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비상계엄 1년, 12.3이 남긴 것(上-1)

12·3 비상계엄에서 군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계엄군으로 투입된 가해자임엔 분명하지만,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 동원된 탓에 깊은 상흔을 안게 됐다는 점에선 동시에 피해자다.
비상계엄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고강도 군 개혁'에 명분을 부여했다. 그러나 역대급 인적청산과 명령 거부권 보장까지 수반한 개혁에 군은 불만을 토로한다.
전문가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단호한 인적 청산은 필요하다면서도 명령 거부권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만 부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일 국방부에 따르면 '내란극복·미래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는 최근 정당하지 않은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상관의 명령이 △헌법 또는 법률에 명백히 위반되는 경우 △형법 등에 위반돼 범죄가 되는 경우 △사적 목적 또는 권한 범위 밖의 사항이 명백한 경우 등에 대해선 명령을 복종하지 않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법 개정 추진으로 군 안팎에선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에는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전·평시를 구분하지 않고 위법한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 때문에 상급자의 명령을 받으면 우선 명령부터 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예비역 육군 대장은 이날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군기를 세우는 으뜸은 법규와 명령에 대한 자발적인 준수와 복종"이라며 "불복종 조항이 들어갈 경우 전시 상황에서 상관이 부하에게 '적진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에 '인명 피해가 우려돼 들어갈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에 가담한 소수의 군인은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지만 군의 기강을 흔들 수 있는 체계 개편이나 인사 조치는 부적절하다"며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군인들이 국토방위에 전념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해줘야 하고, 불복종 조항을 넣는다면 최소한 전·평시는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에 대한 외부의 고강도 개혁은 군이 자초한 측면도 크다. 비상계엄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에도 군은 자체적인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실익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출범 후인 지난 8월 국방부와 군은 비상계엄에 관여한 부대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 불법 행위가 확인된 경우 진급 등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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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난 9월 이재명 정부의 첫 군 수뇌부 인사에선 합동참모본부(합참) 의장과 육·해·공군참모총장, 한미 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등 7명의 4성 장군이 모두 교체됐다. 3성 장군 인사에선 20명을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시키며 보직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로 교체된 장성의 별을 모두 합하면 88개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숙청하며 20명에 달하는 장성을 교체한 것을 능가하는 수치다.
'헌법존중 정부 혁신 태스크포스(TF)'도 가동 중이다. 비상계엄에 관여된 인원들에 대해선 업무용 PC, 서면 자료 등을 열람할 수 있다. 개인 휴대전화 등은 자발적 제출을 유도하지만 상당한 의혹에도 비협조적인 경우 직위해제 후 수사의뢰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군에 대한 신뢰 하락과 트라우마로 군을 떠나는 간부도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희망 전역을 신청한 육·해·공군과 해병대 군 간부는 총 2869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4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열악한 처우 등의 복무 여건에도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란 자긍심으로 버텨왔지만 이마저도 무너진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강화하고, 군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란 책을 펴낸 이용우 동덕여대 교수는 과거에 대한 명확한 필벌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랑스의 경우 철저한 숙청을 열망하던 사람들과 용서와 화해를 바랐던 사람들 모두 숙청의 한계를 비판하며 '잊고 싶은 과거'로 평가한다"면서도 "다만 역사 연구자들은 청산의 한계보다는 성과를 더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프랑스도 (나치에 부역한) 대독협력자를 확실하게 처벌했기 때문에 샤를 드골 체제의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청산을 통해 새로운 공화국 체제에서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체제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육·해·공군사관학교에서 국립5·18민주묘지에 참배한 전례가 없을 뿐더러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결과, 국군통수권자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를 군이 그대로 이행한 것"이라며 "12·3 비상계엄과 하나회 숙청 등 군의 과오와 청산에 대한 역사 교육이 앞으로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12·3 비상계엄의 원인에 대해 여야 국회의원들은 다소 결이 다른 진단을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민 통합과 협치가 중요하다는 점에선 뜻을 함께 했다.
지난해 비상계엄 당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었던 조승래 사무총장은 1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윤 전 대통령은 정치력이 아닌 물리력으로 (국정동력을) 회복하려 했다"며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한 게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조 총장은 "민주주의가 쓸모없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우 세력들, 내란을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해야 통합을 이루고 전진할 수 있을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며 "동시에 여당은 여당으로서 내란으로 붕괴된 사회, 경제적 상황들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욱 민주당 의원은 "국민이 국가를 믿어도 된다는 안정감을 확보하는 게 상처를 치유하는 첫 단계"라며 "계엄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국가가 국민을 위협하는 시도였다. 국민들이 미래 방향성을 함께 공유하고 국가를 신뢰한다면 또 다른 쿠데타 시도는 원천적으로 봉쇄될 것"이라고 했다.
계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았던 박찬대 의원은 "시민들의 힘으로 위기를 막았지만,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기에 빠질 수 있고 우리가 이룬 성과도 늘 위태로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늘 경계하고 깨어있어야 한다"며 "정치적 욕구를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지도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국민들은 정치 과정을 철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거대 야당 민주당의 줄탄핵, 무리한 입법 밀어붙이기가 계엄에 영향을 미쳤다"며 "대통령이 부정선거나 '선거관리위원회가 해킹을 당했다'는 음모론을 믿은 것도 개인적 차원에서 책임이 크다"고 했다.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 역시 "민주당이 보였던 위헌적 위법 행태들은 또 다른 극단적 수단을 유도할 수 있다"며 "거대 집권 여당으로서 협상과 협치의 모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재섭 의원은 '권력의 자제'를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극단적으로 (자신의) 권한을 다 사용하게 되는 경우 관행이 무너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이 무너진다"며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모두 잘 새겨야 할 것은 권력(행사)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가 허용한다고 끝까지 쓰는 것이 권력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상휘 의원은 "지금의 정치가 실익적 관점이나 공학적 개념으로만 해석되고, 정권을 획득하는 하나의 수단으로만 활용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정치도 결국 인문학이다. 정치에도 도덕이 필요한 것이고 윤리, 협조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가 안정화돼야 하고 서로 헌법을 준수하며 상호 보완적 관계가 돼야 하는데, 그런 풍토 자체가 말살되는 현실은 여야가 반성할 부분"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