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돕겠다' 약속 어긴 정치권에 서운함 피력 "대권 행보가 무의미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본인을 지원하기로 했다가 입장을 바꾼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반 전총장은 2일 오전 서울 마포캠프 사무실로 향하다가 기자들과 만나 불출마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나와 뜻을 같이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한 분들이 나중에 보면 (입장을 바꿨다)"며 "대권을 향해 다시 가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래는 문답 전문.
-잠은 잘 잤나.
▶오랜만에 편안하게 잘 잤다.
-가장 결정적인 불출마 계기는.
▶한 3주간 정치인들 쭉 만나보니까 생각이 전부 다르고, 끌어모아서 대통합을 이루는 게 어렵겠다 생각했다. 힘에 부치고 시간 제약이 많았다. 그런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정치권에서 재고 요청 없나.
▶정치권에선 없고, 자생적으로 생긴 지지모임에서 재고를 강하게 요구했다. 열정적으로 지지해줬는데 미안하다. 내 결정을 존중해달라고 했다. 뜻 변함 없다.
-기존 정당에 합류했다면 더 쉬웠을까.
▶제약이 있었다. 제일 큰 정당인 새누리당이 분열됐고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그다음 초이스가 별로 없었다. (정치인들을) 한두시간 만나고 나오면 별로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그분들 생각이 복잡하다. 나는 순수하고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외교관 기본서에 보면 정직이 최선이라고 돼 있다. 있는 그대로 담백한 심정을 얘기하고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그런 게 우리 현실에서는 잘 이해받지 못했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헌협의체 발표 하루 만에 대권 꿈을 접었다.
▶결정은 단호하게 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하순부터 고뇌 많이 했다. 감정적으로 격할 때도 있었다. 우리 사회가 이래도 될까. 왜 정신 못차리고 이럴까. 우물안 개구리 같았다. 청년들 일자리 없어서 고생하는데 정치지도자들은 전부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실제 정치에 매몰되는 것만큼 힘을 안 쏟거든. 이래선 안된다 생각했다. 그러나 벽이 아직 높고 (내) 이해도가 낮았다.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나라를 구해달라 했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는데 실제 정치를 움직이는 건 정치인이더라.
-정치교체 노력은 이어가나.
▶대한민국 정치문화 바꿔야 된다 계속 강조하겠다. 바로 봤을 때 느끼는 게 진리다. 너무 복잡하게 계산하면 결국 자기가 어디 가는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 정치 바꾸고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
독자들의 PICK!
-불출마 회견문을 어제 종일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초안을 혼자 잡고 김 숙 대사 불러서 가감할 게 있으면 생각해보라고 시켰다. 심상정 대표를 만나기 전에 손을 좀 보고 (회견장으로) 갔다. 상의했다면 소문나고, 많은 사람이 말렸을 거다. 그럼 나도 다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와 뜻을 같이하겠다고 입장 표명한 분들이 나중에 보면 (입장을 바꿨다). 다시 가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뜻을 펼칠 수 있으니 기회를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격려전화를 했다.
▶어제 밤 10시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전화를 받았다. 8년동안 포르투갈 수상 하신 분인데 국내정치 만만찮겠지만 구애받지 말고 꿋꿋하게 나가라 충고해줬다. 어제 통화에서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가 다른 것을 실감했을 거다. 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 할 일이 많은데 다른 면에서 기여하라"이런 좋은 대화를 나눴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낙상주의 말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 같다.
▶수인사도 끝나기 전에 앉자마자 보수주의자냐 진보주의자냐 물어서 당황했다. 보수와 진보를 확연하게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건 결과적으로 국민을 양 진영으로 나누게 된다. 나는 시장경제나 안보 면에서 확고한 보수주의자다. 그러나 총장 10년간 진보적인 사람들과 대화 많이 나눴다. 약자들과 대화한 10년이었다. 21세기에 보수와 진보를 확연히 구분하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계속 자신을 진화시켜야 한다.
-분열을 통합할 만한 대선후보가 있나.
▶그건 내 나름대로 생각이 있지만, 국민들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대선 과정에서 보수냐 진보냐 계속 얘기할수록 사람이 갈라진다. 이건 정치지도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
-정치 교체에 뜻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협력할 수 있나.
▶대선 꿈을 접었으니 좀 더 중도적인 입장에서 지켜보겠다.
-도움 요청이 있으면 힘을 실어줄 수 있나.
▶정치활동은 자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는 연설이나 학회 등에서 국민 통합과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사실 평생을 그런 일을 해왔다. 한국 공직에 있을 때도 그랬고 유엔 사무총장 10년간도 그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