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③새로운 대한민국, 6.3 지방선거부터

대한민국의 재정 구조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매년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이 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집행되지만, 그 결과가 국가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024년 기준 국가보조금 규모는 사상 최초로 100조원을 넘어서 약 102조 원에 달했다. 특히 산업과 중소기업 부문에 투입되는 경제 예산 중 보조금 비중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헝가리 경제학자 야노시 코르나이(Janos Kornai)가 제시한 '연성 예산 제약(Soft Budget Constraint)'의 함정 개념이 떠오른다. 국가가 기업의 손실을 메워주고 생존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질수록, 기업은 혁신과 체질 개선보다는 보조금 수령을 위한 행정 절차에 매몰된다는 개념이다.
이른바 보조금 사냥꾼이라 불리는 한계 기업들이 시장의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유망한 신산업으로 흘러가야 할 자금을 가로막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보조금을 주는 나라에서, 지분을 갖고 투자하는 나라로 재정의 근간을 바꿔야 한다.
보조금 중심의 재정 운용을 투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명확하다. 최근 세계 경제학계는 국가의 역할을 단순한 시장 조정자에서 '가치 창조자'로 재정의하고 있다.
첫째, 리스크 셰어링(Risk Sharing)을 통한 혁신의 가속화이다.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 교수는 저서 '기업가 국가'에서 인터넷, GPS(위성항법장치), 시리(Siri) 등 현대 혁신 기술 대부분이 정부의 직접적인 투자와 리스크 감수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융자나 대출과 달리, 국가는 지분 투자를 통해 기업의 리스크를 함께 짊어진다. 이는 민간 자본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초격차 기술 분야에 기업들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심리적, 재무적 안전판을 제공한다.
둘째, 자산의 환류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다. 보조금은 한 번 나가면 사라지는 매몰 비용이지만, 투자는 기업의 성공 시 배당이나 지분 매각(엑시트)을 통해 원금 이상의 수익을 국가 곳간으로 돌려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세금에만 의존하던 국가 재정을 다변화해 저출생 고령화 시대의 급증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된다.
이미 세계 주요 경제국들은 보조금의 비효율을 깨닫고 국가 자본의 투자 모델을 강화하고 있다. 각 사례는 아래와 같다.
1. 싱가포르 테마섹(Temasek)과 GIC : 싱가포르는 국가 예산을 단순히 소비하지 않는다. 테마섹을 통해 전 세계 유망 기술주와 자국 핵심 기업에 투자한다. 2024년 기준 테마섹의 순자산 가치는 약 3800억 싱가포르 달러(약 380조 원)에 이른다. 싱가포르 정부는 매년 이 투자 수익금(NIRC)을 재정에 편성해 국민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2.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 : 1990년대 초 이스라엘은 보조금 대신 매칭 투자 방식을 선택했다. 정부가 리스크를 분담하되 민간의 전문성을 빌려 투자하고, 기업이 성공하면 민간 투자자가 국가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이 모델은 보조금 의존증을 치료하고 이스라엘을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 국가 중 하나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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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국의 반도체법(CHIPS Act) : 최근 미국조차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초과 이익 공유와 지분 확보를 명문화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투자적 성격을 강화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중소기업 및 산업 지원 예산은 약 30조 원 규모이다. 이 중 상당수가 기술 개발 보조금이나 창업 지원금 명목으로 뿌려진다. 하지만 지원 기간이 끝나면 생존율이 급락하는 데스 밸리(Death Valley) 현상은 여전하다. 이에 아래와 같은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1. 국가는 기업에 보조금을 줄 때 1%라도 회사 주식을 받자. 시작할 때는 적어도 된다. 기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지분을 매각해 수익을 회수하고, 이를 다시 새로운 유망 기업에 투자하는 회전 펀드(Revolving Fund) 시스템을 구축하자. 보조금 의존 기업을 걸러내고 실력 위주 경쟁 체제를 정착시킬 것이다. 형식적인 보조금 신청·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지원의 효과도 자산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2. 공공 데이터와 인프라의 지분화가 필요하다. 국가는 예산을 직접 주는 대신, 국가가 보유한 유무형의 자산을 기업에 현물 출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 AI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해당 스타트업의 지분을 일부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업의 초기 현금 부담을 줄여주면서 국가는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효율적인 투자 방식이 될 수 있다.
보조금 국가는 국민과 기업을 도움이 필요한 약자로 보지만, 투자하는 국가는 이들을 공동 성장의 파트너로 대우한다. 매년 100조 원이 넘는 보조금 중 단 1%, 아니 5%만 투자형 재정으로 전환해도 대한민국은 매년 수조 원 규모의 독자적인 국부 펀드를 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히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문제를 넘어, 국가의 존재 이유를 재정립하는 과정이다. 국가가 투자 수익을 내면, 그 수익은 다시 국민의 가처분 소득 증대나 공공 서비스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국민은 세금을 내는 납세자를 넘어, 국가라는 거대한 기업의 주주로서 당당히 성장의 과실을 배당받아야 한다. 보조금의 늪을 건너 투자라는 광활한 바다로 나아갈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경제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지방정부도 보조금을 줄 때 지분 확보, 투자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해야 한다. 보조금 국가에서 투자하는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삶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