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나대' 나경원이냐, '새바람' 박원순이냐

'똑나대' 나경원이냐, '새바람' 박원순이냐

도병욱 기자, 송충현
2011.10.03 20:15

여야 서울시장 후보 결정... 치열한 접전 될 듯

나경원(왼쪽), 박원순.
나경원(왼쪽), 박원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갈 야권 단일후보로 확정됐다. 박 후보는 일찌감치 여권 후보로 결정된 나경원 후보와 최종 결전을 벌이게 된다.

판사 출신에 '얼짱' 정치인인 나 후보와 한국 시민운동의 상징인 박 후보의 대결로 이번 서울시장 선거전이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 판사 출신에 '얼짱' 정치인…'엄친딸' 이미지는 극복 과제= 나 후보가 한나라당으로 정계에 입문할 2002년 당시 그는 서울행정법원의 젊은 여성 판사였다. 조국 서울대 교수, 원희룡·조해진 한나라당 의원 등과 함께 198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사법시험 24기에 합격했다.

정치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다. 그는 내리 3년 동안 대변인을 맡았다. 일처리를 깔끔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똑나대(똑 부러진 나경원 대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8대 총선에서는 서울 중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해에는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 출마했다. 원희룡 후보와 단일화 여론조사에 승리했지만, 오세훈 후보에 패해 선거전에 뛰어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전당대회에서 3위의 성적으로 최고위원이 됐다. 1년 뒤 기존 지도부가 총사퇴한 상황에서 치러진 전당대회에서도 3위로 지도부에 재입성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48세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초고속으로 경력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도 얻었다. '엄친딸'(엄마 친구 딸의 준말로, 모든 것을 잘하는 여성을 의미)이라는 이미지는 나 후보의 최대 무기다.

하지만 때로는 강점이라 볼 수 있는 요소들에 발목이 잡히기도 한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보니 조그만 구설수가 발생해도 일파만파다. 자위대 행사 참석 등의 문제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기도 했다. 사학재단을 보유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엄친딸'이미지가 강하다보니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이미지 정치인'이란 평가도 넘어야 할 산이다.

◇ 시민운동 '아이콘'…조직력 극복이 관건=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후보는 경기고 졸업 후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1975년 고(故) 김상진 열사 추모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제적된다. 출소 후 복교가 불가능해지자 그는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해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로 임용됐다. 그러나 박 후보는 "사람을 잡아넣는 일이 싫다"며 6개월 만에 사표를 쓰고 퇴임 절차를 밟았다.

1983년 변호사 개업을 한 이후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멤버로 활동하다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1994년 참여연대

를 설립, 시민운동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박 변호사는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등을 거치며 시민운동의 아이콘이 됐다.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을 함께 겪으며 정치적 경험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야인(野人)으로 살다 지난달 6일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후보직 양보 후 단숨에 지지율 1위로 올라섰다. 선거비 모금을 위한 '박원순 펀드'는 52시간 만현 목표액인 39억원을 채워 대중적 인기를 확인케 했다.

반면 박 후보에게는 대기업 후원금 문제 등 '아킬레스건'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30일 야권 통합경선을 앞두고 열린 TV토론회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박원순 후보는 한손엔 채찍을 들고 다른 손에 후원금을 받았다"며 지적했다.

상임이사로 있던 희망제작소가 삼성으로부터 2년간 7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내역 등으로 곤욕도 치렀다. 정당에 소속돼 있지 않아 조직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도 박 후보의 '한계'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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