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면 되게 하라'…규제가 만든 꼼수

'안 되면 되게 하라'…규제가 만든 꼼수

심재현 기자
2022.03.16 03:02

[우리가 보는 세상]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대한민국에서 '안 되면 되게 하라'가 제일 많이 통하는 곳이 어딘지 아세요?"

15일 만난 기업인이 대선 후일담을 나누다 불쑥 꺼낸 얘기다. 익히 알려진대로 이 구호는 특전사의 신조다. 임무를 받으면 불가능한 것 같아 보이는 역경도 어떻게든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말이다. 그래서 답은 특전사 혹은 군대일까. 기업인의 해석은 달랐다. 그는 규제·행정기관을 짚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온갖 꼼수가 동원되는 대상이 규제기관이니 규제기관이야말로 '안 되면 되게 하라' 정신의 집산지라는 얘기였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웃자고 한 얘기에 모두가 실없이 파안대소했다. 누군가 올 대선 어느 당의 슬로건이 연상되는 농으로 "규제가 키운 꼼수구만"이라고 거드는 통에 또 한 번 주책없는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자 모두 애꿎은 물잔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웃고 넘기기엔 사안과 시점이 공교로웠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은 우리 관료 사회에서 30년 묵은 과제로 통한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관료들의 복지부동을 일갈하면서 행정개혁쇄신위원회를 설치한 이후 김대중 정부는 '기요틴'(프랑스혁명 당시 단두대), 노무현 정부는 '규제 덩어리', 이명박 정부는 '전봇대',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 문재인 정부는 '붉은 깃발'에 규제를 비유해가며 뿌리 뽑겠다고 했지만 최고 권력자가 내놓은 섬뜩할 정도의 단어들이 무색할 정도로 결과는 참담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정권마다 새로 만들어졌거나 강화된 규제가 평균 5000여건에 달한다. 경제대통령을 자처했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5827건의 규제가 만들어지거나 강화됐다. 박근혜 정부 4861건, 문재인 정부 5798건이 최근 10여년의 성적표다. '규제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규제 신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반면,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는 입법은 거북이 걸음이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였던 2012년 7월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현 정부 들어 문 대통령도 나서서 "도서 벽지의 환자들을 위해 원격진료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지원했지만 9년 넘게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서는 "거쳐간 담당 과장만 10명이 넘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관료들과 기존 규제 얽힌 기득권의 반발이 정권마다 도돌이표처럼 규제 개혁 실패를 반복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서비스산업법은 의료계가, 카풀은 택시노조가 가로막고 있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를 마주한 관료와 정치인들은 이런 이해집단의 반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규제 자체를 포괄적으로 적용하고 건별로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시스템에서는 구조적으로 규제 개혁의 실패가 예견돼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도 규제 방식을 미국이나 유럽처럼 해선 안 되는 것만 나열한 뒤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내내 "국민 안전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네거티브 규제로 제도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게 분명하다. 하지만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감당해야 할 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로 꼼수를 키울 게 아니라 애초에 안 되는 것 빼고는 다 되게 해야 일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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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기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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