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당정체성 고집하던 더민주의 비례후보

[기자수첩]당정체성 고집하던 더민주의 비례후보

정영일 기자
2016.03.24 05:40

[the300]

요 며칠 더불어민주당 분위기는 살벌했다. 선거를 20여일 앞두고 김종인 당 비대위 대표가 사퇴의사를 공공연히 밝혔을 정도다. 비례대표 명부를 둘러싼 갈등이 '셀프공천' 논란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23일 김 대표가 이를 철회하면서 내홍이 일단락 됐다. 하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이날 발표한 20대 총선 비례대표 명부를 보면 그렇다.

더민주는 비례대표 당선안정권을 15번까지로 판단한 듯하다. 선거법상 홀수번호는 여성 몫임에도 15번에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부대표를 배정하는 편법을 썼다. 물론 13번까지는 홀수에 여성이 배정됐다. 지난 총선 당시 정당 지지율(36.5%)과 줄어든 비례 의석수, 국민의당이라는 변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이 전 수석대표는) 당헌에 따른 순번 투표 결과 정당 내에 전혀 인지도가 없는 분임에도 상당한 득표를 해서 당선 가능권에 진입했다"며 "원래 여자 번호는 홀수, 남자는 짝수에 배치되는게 맞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홀수에 남성을 넣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이 판단하는 당선안정권인 15번까지의 명부를 보면 약자를 위한다는 '당의 정체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장애인이나 청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김영웅 전 전국장애인위원회 대변인은 30번을, 만 32세로 청년 후보로 분류되는 정은혜 당 상근부대변인은 16번에 배정되는데 그쳤다.

앞서 당 중앙위원회는 지난 20일 비례대표 명부가 당 정체성에 어긋난다며 집중 문제제기에 나서 이번 혼란의 시초를 제공한 바 있다. 당이 김종인 체제 출범 이후 최대 위기까지 내몰렸지만 이번 논란의 결과물인 비례대표 순번에는 당의 정체성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보이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 관계자는 "순위 투표를 하다 보니까 본인들이 관계에 의해 잘 아는 분들에게 표가 집중되다 보니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분들이 당선안정권에 못 들어온 것 아닌가"라며 "당이 항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하는데, 투표 결과를 보면 평소 강조하던 것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날 비례대표 명단을 승인한 김종인 대표의 날선 한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김종인 대표는 이날 "이번에 중앙위 거치면서 일부 나타난 현상이 매우 참, 제가 보기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며 "당의 정체성 운운하는 말들을 많이 했는데 반드시 그와 같은 말과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제가 확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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