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총 1,441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평균 40.6%인데 한국은 21.2%밖에 안 됩니다.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공적 수단이 현재로선 주택연금입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만 60세에 접어든 베이비부머 대부분이 집 한 채는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평균 81.9%에 달해 노후생활을 위해선 부동산 활용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김재천 한국주택금융공사(이하 주금공) 사장은 주택연금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덜 알려졌다며 아쉬워했다. 지난해 주택연금 신규 가입자수는 6500명으로1년 전 대비 가입자수 증가폭이 30% 늘었으나 아직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금공은 지난해말 기준 2만9000명인 전체 주택연금 가입자수를 2020년에 14만명, 2030명에 33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가 고령층 가계부채 해결과 소득 창출, 소비진작 등을 위해 주택연금 활성화를 주요 과제로 내세우면서 주택연금을 담당하는 주금공의 역할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사진)은 경상남도 김해 삼방동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계곡물을 먹고 자랐다며 우스개소리로 자신을 '삼방동 흙수저'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건설업과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까지 김해에서 나온 그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입학했다. 이후 동대학에서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행정학을 전공한 그가 건설업계로 방향을 틀게 된 이유는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해외건설정책 사례 연구'를 정하면서부터다. 사례 분석을 위해 업계 고위공무원과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건설업에 대한 흥미와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때마침 1995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출범하고 이 원장은 초기 연구원 멤버로 합류했다. 연구원에서 건설정책연구실장까지 12년을 근무하면서 전문가로 이름을 알릴 때 GS건설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고민 끝에 결정했죠. 실무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GS건설에서 전략 담당 및 경영연구소 소장으로
"건설업도 '현대차'와 '삼성'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 나오지 말란 법 있습니까?" 업계에 대한 우려가 먼저 쏟아질 줄 알았는데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사진)의 입에서는 '글로벌 플레이어'라는 단어가 먼저 나왔다. 건설업계는 올해 기로에 서 있다. 국내 주택시장은 대출규제와 금리 인상, 주택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로 연초부터 찬 바람이 분다. 해외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이란 제재 해제로 새 시장이 열렸지만 국제 유가의 하락, 중국 증시 쇼크 등으로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 건설업계의 씽크탱크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수장으로 한 달 전 취임한 이상호 원장을 지난 21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건설업계가 시스템을 정비해 위기를 관리하는 것과 동시에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신시장 개척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잘 안 먹혔어요. (웃음) 요즘은 확실히 달라요. 그만큼 업체마다 고민이 크다는 거죠." 그는 "이제야말로
“올해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지능화 시대의 원년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가 정보화 사업이 시작된 지 30여년이 흘렀다. 과거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계획 등 정보기술(IT) 인프라 속도 확장에 중점을 뒀던 국가 정보화 프로젝트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IT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디딤돌이 됐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보화 사회 그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지능화 시대다. 지능화란 인공지능(AI)이 접목된 새로운 정보 사회로, 더 빠르고 정확하고 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사회를 말한다.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인간형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머니투데이가 한국정보화진흥원(NIA) 서병조 원장(사진)을 만나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전개될 지능화 시대의 청사진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1987년 한국전산원을 모태로 2009년 한국정보사회진흥원과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을 통합해 출범한 ICT 정책·기술 자문 전문기관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다니는 직원들이라면 누구나 일 년에 한 번은 검정색 팬으로 꼼꼼히 적은 생일축하 메시지가 담긴 책을 선물 받는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서병조 원장(사진)은 직원들이 생일을 맞아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면 그 책을 선물해 건네주면서 한 켠에 짧은 편지를 써서 보낸다. 400명이 조금 넘는 직원들 이름을 깨알같이 외우는 서 원장은 직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각기 다른 내용의 짧은 메모를 동봉한다. 직원들에게는 기쁨이요, 서 원장에게는 보람이다.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사회에 입문한 서 원장은 20년간 정보통신분야에서 기량을 닦은 ICT(정보통신기술) 전문가다. 정보통신부와는 1996년부터 연을 맺었다. 정보보호기획단장, 방송통신위원회 융합정책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2010년 방송통신융합정책실장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에 몸담으면서 국가 IT 전략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참여했
지난해 예산 정국 때, 임성호 입법조사처장은 국회 본청을 이리뛰고 저리뛰었다. 그가 지난해 처음으로 시도했던 ‘국정감사 시정 및 처리결과 평가보고서’ 관련 예산을 따내기 위해서였다. 국회 운영위원회 여야 간사를 만나 조르고 졸랐다. 이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 및 위원장까지 모두 만나 보고서의 중요성과 의미를 설명했다. 3개월여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불가 방침’에 눈물을 훔쳐야 했다. 하나의 사업에서만 수천억원의 예산을 보태고 깎는 예결특위에서 1억8000만원의 돈은 그리 주목받는 액수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정부보다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등 갈등을 빚으면서 그동안 제 목소리를 내온 입법조사처까지 불똥이 튄 것이다. 임 처장은 “행정부가 시정해야 할 내용들을 11개 의제로 나눠 분석한 자료로 지난해 처음으로 발간돼 국회의원들의 반향이 매우 좋았다”며 “별도 항목을 만들어 꾸준히 나올 수 있도록 하려 했는데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 고향은 충남 서산군 운산면이다. 운산면에서도 산골마을로 꼽히는 원평리 으름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3남3녀 중 막내아들인 그는 수재들만 모인다는 대전고로 유학(?)을 떠날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다. 그가 서울대 화학교육과를 선택한 것은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교사가 가장 안정적인 직업 중 하나여서 부모님은 사범대를 가서 교사가 되길 원하셨죠. 고등학교 때 화학에 관심이 많아서 선택한 것이 화학교육과였습니다." 막상 대학을 들어가니 화학이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꼈다. 실용적인 연구를 하고 싶어 교직을 포기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최대 화학기업이었던 유공에서 연구원을 뽑았는데 이 사장은 면접에서 떨어졌다. "'연구 말고 다른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봐서 '그러면 관두겠다'고 그랬더니 떨어지더라고요…(웃음)" 이 사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회사를 원했고 1984년 운명처럼 병역
"이러다가 회사 말아먹는 것 아냐?" 2015년 1월1일 한미약품 집무실에 앉아 있는 이관순 사장 귓가에 주변의 질타가 환청처럼 맴돌았다. 이 사장은 "당시는 새해가 밝는 게 너무나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회사 실적은 부진한데 연구·개발(R&D)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4년 R&D비용은 1525억원으로 매출의 20% 수준이었다. 매출 7000억원대 작은 제약사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수준이었다. 더욱이 몇 가지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의 글로벌 임상시험이 본격화되면서 R&D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연구성과가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천억원을 투자한 신약후보물질을 다른 제약사에 팔아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회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이었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임금 동결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일해준 직원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절박함으로 기술수출에 나섰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7개의 신
중소기업중앙회장은 340만 중소기업을 대변하며 산하 20개 단체 및 900개의 조합을 이끈다. 중소기업계의 대통령인 '중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초심을 잃기도 쉬운 자리지만 지난 2월 취임한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은 역대 어느 회장보다 권위를 내려놓고 '실사구시'의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뒤 레미콘·아스콘업체 '산하'를 세우며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힘들지만 옳은 길인 정도경영을 추구했다. 중기중앙회장 취임 이후 행보도 그가 살아온 길의 연장선에 있다. 취임 후 곧바로 매달 1000만원 가량 나오는 대외활동수당과 중기중앙회 명의로 된 법인카드를 모두 반납한 것은 박 회장의 스타일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사심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아스콘연합회장을 맡을 당시에도 그랬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취임 10개월 동안 중기중앙회의 단기적 과제와 함께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며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는데 주력했다. 우선 중기중앙회의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용장(勇將)·지장(智將)·덕장(德將) 중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디에 속하는지를 묻자 잠시 고민하다 "덕장으로 남길 바란다"고 답했다. 그는 "리더는 덕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박 회장의 품성이 그대로 드러난 답변이다. '덕장'이라고 확언할 법도 한데, 자신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내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여지를 남기며 자신의 뜻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박 회장의 주변은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스콘연합회장을 맡을 때도, '무명'으로 중소기업중앙회장에 출마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때론 믿음직한 형님 같이, 때론 곰살맞은 동생 같은 모습으로 주변에 쌓아온 신뢰 때문이라는 평가다. 1957년 경기도 안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 회장은 넉넉치못한 가정형편으로 야간 중학교를 다녔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1984년 LG금속(현 LS니꼬동제련)에 입사했다. LG에서 미래전략을 수립하는 TF(태스크포스)에
'호랑이 선생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야금을 배우던 학생들이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을 부르던 별명이다. 본인의 연주도, 학생의 교육도, 기관의 운영도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김 원장의 원칙 때문에 국립국악원 직원들은 '무섭지만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18대 국립국악원장인 그는 국립국악원 최초의 여성 원장이다. 60년 넘은 역사상 남성 관료가 주로 맡았던 원장 자리를 연주자 출신의 여성이 맡게 되면서 지난 2014년 취임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원장은 서울대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지난 2013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로 재직했고 2005년부터 2년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실장을 지냈다.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로 산조의 지경을 넓혔다는 평을 받고 있는 국내 최고 가야금 명인 김 원장은 연주뿐만 아니라 교육, 집필, 대중화 등 국악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열정을 쏟고 있는 보기
잔잔하게 시작한 가락은 명인의 손가락 아래에서 점차 속도를 내며 여성스러우면서도 빠르게 몰아치는 동살풀이 가락(망자를 천도하기 위한 씻김굿 절차 중 주로 사용되는 장단)으로 치달았다. 이름난 기타리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가 선보이는 기교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한 무리의 무용수가 까치발로 종종걸음 무대 중심에서 바깥으로 달려갔다가 다시 차례로 들어오는 군무가 연상됐다. ‘아, 이게 산조구나.’ 설명 없이도 알 것 같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연주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죠? 한 번만 제대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면 국악에 대한 부담은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인터뷰 후 연주를 들려달라는 기자의 즉석 부탁에 김해숙 국립국악원장(61)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야금을 펼쳤다. 직접 작곡한 곡이라며 들려준 짧은 연주는 그가 어디서고 자신을 ‘연주가’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대로 설명됐다. 국립국악원은 신라 시대부터 시작된 국악을 책임지는 국가 기관의 명맥을 잇는 조직이다. 형식적으로는 그저 중앙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