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제에 대한 자존심 훼손이 어찌 이산가족의 일생의 한보다 더 중하단 말인가?"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가 길게만 느껴졌던 이산가족들의 꿈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북한이 이상상봉 행사를 나흘 앞둔 지난 21일 행사를 돌연 무기한 연기한 탓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오매불망 상봉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던 상봉 대상자들은 망연자실했다. 박운형 할아버지(92)의 아들 박철씨(60)는 "(아버지께서) '60년 이상 기다렸는데 더 못 기다리겠느냐'며 에둘러 말씀을 하시는데 실망하신 기운이 역력하다"며 "아버지께서 버릇처럼 내 뼈는 고향 땅에 묻어 달라 하시는데 그거라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두 누나가 현재 북한에 있는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은 23일 "체제에 대한 자존심 훼손이 어찌 이산가족 일생의 한보다 더 중하단 말인가"라며 "북한은 더 이상 1000만 이산가족의 피맺힌 가슴에 대못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정부가 북한의 일방적 행태를 비판하자 "(남측이) 책임을 회피하고 우리에 대한 반감과 악의를 선동해 북남관계 개선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반민족적 기도의 발로'"라며 연일 비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문제는 남한의 대북정책을 '반민족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정작 북한 스스로는 민족 최대의 염원인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볼모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산상봉 연기의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만 결국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볼모 삼아 얻으려 하는 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전향적인 입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자, 이산상봉을 연기한 것 같다"며 "연기하려면 북한도 명분이 필요한데, 자기들 스스로 명분이 약하다 보니 '이석기사건'부터 '한반도신뢰프로세스'까지 이런저런 이유들을 다 끌어 모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 관련 풍문이 남한 언론에 보도되자 그들만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지 말라며 발끈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그들(북한)에겐 '민족' 위에 '최고 존엄'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