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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前 32번의 '비핵화 협상' 무산...北 '김일성 사진' 찢은 이유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한반도 비핵화를 놓고 남북 간에 32차례 대화가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협상은 물거품이 됐지만 북한은 협상 초기 한국의 비핵화 요구를 조건부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는 30일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32회의 남북 간 핵 문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문서를 공개했다. 2022년 첫 공개 이후 8번째 남북회담 문서 공개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되는 문서는 최초로 남북 당사자 간 북한 핵 문제를 협의했던 시기의 회담 문서"라며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과정과 이후 남북 대표 간 접촉 및 회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공개된 문서들은 △핵문제 협의를 위한 대표접촉(1991. 12. 26. ~1991. 12. 31. )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을 위한 대표접촉(1992. 2. 19. ~1992. 3. 14. )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1992. 3. 19. ~1993. 1. 25. )의 진행 과정과 회의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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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월드컵 TV 중계방송을 허하라[투데이窓/김중식]
축구공만 있으면 즐거웠다. 공간이 부족하면 족구를 했고, 축구공이 없으면 우유팩 차기라도 했다. 축구인생 반백년이니 추억이 없을쏘냐. 1994년 7월 북한 김일성 주석이 죽던 날,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지며 폐를 찔렀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는 기흉(氣胸)이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날, 이회택, 김재한 선수 등 69학번 축구선수 출신들로 구성된 '69회'팀과 경기를 하다 왼쪽 발목이 삐었다. 불굴의 의지로 영원할 줄 알았던 축구인생은 노화(老化)가 진행되면서 끝났다. 혼자서 드리블하거나 터닝을 하다가 제풀에 관절과 근육에 문제가 생겨 깁스나 목발 신세를 지는 날이 많아졌다. 필자는 여전히 자랑스러운 시인축구단 '글발' 창단멤버다. 축구인생이 육체적 부상의 역사였다면, 응원의 역사는 마음의 상처가 덧나는 역사였다. 월드컵은 기쁨보다 슬픔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큰 공'(축구, 농구, 배구 등) 대신 '작은 공'(골프, 배드민턴, 탁구 등)에 올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셀프 인종차별에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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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고립된 독재자에서 지정학적 플레이어로 부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적 고립의 상징에서 중국·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략적 행위자로 부상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 H. 박 브뤼셀 자유대학교 외교·안보전략센터 석좌연구원은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 '북한은 어떻게 승리했는가(How North Korea Won)'에서 "오늘날 북한은 중국·러시아의 환영을 받는 국가로 부상했고 김 위원장은 국제적 왕따에서 지정학적 플레이어로 변신했다"며 "핵무기 개발,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경쟁이 맞물리면서 북한의 위상과 영향력은 한반도를 넘어 국제질서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연구원은 지난 2011년 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할 당시 젊고 경험이 부족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당시 미국 주요 관리들과 북한 전문가들은 그가 군부 원로들에게 밀려나거나 허수아비 지도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과감한 숙청과 공포정치를 통해 권력 엘리트를 장악했고, 동시에 핵 능력과 미사일 개발을 대폭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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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회장 "남북이 모두 버린 6·10만세운동…독립에 좌우 없다"
"6·10 만세운동은 남과 북이 모두 버린 역사입니다. " 황선건 6·10만세운동유족회장은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남쪽에서는 사회주의 계열 운동이라는 이유로, 북측에서는 독립운동가라고 주장한 김일성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논리로 외면 받았다는 주장이다. 황 회장은 "독립운동은 좌우가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6·10만세운동에 참여한 황정환 선생의 손자다. 중동학교 특과 3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황정환 선생은 22살의 나이로 종로구 숭인동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후 징역 1년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렀다. 황 회장은 6·10 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일제의 왜곡과 해방 이후 이념 대립 속에서 소외된 항일 운동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6·10 만세운동에 대해 "조선공산당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으킨 독립운동"이라고 규정했다. 1925년 창건된 조선공산당이 이념을 내세우지 않은 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절대적 해방'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으며, 중국 상해에 있던 김단야가 거사를 기획하고 국내의 권오설이 천도교 구파와 연합해 시위를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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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의 브로맨스…北·中, 새 시대 전략적 협력 선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7년만의 방북 일정이 마무리됐다. 시 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에선 한반도, 비핵화란 단어는 빠졌다. 대신 전략적 협력과 군사 교류, 무역 협력 등이 새 시대의 북중 관계 발전 방안으로 제시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9일 오후 북한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차이치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판공청 주임,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 등 수행 인원들도 같은 항공편으로 귀국했다. ━7년만의 북중 브로맨스…새 시대 전략적 협력 선언━ 양국 정상은 친밀감을 과시하면서 교류·협력 관계를 한층 격상시킨 모습을 대내외에 보였다.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2019년 6월 이후 약 7년만이었다. 시 주석의 올해 첫 순방이기도 했다. 시 주석이 이번 방북에 작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단 증거다. 김 위원장은 최고 수준의 국빈 의전으로 시 주석을 대했다. 김 위원장 부부가 공항에서 부터 시 주석 부부를 직접 영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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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7년전 최고 예우' 재현…공항서 시진핑 부부 직접 영접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위한 환영식이 개최됐다. 공항에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영접을 받은 시 주석은 김 위원장과 함께 의장대 사열 등 환영식 행사를 함께 소화했다. 8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정오 전용기를 타고 평양에 도착해 북한 국빈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공항에 나와 시 주석을 영접했다.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도 공항에서 시 주석을 맞이했다. 이번 방북에는 시 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와 차이치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판공청 주임,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동행했다. 공항에 도착한 시 주석은 김 위원장과 악수를 나눴고 북한 어린이들은 시 주석과 펑 여사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이어 김일성광장에서 환영식이 열렸다. 시 주석과 펑 여사가 차량으로 광장에 도착하자 기마의장대가 도열해 영접했고 군악대가 환영곡을 연주했다. 김 위원장과 리 여사가 시 주석, 펑 여사를 광장에서 직접 맞이했다. 김일성광장 중앙에는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의 대형 초상화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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