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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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를 묻는 질문에 “숭례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아도, 국보 70호가 무엇인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순위 경쟁에 길들여진 교육 문화 탓이다. 국보 1호, 보물 1호만이 가장 중요한 문화재인 것처럼 배워온 학습 문화 때문에, 다른 문화재들은 상대적으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지난 2008년 숭례문 화재 사건에 국민들이 극도의 분노를 표출한 것도 그것이 ‘1호’였기 때문 아닐까. 나선화(66) 문화재청장은 “국보 번호가 ‘가치’에 따라 매겨졌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최근 국보 번호를 둘러싸고 1호 변경, 번호 폐지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는 어지러운 상황을 두고, 나 청장은 “번호의 의미를 축소하는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며 답변을 ‘정리’했다. 그는 “교육이 잘못된 것이라면 1호가 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제대로 교육하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교체나 폐지부터 논의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미술사를 전공, 이화여대 박물관
변창흠 SH공사 사장은 세종대 교수 시절부터 주거복지와 도시개발분야에서 각종 정책모델을 제시하면서 관련분야의 '아이디어뱅크'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런 그가 지난 11월 SH공사 제13대 사장에 취임했다. SH공사 출범 이후 최연소 사장이자 SH공사 출신으론 첫번째다. 변 사장은 1996~1999년 공사 연구·개발실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이후 학자로서 서울시 주거복지 주택정책을 제시해온 그가 서울시 주거복지를 선도하는 실행기관의 수장을 맡은 것이다. 변 사장은 앞서 취임식에서 "채무감축 등을 통한 재무안정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며 SH공사를 서울시 주거복지의 실행모델 개척자이자 전담기관으로 육성하겠다"고 강조하면서 SH공사의 변화를 예고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과 도시재생 공약도 선거캠프 자문역할을 한 변 사장의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최근 서울시가 주력하는 협동조합주택도 변 사장의 2011년 연구에 바탕을 둘 만큼 변 사장은 자타공인 주거복지 도시재생분야의
- 팀장급 공모 전원교체 파격 인사…새로운 영역 도전위한 조직 쇄신 - 소규모 시유지 개발해 수익창출…시프트보증금으로 부채감축 추진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변화의 길목에 과감히 나섰다. 회사의 존립목적을 택지개발·주택건축에서 주거복지·도시재생으로 바꾸면서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임대주택공급·주거급여 등 서민주거안정을 목표로 하는 주거복지사업과 현지를 일부 보존해가며 개량하는 형태의 개발을 통해 자족기능을 갖추도록 하는 도시재생사업을 주된 업무로 삼겠다는 의지다. 이같은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겠다고 나선 이는 변창흠 SH공사 사장이다. 변 사장은 그동안 주거복지와 도시재생에 힘써온 국내 학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지난 26일 강남구 개포동 SH공사 본사에서 이뤄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SH공사가 수행해온 주거복지·도시재생사업 관련 실험모델들을 실제 성공사례로 이끌어내는 개척자 역할을 맡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 산하 기관 최초로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제24회 이사장은 코넬대 응용수학연구소 연구원(1987~1988), 프린스턴대학교 고등연구소 연구원(1988~1989)을 거쳐 현재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로 활동하기까지 기초과학에 뿌리를 깊게 내린 과학자다. 김 이사장의 과학정책·행정 분야 경험은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던 2년(2008~2010)이 전부다. 그가 이사장으로 부임한 후 주어진 첫 번째 과제인 문·이과 통합에 따른 과학교육 과정 개편은 그의 수석전문위원 시절 터진 이슈거리였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소장 및 아시아태평양물리학연합회 회장직을 겸할 땐 전세계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맏형'으로 불렸다. 현대 물리학의 저변을 확산하는 데 공을 세운 센터장으로 온전한 덕목을 갖췄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포스텍에선 특유의 추진력을 인정받아 연구처장(2009~2011) 산학협력단장(2011~2013),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2012~2013)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김 이사장은 "교
대한민국에서 '공직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맥왕 대회'가 열린다면,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도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일 것이다. "이사장님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못 하시는 게 없어요. 바쁠 때는 임직원들이 '카톡'(모바일메신저)으로 결제서류를 보낼 정도죠. '역대 이사장 중 SNS 최강'입니다." 재단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김 이사장의 페이스북 친구 수는 1424명. 적지 않은 수다. 그는 또 과학문화계 사람들로 이뤄진 비공개모임인 U.I.0 맴버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과학계에 관심을 갖거나 몸을 담은 사람, 과학과 예술, 인문학간 융합을 고민하고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김 이사장이 쓴 글이나 사진을 보고 실제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얘기다. SNS 인맥 맺기 달인으로 통하는 김 이사장의 진가가 임기 시작 전 밝힌 공약 실천에 자양분이 될까. 그는 "과학 현장과 사회를 잇는 네트워크를 반드시 만들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민의 과학문화 역량을 높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국정 과제의 큰 어젠다가 됐습니다. 손해보험은 재난사고 사후 대책으로 제공될 수 있는 사회 제도 중 인류가 만든 가장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취임 석 달을 맞은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사진)이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다. 장 회장은 지난 9월 취임사에서 당면한 과제로 △사회 안전망으로서 손해보험의 역할 △노령화 사회에 적합한 상품 개발△자동차보험 정상화 △막대한 보험금 누수를 유발하는 보험사기 방지 등을 꼽았다. 장 회장은 "우리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됐지만 이에 대비한 비용은 충분치 않다"면서 "노후 실손 의료를 포함해 요양시설에 입원하는 동안 지급되는 비용을 담보하는 상품을 제공하는 게 손보의 큰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손보협회는 '관피아' 논란 속에서 1년 가까이 협회장을 선임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험사 사장 출신인 장 회장이 선임되자 '기대'와 '우려'가 함께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석 달, 장 회장의 의욕적
이일규(사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초대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28기로 1978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중기청 기술지원국장, 창업벤처국장을 거쳐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을 역임했다. 이후 민간으로 나와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 한국디자인경영협회 이사장 등 디자인 분야에 몸담아왔다. 관과 민을 두루 거쳤지만 관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 이사장은 취임 초 '관피아' 논란을 겪기도 했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이 이사장을 상대로 "관피아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 이사장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2006년 공직을 떠난 뒤 8년간 민간 전문가로 활동해온 만큼 굳이 꼬리표를 붙인다면 '민피아'"라며 "민간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해보이겠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실제로 이 이사장은 고려대와 중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디자인진흥원을 나온 직후인 2006년부터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디자인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치는 등 나이를 잊은 향학열을
"젊음과 활기가 넘치는 전통시장, 그리고 소상공인의 성공적인 창업모델을 만들겠다." 이일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하 소진공) 이사장은 올 한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지난 1월 3일 취임 이후 지역별 전통시장은 물론이고 대전 본사와 정부청사, 세종시와 서울까지 오가며 현장의 공단 직원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지난달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한 해중 가장 큰 이벤트인 '전국우수시장박람회'를 위해 경남 창원에 다녀왔다. 이제는 다시 '예산 국회'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출범한 소진공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지난해 4월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진흥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소상공인진흥원과 시장경영진흥원을 통합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올초 출범했다. 이 이사장은 1년 간 물리적으로 합쳐진 두 조직을 통합하고, 내년부터 직접 운용하는 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을 집행하기 위한 준비에 '올인' 했다. 지난 23일 소진공 서울지역본부에서 이 이사장을 만나 소진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총경 시절 서울 경비의 핵심인 종로경찰서장과 22경찰경호대장, 101경비단장 등을 역임해 경찰 내 대표적인 '경비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나와 간부후보 33기로 경찰에 입직했다. 구 청장은 "교통과 수사, 생활안전, 외사 등 다양한 업무를 해왔다"며 "상대적으로 최근에 경비부서에서 많이 근무해 경비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무관 승진 이후에는 중앙경찰학교장과 충북지방청장, 경찰청 외사국장 등으로 재직했다. 선이 굵으면서도 소탈해 현장 경찰들과의 소통에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강신명 전 서울청장(현 경찰청장)도 사회안전비서관 출신으로 서울청장 2명이 잇따라 청와대 출신이 임명됐다.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 출신이다. ◇구은수 서울청장 약력 △1958년 충복 옥천 △충남고 졸업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1985년 경위 입직(간부후보 33기) △200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위 사진)은 지난 9월 1일 취임 이후 두달 가까운 시간동안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서울청의 업무현황 파악은 기본이고 지난 20일 국정감사, 21일 경찰의 날 행사 등 굵직한 '이벤트'도 치렀다. 1000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서울 경찰의 총책임자로서 장단기적인 '밑그림'도 고민해야 했다. 지난 22일 집무실에서 만난 구은수 서울청장은 "요 며칠 워낙 바빠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아내가 도와줬을 정도"라며 멋쩍게 웃었다. 구 서울청창이 취임 이후 언론사 인터뷰에 나선 것은 머니투데이가 처음이다. 구 청장은 "사람들을 만나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경찰을 보면 왠지 무섭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송구스럽다"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근한 이웃같은 서울경찰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 청장에게 △사이버 사찰 논란 △집회·시위 문화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안전 △경찰 신뢰성 제고 방안 △서울경찰의
한국투자공사(KIC) 접견실에는 거꾸로 그려진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지도에는 새겨진 문구는 'Kreative eKonomy'(창조경제). 안홍철 사장이 취임하면서 내건 표어다. 'Creative economy'에서 'C'를 한국(Korea)을 뜻하는 'K'로 바꿨다. KIC 스스로 역발상과 한국적 창조경제의 전도사가 되겠다는 의미다. 안 사장의 지난 경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안 사장은 30여년을 공직과 시장을 오가며 종횡무진했다. 공직사회의 강직함과 시장의 융통성이 세련되게 조화를 이룬 인상이다. 변화무쌍한 투자의 세계에서 국부 증대의 한 축을 책임진 국부펀드의 수장으로 온전한 덕목을 갖췄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안 사장은 행정고시(23회)에 합격하면서 정통관료로 첫발을 뗀 뒤 재정경제부 부이사관으로 물러날 때까지 23년간 한국경제 성장의 한 축을 맡았다. 1992년부터 6년 동안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할 당시에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한국 담당관으로 활
"한국투자공사(KIC)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홍철 KIC 사장은 KIC와 인연이 깊다. KIC 신설을 가장 먼저 제안한 이가 안 사장이다. 그는 2000년 국제금융센터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당시 김용덕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에게 한국에도 싱가포르투자청(GIC)과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국제금융센터는 국제 금융 동향에 너무 어두워 외환위기를 맞았다고 판단한 정부가 신설한 조직이었다. 안 사장은 국제 금융시장의 자료 수집이 주업무인 국제금융센터로는 글로벌 시장의 내밀한 정보를 발 빠르게 얻는 데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시장을 리서치하는 정도로는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의 핵심 정보를 얻으려면 시장의 플레이어, 투자 주체가 되는 수밖에 없어요." 안 사장의 제안은 당시 외환보유액이 많지 않아 시기상조란 의견이 제기되면서 보류됐다가 5년 뒤 KIC 설립으로 실현됐다. 안 사장은 2005년에 신설된 KIC의 감사직을 맡으면서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