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보도자료에서 '음슴체' 사라진 사연

총리실 보도자료에서 '음슴체' 사라진 사연

세종=양영권 기자
2017.11.28 11:00

[관가엿보기]李 총리 "국민을 상대하는 글에는 겸손한 문장"… 몸에 밴 '겸손' 90도 인사에 차 문도 스스로 여닫아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가 지난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가 지난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음슴체'는 '-음', '-했음' 처럼 명사형으로 문장을 종결하는 방식이다. 장황한 글은 읽히기 어려운 인터넷 게시판에서 격식을 따지지 않고 간결하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확산됐다.

이 '음슴체'의 원조는 따로 있다. 공무원들이 작성하는 보고서가 그것이다.

'기획재정부는 11.24.(금) 오전 11시부터 3시간동안 (중략)「공공기관 운영 및 평가제도 개편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였음'

기획재정부가 지난 24일 배포한 보도자료의 첫 문장이다.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게'라는 보고서 원칙에 따라 어미를 생략하고 명사형으로 문장을 끝냈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정보를 담아야 하는 내부 보고서를 판결문이나 소설처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 부처는 정책이나 활동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내놓는 보도자료 역시 내부 보고서용 문체를 사용한다. '음슴체'를 쓰거나 '했다' 등으로 끝나는 평어를 쓴다.

이런 관행에 국무총리실이 반기를 들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1월 25일(토) 주말에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추진상황을 점검했습니다. ' '이낙연 국무총리는 11.24(금)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략)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심화하기 위한 방안 등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최근 국무총리실이 배포한 보도자료들은 모두 높임말로 시작했다. '높임말 보도자료'는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가지라"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지시 때문이라는 게 총리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총리는 총리실 직원들에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인데, 국민에게 알리는 글에 겸손한 문장을 쓰라"고 지시했고, 지난 9월부터 국무총리실에는 '음슴체' 보도자료가 사라졌다.

이 총리는 항상 '겸손'을 강조한다. 4선 의원 출신인 이 총리가 국무총리가 된 후 국회를 찾아 '여의도 후배' 국회의원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 총리는 차량으로 이동할 때 직원들이 차 문을 여닫아주는 것도 금지했다. 작은 서류봉투 같은 것은 남에게 맡기지 않고 손수 들고 이동한다.

국무총리 자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총리는 '일인지하 만인지하(一人之下 萬人之下)'라고 생각한다. 저보다 낮은 사람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9월 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7년 차세대리더 육성 멘토링 리더십 콘서트'에서는 준비해 간 글을 읽는 대신 즉석에서 대학생들에게 축사를 했다. '인사를 공손히 하고,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최대한 높이기를 당부한다. 이 세 가지만 지켜도 면접시험에서 80점은 받을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그런 이 총리가 보도자료 하나에서도 공무원의 '겸손'이 배어날 수 있게 바꾼 것이다.

이 총리는 30일 총리 취임 6개월을 맞는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 그간의 소회와 향후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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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논설위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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