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자유당 '3·15 부정선거'


1952년 연임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해 2년 뒤 '대통령 3선 금지조항'에 대한 개헌안을 상정한다. 하지만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사사오입' 논리에 따라 부결을 번복하고 결국 1956년 3선을 달성한다.
이같은 행태에 민심이 민주당으로 향하자 위기감을 느낀 자유당은 1960년 치러질 정·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계획한다.
당시 정·부통령 후보로 자유당은 이승만과 이기붕, 민주당에선 조병옥과 장면이 각각 출마했는데, 조병옥 후보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단독출마한 이 대통령의 4선이 확실시됐다. 이 가운데 자유당은 대통령의 권력을 뒷받침할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사전에 계획했던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60년 오늘(3월15일) 자유당은 △사전투표 △유권자 기권 강요 △기권자 대리투표 △야당측 선거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정치깡패와 완장부대로 유권자 위협 등의 방법으로 선거에 관여한다.
상황을 전달받은 민주당 측은 이날 오후 4시30분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의 불법을 밝히고 무효를 선언했다. 부정선거 사실이 알려지자 그날 오후 늦게 각지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개표 중 일부 지역에선 투표자수가 유권자수보다 많은 경우가 발견되면서 반발은 격화됐다.
이 가운데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시위를 경찰이 최루탄 발사와 카빈총 난사로 강경 진압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 달 뒤 마산 앞바다에서 실종됐던 학생 김주열군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주검으로 발견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극으로 치달았고 4·19 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이 대통령은 선거를 다시 치르기로 약속하고 4월2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미국으로 망명한다. 이 대통령 하야 이후 허정 과도정부를 거쳐 6·15 개헌에 의해 내각 책임제를 바탕으로 한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