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정국'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의 중앙선관위 공격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정치권은 경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 사건이 미칠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 쇄신 논의까지 중단한 한나라당은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고, 민주당은 잇따라 추가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한나라당은 5일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당초 논의하려 했던 총선 공천 등 인적쇄신 문제는 꺼내지도 못한 채 대책 마련에 골몰했고, 내년도 예산안 논의 의총에서도 선관위 사이버 공격 대처 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당 지도부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임을 들어 구체적 언급을 삼가며 성역 없는 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과는 무관한 일"이라는데 무게를 두면서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대해선 "수사 결과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자칫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형 악재가 되지 않을까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야당은 의혹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며 "우리는 수사당국의 요청이 있을 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떤 내용이라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지도부와 달리 밑에서는 당의 적극적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부글부글 끓었다. 야당의 '윗선' 개입 의혹이 현실화되면 내년 총선 필패는 물론 당의 간판까지 내려야 하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극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특히 쇄신파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의 쇄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지도부를 겨냥하고 있다.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조사 수용을 주장하며 홍 대표와 격론을 벌였던 원희룡 최고위원은 이날 의총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제는 당 해체 수준까지 각오하고 있다. 당을 해산하고 현역의원 전원이 불출마 하는 방안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 권영세 의원 역시 "지금 상황을 보니 홍 대표 체제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다른 사람이 나와야 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느슨한 대처를 하고 있는 지도부를 강력 비판했다.
당 소속 의원들도 "국정조사건 특검이건 당이 먼저 나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정욱 의원은 트위터에 "반대편은 절대악이란 '신념' 하에 제어능력을 상실한 난장판"이라며 "몰상식의 정점"이라고 비판했고, 전여옥 의원도 "당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라며 "지도부는 실체를 파헤칠 당 차원의 조사특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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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자금 출처를 파악해 사건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며 연일 파상 공세를 펼쳤다. 손학규 대표는 "경찰 수사가 꼬리 자르기로 귀결될 경우 국정조사와 특별검사를 통해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고, 김진표 원내대표도 "개인 범죄로 축소·왜곡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백원우 진상조사위원장은 최 의원의 비서 공 모 씨가 선거 당일 새벽 제3자와 20여 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는 추가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은 최 의원의 비서가 서울시장 선거 전날부터 당일 새벽에 통화한 한나라당 관계자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범인들의 은신처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 현직 국회의원 명함이 나왔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백 위원장은 이날 조현오 경찰청장과의 면담을 마친 뒤 "청장에게 명함 관련한 수사 상황을 물었으나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았다"며 "명함이 없다면 없다고 했을 텐데 수사 중이라고 하는 걸 보니 사실상 있다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문용식 민주당 인터넷소통위원장 역시 범인들에 대한 금전적 대가 가능성을 제기한 뒤 "디도스 공격이 아니라는 의혹을 해소하려면, 당시 선관위의 로그파일과 선관위가 이용한 대역망, 비상 상황 대처일지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