"?

심재현 기자
2009.07.27 09:26

"한국의 여야 의원들이 밀고 당기는 난투극을 벌이며 혼란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지난 22일 미디어법이 통과되던 날 지구 반대편 이탈리아 로마에서 켠 텔레비전 화면에선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아수라장이 된 국가 최고 입법기관의 모습을 파란 눈의 외국인들과 함께 보면서 혹시라도 질문을 해온다면 뭐라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국회의장석을 향해 점프하고 의장석에 기어오른 의원을 아래로 밀어내는 다른 의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대리투표니 재투표니 하는 논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의장석을 쉽게 '점거'하지 못하게 하려고 높게 올려 만들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떠오를 쯤 또 다른 방송에선 "한국 정치에서 폭력사태는 별난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여야 국회의원들은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었다. 한결같이 이 모든 상황은 국민을 위한 일이라며 자신의 '땡깡'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목청을 높였다. 민주당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거리투쟁에 돌입할 때도, 한나라당이 이를 가출정치· 불량야당이라고 비난할 때도 '네탓'이라는 말이 꼭 나왔다.

막말도 빠지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이 미디어법 처리에 항의해 사퇴서를 제출한 것을 두고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쇼"라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하루 전날 서울역 광장 집회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민생행보는 (미디어법)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돌아보면 미디어법은 언제고 터질 폭탄이었다. 2월 임시국회 막판 여야가 가까스로 마련한 합의안은 '100일간 여론을 수렴해 논의한 뒤 표결처리한다'는 미봉책이었다. 당장 합의문 작성 직후부터 여야는 각자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으르렁댔다. 그리고 100여일이 지나자 세계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법안을 처리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에 등장하는 게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이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정작 국민들이 이런 '꼴불견'을 이해해줄 이유는 없는 데도 말이다. 한 초선의원은 "미디어법 내용은 둘째 치고 이런 모습을 보여 부끄러울 따름"이라며 "이웃집 사람과 주먹다짐을 해 놓고 '다 널 위해서'라고 하면 어느 자식이 부모 말을 곧이 듣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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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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