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국회가 할 일은

[뷰300]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국회가 할 일은

최경민 기자
2015.08.27 17:21

[the300]

1991년 5월8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김기설씨는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분신자살했다.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것에 대해 항의하면서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한 분신이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기훈씨를 구속기소했다. 김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분신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였다. 강씨는 이듬해 징년 3년을 선고받았고 1994년 8월 만기출소했다.

24년이 지난 2015년 5월14일. 대법원은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강씨는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실을 맺었다.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검찰의 조직적인 조작으로 만들어진 사건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강씨는 누명을 벗었지만 그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27세의 청년이었던 강씨는 51세의 중년이 됐다. 그동안 살인을 방조한 파렴치범이라는 주변의 시선과 사건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2012년 무렵부터는 간암투병까지 하게 되며 건강이 악화됐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그 때 그 사람들'은 모두 승승장구했다. 강기훈씨에게 사죄의 말 한 마디 건넨 사람도 없고, 책임진 사람도 한 명 없다. 제대로된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법무부장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유서대필 수사팀을 총지휘한 강신욱 강력부장은 대법관을,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검사는 동덕여대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의 첫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도 당시 수사팀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신계륜 의원은 최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실시 촉구 결의문'의 서명을 받았다. 국회 과반수인 150명의 서명을 받으면 국회 결의안 형식으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입법화 한다는 취지였다.

결의문에 서명한 의원은 총 127명이었다. 새누리당에서는 하태경 의원 단 1명만이 서명했다. 여당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국회 결의안 추진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말도 들린다. 이에 야당은 여당과의 합의를 통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의 청문회를 열어 진상규명을 추진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대법원은 강기훈의 '무죄'를 확정했다. 하지만 '조작'의 실상은 별개의 숙제다.

국민들은 '유서 대필'이라는 정부발표와 사법부의 유죄판결에 속고 살았다.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회가 해야 할 몫이다.

그것이 24년의 세월을 악몽속에서 보낸 강기훈씨에게 우리 사회가 진정한 사과를 보내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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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민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1부 최경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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