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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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일이다. 사실 좀 재미없는 사람이다."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자신을 한마디로 '워커홀릭'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1월 20일 중소기업청장에 취임한 이후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해왔다. 주 청장은 취임 초 '빨간불'이 켜진 중소기업의 수출을 회복하기 위해 국무회의와 무역투자회의에 참석하고, 수출기업인 간담회까지 소화했다. 개성공단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매일매일 현장상황을 보고받고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관련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평일에도 밤 11시 넘어서까지 업무보고를 챙기고, 집에 갈 때도 검토 보고서를 한 보따리씩 안고 간다는 후문이다. 주 청장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본 중소기업계 사람들은 "열정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주 청장은 기업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30년차 기업인' 출신이다. 1980년 대우그룹에 입사한 뒤 20년 간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등에서 기획, 연구소, 전략 등의 업무를 도맡았다. 2000년 대우그룹 해체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지난달 중소기업청의 20년 역사에서 첫 기업인 출신 청장에 올랐다. 주 청장은 대우전자에 입사한 후 GE(제너럴일렉트릭)·현대오토넷·현대모비스 등 외국 및 국내 대기업의 대표이사 등을 거쳐 지식경제부 R&D(연구·개발) 전략기획단, 서울대 융학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 등 산·관·학을 두루 섭렵한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36년간 기업과 정부, 대학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실효성 높은 정책을 펼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밝혔다. 특히 주 청장은 자신의 주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부 지원 R&D사업의 전면 개편을 예고했다. 한해 모든 부처가 R&D지원에 19조원, 중기청 자체적으로 1조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나 개발한 기술을 사업으로 연결하는 고리가 약한 만큼 그 근본 원인을 파악해 대대적으로 손질하겠다는 각오다. 주 청장은 "시장이 원하는 R&D 과제를 선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절차적 타당성을 중시하느라 R&D를 기획·평가·선정하는 외부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 발을 내디뎌 중앙으로 들어가 보니 가부좌를 틀고 앉은 거대한 ‘철불’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인자한 부처의 시선 아래 서니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렇게 고운 선이 있는 우리 조각을 우리가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지요.” 김영나(65)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을 짧게 구경시켜달라는 요청에 마치 신 난 어린아이처럼 전시관 이곳저곳을 소개했다. 반가사유상, 신라 왕실 금관 등 아름다운 소장품들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금관이 유리 너머에 있지만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 같지요? 무반사 유리로 바꿔서 주변의 빛이 반사되지 않는 거예요.” 이번엔 금속공예실이다. “잠시만요, 종소리 한번 들어보실래요.” ‘댕, 댕.’ “어머 진짜 종소리네요.” “하하하, 우리 박물관에 첨단 기술도 적용해 봤어요.” 산사에서 새벽 예불을 알릴 때나 들을 수 있을 듯한 맑은 종소리를 박물관에 전시된 보물 ‘천흥사 종’(고려
'부녀 관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올라 2011년 취임 당시 화제를 모았던 김영나(65)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관장직을 맡은 지 올해로 6년째다. 그는 "아버지께서 '박물관장이란 참 좋은 직업이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뒤를 잇게 됐다"며 웃었다. 김 관장은 서양화 및 근대미술사를 주로 연구해 온 미술사학자다. 첫째 언니 김리나(74) 홍익대 명예교수도 불교 조각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전문가다. 아버지를 비롯해 두 딸이 모두 미술에 평생을 바친 '미술학자' 집안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박물관을 집처럼 생각했다는 김 관장은 우리 박물관의 변천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뮬렌버그대에서 미술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및 박물관장을 거쳐 한국 근현대미술사학회장을 맡았다. 이외에도 서양미술사학회 회장, 한국미술사교육연구회 회장,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 한국근
김재천 주택금융공사(이하 주금공) 사장은 한국은행에서 30여년을 재직하며 조사국과 금융시장국 등 주요 보직에서 두루 이력을 쌓은 정통 '한은맨' 이다. 그의 이런 이력에 걸맞게 주택금융공사 취임 후 가장 눈에 띄는 행보 역시 주금공의 연구 기능 강화다. 주금공은 지난해 부산대 수학과, 포항공과대와 각각 산학협력을 맺었다. 장기고정금리 정책 모기지와 주택저당증권(MBS) 구조, 주택연금액 산정 등 수리적 모델이 필요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특히 부산대 수학과와는 금융산업과 수학의 공동 발전을 추구한다는 취지로 정부에서 사업비를 전액 지원 받았다. 올해는 주금공 내 주택금융연구소를 주택금융연구원로 확대 개편하고 연구와 해외협력 업무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연구원 내 해외교류 사업을 전담할 국제협력팀을 신설했고 올해 1분기 중 리스크 관리와 주택금융분야의 박사급 전문연구인력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현재 주택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주택과 금융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평균 40.6%인데 한국은 21.2%밖에 안 됩니다.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공적 수단이 현재로선 주택연금입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만 60세에 접어든 베이비부머 대부분이 집 한 채는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평균 81.9%에 달해 노후생활을 위해선 부동산 활용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김재천 한국주택금융공사(이하 주금공) 사장은 주택연금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덜 알려졌다며 아쉬워했다. 지난해 주택연금 신규 가입자수는 6500명으로1년 전 대비 가입자수 증가폭이 30% 늘었으나 아직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금공은 지난해말 기준 2만9000명인 전체 주택연금 가입자수를 2020년에 14만명, 2030명에 33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가 고령층 가계부채 해결과 소득 창출, 소비진작 등을 위해 주택연금 활성화를 주요 과제로 내세우면서 주택연금을 담당하는 주금공의 역할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사진)은 경상남도 김해 삼방동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계곡물을 먹고 자랐다며 우스개소리로 자신을 '삼방동 흙수저'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건설업과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까지 김해에서 나온 그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입학했다. 이후 동대학에서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행정학을 전공한 그가 건설업계로 방향을 틀게 된 이유는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해외건설정책 사례 연구'를 정하면서부터다. 사례 분석을 위해 업계 고위공무원과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건설업에 대한 흥미와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때마침 1995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출범하고 이 원장은 초기 연구원 멤버로 합류했다. 연구원에서 건설정책연구실장까지 12년을 근무하면서 전문가로 이름을 알릴 때 GS건설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고민 끝에 결정했죠. 실무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GS건설에서 전략 담당 및 경영연구소 소장으로
"건설업도 '현대차'와 '삼성'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 나오지 말란 법 있습니까?" 업계에 대한 우려가 먼저 쏟아질 줄 알았는데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사진)의 입에서는 '글로벌 플레이어'라는 단어가 먼저 나왔다. 건설업계는 올해 기로에 서 있다. 국내 주택시장은 대출규제와 금리 인상, 주택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로 연초부터 찬 바람이 분다. 해외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이란 제재 해제로 새 시장이 열렸지만 국제 유가의 하락, 중국 증시 쇼크 등으로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 건설업계의 씽크탱크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수장으로 한 달 전 취임한 이상호 원장을 지난 21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건설업계가 시스템을 정비해 위기를 관리하는 것과 동시에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신시장 개척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잘 안 먹혔어요. (웃음) 요즘은 확실히 달라요. 그만큼 업체마다 고민이 크다는 거죠." 그는 "이제야말로
“올해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지능화 시대의 원년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가 정보화 사업이 시작된 지 30여년이 흘렀다. 과거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계획 등 정보기술(IT) 인프라 속도 확장에 중점을 뒀던 국가 정보화 프로젝트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IT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디딤돌이 됐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보화 사회 그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지능화 시대다. 지능화란 인공지능(AI)이 접목된 새로운 정보 사회로, 더 빠르고 정확하고 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사회를 말한다.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인간형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머니투데이가 한국정보화진흥원(NIA) 서병조 원장(사진)을 만나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전개될 지능화 시대의 청사진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1987년 한국전산원을 모태로 2009년 한국정보사회진흥원과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을 통합해 출범한 ICT 정책·기술 자문 전문기관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다니는 직원들이라면 누구나 일 년에 한 번은 검정색 팬으로 꼼꼼히 적은 생일축하 메시지가 담긴 책을 선물 받는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서병조 원장(사진)은 직원들이 생일을 맞아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면 그 책을 선물해 건네주면서 한 켠에 짧은 편지를 써서 보낸다. 400명이 조금 넘는 직원들 이름을 깨알같이 외우는 서 원장은 직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각기 다른 내용의 짧은 메모를 동봉한다. 직원들에게는 기쁨이요, 서 원장에게는 보람이다.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사회에 입문한 서 원장은 20년간 정보통신분야에서 기량을 닦은 ICT(정보통신기술) 전문가다. 정보통신부와는 1996년부터 연을 맺었다. 정보보호기획단장, 방송통신위원회 융합정책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2010년 방송통신융합정책실장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에 몸담으면서 국가 IT 전략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참여했
지난해 예산 정국 때, 임성호 입법조사처장은 국회 본청을 이리뛰고 저리뛰었다. 그가 지난해 처음으로 시도했던 ‘국정감사 시정 및 처리결과 평가보고서’ 관련 예산을 따내기 위해서였다. 국회 운영위원회 여야 간사를 만나 조르고 졸랐다. 이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 및 위원장까지 모두 만나 보고서의 중요성과 의미를 설명했다. 3개월여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불가 방침’에 눈물을 훔쳐야 했다. 하나의 사업에서만 수천억원의 예산을 보태고 깎는 예결특위에서 1억8000만원의 돈은 그리 주목받는 액수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정부보다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등 갈등을 빚으면서 그동안 제 목소리를 내온 입법조사처까지 불똥이 튄 것이다. 임 처장은 “행정부가 시정해야 할 내용들을 11개 의제로 나눠 분석한 자료로 지난해 처음으로 발간돼 국회의원들의 반향이 매우 좋았다”며 “별도 항목을 만들어 꾸준히 나올 수 있도록 하려 했는데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 고향은 충남 서산군 운산면이다. 운산면에서도 산골마을로 꼽히는 원평리 으름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3남3녀 중 막내아들인 그는 수재들만 모인다는 대전고로 유학(?)을 떠날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다. 그가 서울대 화학교육과를 선택한 것은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교사가 가장 안정적인 직업 중 하나여서 부모님은 사범대를 가서 교사가 되길 원하셨죠. 고등학교 때 화학에 관심이 많아서 선택한 것이 화학교육과였습니다." 막상 대학을 들어가니 화학이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꼈다. 실용적인 연구를 하고 싶어 교직을 포기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최대 화학기업이었던 유공에서 연구원을 뽑았는데 이 사장은 면접에서 떨어졌다. "'연구 말고 다른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봐서 '그러면 관두겠다'고 그랬더니 떨어지더라고요…(웃음)" 이 사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회사를 원했고 1984년 운명처럼 병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