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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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국정 과제의 큰 어젠다가 됐습니다. 손해보험은 재난사고 사후 대책으로 제공될 수 있는 사회 제도 중 인류가 만든 가장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취임 석 달을 맞은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사진)이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다. 장 회장은 지난 9월 취임사에서 당면한 과제로 △사회 안전망으로서 손해보험의 역할 △노령화 사회에 적합한 상품 개발△자동차보험 정상화 △막대한 보험금 누수를 유발하는 보험사기 방지 등을 꼽았다. 장 회장은 "우리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됐지만 이에 대비한 비용은 충분치 않다"면서 "노후 실손 의료를 포함해 요양시설에 입원하는 동안 지급되는 비용을 담보하는 상품을 제공하는 게 손보의 큰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손보협회는 '관피아' 논란 속에서 1년 가까이 협회장을 선임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험사 사장 출신인 장 회장이 선임되자 '기대'와 '우려'가 함께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석 달, 장 회장의 의욕적
이일규(사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초대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28기로 1978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중기청 기술지원국장, 창업벤처국장을 거쳐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을 역임했다. 이후 민간으로 나와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 한국디자인경영협회 이사장 등 디자인 분야에 몸담아왔다. 관과 민을 두루 거쳤지만 관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 이사장은 취임 초 '관피아' 논란을 겪기도 했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이 이사장을 상대로 "관피아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 이사장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2006년 공직을 떠난 뒤 8년간 민간 전문가로 활동해온 만큼 굳이 꼬리표를 붙인다면 '민피아'"라며 "민간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해보이겠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실제로 이 이사장은 고려대와 중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디자인진흥원을 나온 직후인 2006년부터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디자인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치는 등 나이를 잊은 향학열을
"젊음과 활기가 넘치는 전통시장, 그리고 소상공인의 성공적인 창업모델을 만들겠다." 이일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하 소진공) 이사장은 올 한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지난 1월 3일 취임 이후 지역별 전통시장은 물론이고 대전 본사와 정부청사, 세종시와 서울까지 오가며 현장의 공단 직원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지난달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한 해중 가장 큰 이벤트인 '전국우수시장박람회'를 위해 경남 창원에 다녀왔다. 이제는 다시 '예산 국회'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출범한 소진공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지난해 4월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진흥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소상공인진흥원과 시장경영진흥원을 통합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올초 출범했다. 이 이사장은 1년 간 물리적으로 합쳐진 두 조직을 통합하고, 내년부터 직접 운용하는 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을 집행하기 위한 준비에 '올인' 했다. 지난 23일 소진공 서울지역본부에서 이 이사장을 만나 소진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총경 시절 서울 경비의 핵심인 종로경찰서장과 22경찰경호대장, 101경비단장 등을 역임해 경찰 내 대표적인 '경비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나와 간부후보 33기로 경찰에 입직했다. 구 청장은 "교통과 수사, 생활안전, 외사 등 다양한 업무를 해왔다"며 "상대적으로 최근에 경비부서에서 많이 근무해 경비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무관 승진 이후에는 중앙경찰학교장과 충북지방청장, 경찰청 외사국장 등으로 재직했다. 선이 굵으면서도 소탈해 현장 경찰들과의 소통에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강신명 전 서울청장(현 경찰청장)도 사회안전비서관 출신으로 서울청장 2명이 잇따라 청와대 출신이 임명됐다.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 출신이다. ◇구은수 서울청장 약력 △1958년 충복 옥천 △충남고 졸업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1985년 경위 입직(간부후보 33기) △200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위 사진)은 지난 9월 1일 취임 이후 두달 가까운 시간동안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서울청의 업무현황 파악은 기본이고 지난 20일 국정감사, 21일 경찰의 날 행사 등 굵직한 '이벤트'도 치렀다. 1000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서울 경찰의 총책임자로서 장단기적인 '밑그림'도 고민해야 했다. 지난 22일 집무실에서 만난 구은수 서울청장은 "요 며칠 워낙 바빠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아내가 도와줬을 정도"라며 멋쩍게 웃었다. 구 서울청창이 취임 이후 언론사 인터뷰에 나선 것은 머니투데이가 처음이다. 구 청장은 "사람들을 만나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경찰을 보면 왠지 무섭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송구스럽다"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근한 이웃같은 서울경찰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 청장에게 △사이버 사찰 논란 △집회·시위 문화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안전 △경찰 신뢰성 제고 방안 △서울경찰의
한국투자공사(KIC) 접견실에는 거꾸로 그려진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지도에는 새겨진 문구는 'Kreative eKonomy'(창조경제). 안홍철 사장이 취임하면서 내건 표어다. 'Creative economy'에서 'C'를 한국(Korea)을 뜻하는 'K'로 바꿨다. KIC 스스로 역발상과 한국적 창조경제의 전도사가 되겠다는 의미다. 안 사장의 지난 경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안 사장은 30여년을 공직과 시장을 오가며 종횡무진했다. 공직사회의 강직함과 시장의 융통성이 세련되게 조화를 이룬 인상이다. 변화무쌍한 투자의 세계에서 국부 증대의 한 축을 책임진 국부펀드의 수장으로 온전한 덕목을 갖췄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안 사장은 행정고시(23회)에 합격하면서 정통관료로 첫발을 뗀 뒤 재정경제부 부이사관으로 물러날 때까지 23년간 한국경제 성장의 한 축을 맡았다. 1992년부터 6년 동안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할 당시에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한국 담당관으로 활
"한국투자공사(KIC)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홍철 KIC 사장은 KIC와 인연이 깊다. KIC 신설을 가장 먼저 제안한 이가 안 사장이다. 그는 2000년 국제금융센터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당시 김용덕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에게 한국에도 싱가포르투자청(GIC)과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국제금융센터는 국제 금융 동향에 너무 어두워 외환위기를 맞았다고 판단한 정부가 신설한 조직이었다. 안 사장은 국제 금융시장의 자료 수집이 주업무인 국제금융센터로는 글로벌 시장의 내밀한 정보를 발 빠르게 얻는 데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시장을 리서치하는 정도로는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의 핵심 정보를 얻으려면 시장의 플레이어, 투자 주체가 되는 수밖에 없어요." 안 사장의 제안은 당시 외환보유액이 많지 않아 시기상조란 의견이 제기되면서 보류됐다가 5년 뒤 KIC 설립으로 실현됐다. 안 사장은 2005년에 신설된 KIC의 감사직을 맡으면서 두 번째
"나를 따르라" 한옥민 모두투어 사장(55세·사진)의 별칭은 '한옥민 장군'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을 잘 통솔해 불리한 전세에서 나라를 구한 것처럼 모두투어도 15년간 IMF 경제체제와 사스, 조류독감, 환율대란 등으로 휘청했지만 한 사장은 고비 때마다 영업직원들을 잘 이끌었다. 그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모두투어 영업본부장을 지냈다. 여행사의 경쟁력은 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기획 여행 상품을 만들고, 신문광고로 같은 날짜에 출발해 같은 일정으로 다녀올 사람들을 모집한다. 그러나 모두투어는 좀 다르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여행사들이 모객해 놓은 수요를 다시 모아 출발 가능한 단체 여행을 역으로 만든다. 한 사장은 "모두투어는 전국 여행사를 대리점으로 한 간접 판매가 주력 사업"이라며 "이 때문에 각 여행사 사장님들이 고객에게 모두투어 상품을 권하지 않으면 좋은 실적을 낼 수 없다"고 밝혔다. 바로 여행사가 만족할 만한 상품을 개
지난해 경기가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씀씀이가 줄지 않은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해외여행이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불경기에는 해외여행을 포기하기 일쑤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다른 지출은 줄여도 여행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 우리 국민의 해외 출국은 지난 7월까지 누적 906만명으로 4.8% 성장했다. 지난 8월 3일에는 인천공항을 통해 1일 17만명이 출국해 1일 출국자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특히 자유 여행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해외여행에 대한 경험도 정보도 없고 비용도 고가였지만, 지금은 인터넷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고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 즐기는 자유 여행을 선호하는 추세다. 하지만 자유 여행은 약점도 있다. 한국처럼 정보통신이 잘 갖춰지지 않은 나라를 여행할 경우 온라인 예약이 쉽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 예약했더라도 막상 현지에 도착해보면 사기인 경우까지 있다. 이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떠나야 모
민선 6기 '서병수호'는 출항부터 '파격' 그 자체였다. 취임식부터 달랐다는 평가다. 서 시장은 웅장한 실내공간에서 기관단체장 등 특정인들만이 참여하는 호화스런 취임식 대신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취임식을 택했다. 대관비가 전혀 들지 않는 야외 녹음광장에서 검소하게 치러졌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민 모두가 부산의 주인이며, 귀빈인 점을 강조하기 위해 취임식 초청장도 따로 발송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 시장은 취임식장 입구에서 시민들을 직접 맞으며 인사를 나눴다. 취임 첫날 시청 직원들의 현관 영접행사와 국·실장 등 간부 173명의 신고식도 모두 없앴다. 서 시장은 '원조친박'으로 꼽힌다. 16대 국회에 등원해 부산 해운대 기장 갑에서 내리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 막강한 정치력을 등에 업고 있다. 하지만 허세와 관례, 권위주의를 경계하며 틀을 벗어나 소박한 인물이란 평을 받고있다. 취임식 후 보수동 책방 골목과 부평동 야시장 등을 방문한 그는 시민생활 속으로 첫 야간 일
부산 인구가 20여년째 줄고 있다.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마저 위협받을 정도다. 400만을 바라보던 부산 인구는 388만명(1996년 기준)으로 정점을 찍은 후 현재 343만명 수준까지 내려갔다. 취업난에 젊은층 이탈이 눈에 띄게 늘어난 탓이다. 도시는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지역경제침체로 직결됐다. 부산의 경기를 회복시킬 해법은 없는 것일까. 이는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이미 거쳐 간 시장들이 손을 써봤지만 진척이 더딘 묵은 과제로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올 10월 부산은 다르다. 아시에서 두번째, 국내에선 처음으로 'ITU(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가 3주간(10월20일∼11월7일) 일정으로 열리기 때문. ITU 전권회의는 세계 각국의 ICT(정보통신기술) 장관들이 참석해 글로벌 ICT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최고위급 총회로 미래창조과학부 전신인 방송통신위원회 시절부터 유치에 공들여왔다. 지난 7월1일 새로 취임한 서병수 부산광역시장(
현대산업개발 사장 겸 한국주택협회 수장인 박창민 회장은 임직원 사이에서 '형님'으로 통한다. 경상도 출신으로 툭툭 던지듯 내뱉는 말투나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리더십이 그를 '모두의 형님'으로 만들었다. 일종의 '형님 리더십'이다. 임직원의 생일이나 출산 등 이벤트 때마다 친필메시지가 담긴 축하카드와 미역 등의 선물을 보내고 미혼직원들에겐 소개팅을 주선하는 중매인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임직원을 부를 때는 직급이 아닌 풀네임으로 부른다. 거의 모든 임직원의 이름을 외우기에 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말단직원이 현재 맡아서 하는 업무까지 세세히 기억해 만날 때마다 고충을 물어볼 정도로 애착이 강하다. 박 회장의 이같은 '형님 리더십'은 '가족친화경영'을 중시하는 현대산업개발에 입사, 대표이사가 되기까지 35년을 근무하면서 기업문화를 뼛속 깊이 새긴 결과라는 설명이다. 박 회장은 1979년 현대산업개발 입사 후 현장소장과 남부지사장, 영업본부장 등 건축과 영업부문을 두루 거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