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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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조 원장은 비고시 출신으로 통일부 차관까지 올랐다. 통일부의 전신인 국토통일원 조사연구실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래 통일원 정보분석실,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장 등을 거쳤다. 자타가 공인하는 통일 전문가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수행원 자격으로 직접 방북했다. 이후 지난해 2월 통일부 차관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각종 남북고위급 회담의 대표로 활약했다. 특히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철도 및 도로 연결 등 굵직굵직한 대북사업들 중에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로 남북관계의 산증인이다. 25년 넘도록 통일 한 길만을 걸어서인지 주변에서는 '뚝심과 철학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통일부 공무원들은 그를 '일 잘하는 공무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정책맨', '업무철저'라는 얘기와 함께 '차기 장관감'이라는 다소 정치적인(?) 발언도 들린다. 업무 외 사적인 얘기는 너무 들리지 않아 혹 별명이나 재미있는 일
통일의 길이 험해서일까. 통일연구원으로 가는 길도 그다지 수월치가 않았다. 생긴지 10년이 넘었고, 건물도 3개동이나 쓴다고 들었지만 택시기사는 위치를 몰랐다. 신호 대기 중인 음식배달원의 도움을 받아 거의 비포장인 것 같은 수유동 2차선 도로의 끝에 닿으니 '통일교육원'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떨어지는 요즘, 시내 한 복판도 아니고 이런 외딴 곳에 자청해서 통일교육 받겠다고 오는 이들이 있을까 싶었다. 얼마 전 모 여론조사에서 '통일이 불필요하다'고 답한 대학생 비율은 12%나 됐다. 하기야 남북정상회담이 없었어도 통일연구원장 인터뷰에 나섰을까에 생각이 미치니 대학생들 의식을 문제 삼기도 민망한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문제처럼 통일문제 역시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임에 분명하다.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으로 원장실 앞에 이르니 '分久必合(분구필합)'이란 네 글자가 쓰여진 액자가 일행을 맞았다. '나뉘어 오래되면 반드시 합한다'는 뜻. 삼국지에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에 다녀온 경제계 인사와 기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제협력 분야에서 많은 합의가 이뤄진 만큼 앞으로 한국 기업들의 대북사업이 활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한국토지공사는 남북경협을 이끌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토지공사는 남북경협의 대명사인 개성공단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해주경제특구 개발도 도맡을 가능성이 크다. 토지공사 김재현 사장이 남북정상회담에 임박해 갑자기 특별수행원 명단에 오른 것, 오는 11월 임기가 끝나는 김 사장을 1년간 연임하는 방향으로 힘이 쏠리는 것 등은 남북경협에서 토공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토지공사 김재현 사장을 만나 개성공단, 해주특구 등 남북경협사업과 행정중심복합도시 등 굵직한 사업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에 다녀오셨는데 소감은.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 분계선을 걸어서 북한으로 넘어갈 때는 왠지 가슴이 뭉
김재현 사장(62)은 한국토지공사 30년 역사에서 내부 승진을 통해 최고경영자(CEO)가 된 두번째 인물이다. 김 사장은 지난 79년 토공에 입사한 이후 자유로와 통일동산, 광주국가공단 조성 사업을 맡아 추진했으며 전남지사장, 품질관리처장, 택지본부장, 부사장 등을 거쳐 지난 2003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의 김재현 사장은 품질관리처장을 지내며 경영리더로 완전히 전환했다. 1996년 미국 말콤볼드리지 품질경영(QM) 모형을 국내 공기업에 최초로 접목하면서 기업의 경영활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이다. 품질경영 모형을 도입한 지 7년후 김 사장은 엔지니어에서 15조원의 예산을 총괄하는 토지공사의 최고경영자로 승진했다. 김 사장은 토지공사 내에서 '불도저'로 통한다. 육중한 외모 때문에 붙여진 별명 같지만 한번 결정한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밀어 붙이는 업무 스타일에서 비롯된 애칭이다. 철탑산업훈장 등 무수한 수상 경력이 말해 주듯
수출입은행법 개정안 정기국회 제출 영화등 서비스산업 금융지원 활성화 경협 본격화 대북거래 종합창구될 것 "국내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가장 먼저 찾는 '해외 진출의 길라잡이'가 되겠습니다. 금융지원 외에 정보, 컨설팅 등 비금융 서비스를 강화해 사업 초기부터 계획을 짜주는 금융조정자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양천식 수출입은행장은 해외에 진출하려는 기업으로 금융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제관료에서 은행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지 한 해를 갓 넘긴 그는 국내은행의 투자은행(IB)부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대출 외에 업무영역을 점차 넓혀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로 해외시장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서브프라임은 근본적으로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금융기관 신뢰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현재 씨티, UBS 등 세계 일류 금융기관의 3/4분기 실적이 나오고 있는데, 일부가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이들 기관의 3/4분기 실적이 앞으로
박경수 회장(56)은 코스닥에 상장된 피에스케이의 대표이사로 반도체 관련 무역업을 시작으로 21년간 반도체산업과 함께 했다. 코스닥 초창기인 99년 코스닥상장법인협의회 임원을 맡아 코스닥시장과 코스닥 상장기업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한국기업의 미국지사에서 근무하면서 미래 산업으로 각광 받던 반도체장비 분야에 뛰어들 결심을 굳히고 국내로 돌아와 86년 피에스케이의 모회사인 ㈜금영을 설립했다.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커리어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모험이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이 없다면 꿈을 현실로 이루지도 못할 것이다." 박 회장은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요즘은 대학 강연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꿈과 도전정신을 심어주는 일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뚝심 있는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90년대 중반 일본 합작사의 기술협력 중단, 외환위기 한파와 2000년대 초 IT산업의 불황 속에서도 세계 최고를 향한 연구개
"국내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이 적습니다. 중견기업을 키우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경수 코스닥상장법인협의회 회장은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탄탄한 중견기업들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매출 몇천억원 정도는 하는 중견기업들이 많아져야 해외에 나가 제대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중견기업을 많이 키우기 위한 방도로 박 회장은 기업가 정신과 함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에 주는 혜택에 안주하려는 기업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한계를 갓 넘은 기업에게도 어느 선까지 정책적 지원을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오래전 만들어진 중소기업에 대한 범위와 지원책으로선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중견기업들을 육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박 회장은 코스닥 시장이 중견기업 육성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점도 높게 샀다. 박 회장은 "코스닥 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이 100조원이 넘는데 세계적으로 나스
이상수 노동부 장관(61)에게 어딜 가나 꼭 따라붙는 게 있다. '정치인 출신'이라는 꼬리표다. 그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정치를 하면서 단맛, 쓴맛을 모두 맛본 인물이다. 젊은 시절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모두가 선망하는 법관이 됐다. 그러다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시절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의 영장을 기각하고 변호사로 변신했다. 부천서 권인숙 양 성고문사건, 대우옥포조선소 근로자 사망사건의 변론을 맡는 등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 6월 항쟁때 사회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게 계기가 돼 88년에 정계에 진출했다. 탄탄대로였다. 13·15·16대에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민주당 원내총무와 사무총장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2002년 대선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줬다. '개국공신'이면서도 노무현 후보의 대선자금 관리를 총괄했던 죄로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사면복권후 명예회복을 하기 위해 2005년 10·26 재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한뒤 지난해 2월 장관직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솔직담백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이 장관은 '머투초대석'과의 인터뷰에서도 "묻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찔러보라"고 주문했다. 이 장관은 노사갈등의 최전선에 있는 비정규직법 문제를 비롯한 각종 노동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경영계가 자신을 너무 미워하고 있다"며 서운함을 피력하기도 했다. 정기국회를 끝내고 정치권 복귀의사도 피력했다. 이 장관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듯 가끔씩 질문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답을 쏟아냈다. 지난 6일 정부과천청사 장관실에서 이 장관과 만났다. -최근 기아자동차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가 통합했는데 불법 논란이 있습니다 ▶원청과 하청 노조가 결합하는 것으로 법적으로는 가능한데 여러가지 문제가 제기될 것 같습니다. 사용자를 달리하기 때문에 교섭의 범위도 나누어서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새로운 형태의 노사관계가 만들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저희도 스터디를 하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황중연 원장은 정보통신부와 우정사업본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전통 관료 출신이다. 행시 20회로 지난 78년 정보통신부(전 체신부)에 임용돼 정보통신기술심의관과 전파방송관리국 전파기획과장, 공보관, 우정국장, 국제협력관, 전파방송관리국장을 거쳐 2005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우정사업본부장을 맡았다. 특히 부산체신청장(2001년), 서울체신청장(2003년) 재임시 '우정사업 경영평가 최고대상' 3회를 수상하는 등 전문 CEO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우정사업본부장 시절에도 6시그마 운동으로 260억원의 재무성과를 기록하는 등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단호한 업무추진 능력이 돋보이지만 직원들과 격이 없는 성품으로도 유명하다. KISA 원장으로 취임 한 뒤에도 직원들과 직급별로 대화와 토론를 하고 있다. 신입사원들과는 함께 영화도 보고, 맥주도 한잔하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복날에는 전직원에게 사비로 아이스크림과 수박을 돌리기도 하고, 진
'잘하면 본전' 취급을 받는 곳이 더러 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이 그중 한곳이다. 맡은 역할이 해킹, 바이러스로 인한 침해사고 대응, 개인정보보호, 스팸 대응 등 정보보호 업무이다보니 어쩌면 당연하다. 평소에는 관심이 없다가 해킹사고나 스팸사건이 터지면 여지없이 이곳저곳서 책임을 묻곤한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짧은 시기에 세계 최강 IT 강국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년간 책임감을 갖고 묵묵히 일해온 이같은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996년 설립된 이래 사이버코리아의 파수꾼 역할을 자임해왔던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이 또 다른 새로운 변신에 나섰다. 오는 2010년까지의 국내 정보보호 대계(大計)와 KISA의 위상정립 방안를 담은 중장기 사업전략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등에서 30년동안 공직에 몸담다 지난 4월 새로운 수장을 맡게된 황중연 원장이 직접 진두지휘해 만들어낸 첫작품이다. 황 원장은 "이를 통해 기필코 2010
서범석 이사장은 취임후 "직원을 섬기는 자세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본인을 낮추고 그만큼 직원들을 배려하겠다는 의지다. 서범석 이사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직원들을 '섬긴다'고 한 것도 신앙심의 표현이다. 그는 실제로 직원들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 경조사 뿐 아니라 회의 주관도 본인이 직접 챙긴다. 사내에 마련된 전자결제 시스템도 신속히 처리하지 않은 경우가 없을 정도다. 외부 강연이 잦지만 일정에 따라 미리 보고 받을 만큼 일을 미루지 않는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그렇다고 보수적이거나 우유부단함과는 거리가 멀다. 연금운용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인 점과 교육부 차관시절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교육방송을 추진한 사례도 그렇다. 옳다고 믿으면 반드시 해 내야 된다. 관료 출신이지만 투자에 대한 개념도 명확하다. 투자는 효율성이 중요하다. 일례로 교육부 차관 시절 인터넷 교육방송을 준비할 때 서버 용량이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최대 동시 접속자수를 감안해 서버를 증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