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에 걸린 여러 전문가들의 고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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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의 오래된 찻집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선다. 관광객들은 작은 말차 상자 하나를 사기 위해 한참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단순한 말차 제품이 아니다. 교토 남부의 작은 도시 '우지'(Uji)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와 명성이다.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지역의 이름은 더 이상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고베 비프', '고르곤졸라 치즈'처럼 지역의 역사와 생산 방식, 생산자의 노력, 소비자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브랜드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보성녹차', '광양불고기', '임실치즈' 등은 오랜 기간 소비자의 신뢰를 쌓은 지역 브랜드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방 도시를 찾아 지역 음식과 특산물을 경험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지역의 명성이 관광과 소비를 이끌고 다시 지역경제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역 브랜드의 가치는 결국 소비자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신뢰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하나의 지역 이름이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뢰가 흔들리는 데는 순식간이다.
한미 전략적 투자 합의는 우리가 익숙한 해외직접투자와 성격이 다르다. 총 3500억 달러 가운데 2000억 달러는 미국이 선정하는 전략산업 프로젝트에 한국이 자금을 공급하고, 1500억 달러는 조선 분야의 직접투자·보증·선박금융 등이다. 2000억 달러는 연간 200억 달러 한도에서 집행되며 미국 대통령이 최종 사업을 선정한다. 배분 가능한 현금은 한국이 원리금을 회수하기 전까지 한미가 절반씩, 이후에는 한국 10%, 미국 90%로 나눈다. 사업 위험을 부담하지만 수익 배분은 제한되는 이례적인 구조다. 대신 미국은 가능한 경우 한국 기업을 공급업체로 우선 고려하고, 토지·전력·용수와 인허가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개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2025년 포천 500대 기업 가운데 109곳이 해외 출생 1세대 이민자가 세운 회사다. 미국은 외국 기업에도 기회의 땅이었다. 소니는 미국 시장을 발판으로 세계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은 미국에서 사업을 키워도 본사가 지분과 핵심기술을 보유하면 성과를 배당과 수출, 기술·서비스 수입으로 본국에 돌려보낼 수 있다.
세계 식량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작황 불안과 지정학적 갈등, 자국 우선주의 확산으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먹거리와 농식품 원료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농식품산업의 체질을 바꿀 기회다. 그 전략적 해법 중 하나가 새만금 신항만과 연계한 글로벌 푸드허브 조성이다. 올해 말 신항만의 첫 잡화부두 2선석이 완공될 예정이다. 그러나 항만은 부두를 건설했다고 저절로 활성화되지 않는다. 성패는 안정적인 물동량과 경쟁력 있는 배후산업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두를 먼저 건설한 뒤 화주와 기업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조기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개항 초기부터 화물을 창출할 산업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이 글로벌 푸드허브 조성을 본격화 해야할 골든타임인 이유다. 새만금은 대규모 농생명용지와 식품산업 기반을 갖추고, 신항만·공항·철도·도로가 연계되는 복합물류 거점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항만과 접근성이 높은 지역에 푸드허브를 조성한다면 국내외 농식품 원료의 반입부터 저장·가공·검역·통관·콜드체인·수출에 이르는 과정을 까지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주인공은 은행원이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나사 공장을 운영했다. 거래처의 도산으로 자금난에 빠지자 아버지는 오랫동안 거래해 온 은행에 추가 융자를 부탁했다. 은행은 이를 거절했다. 아버지는 위기 앞에서 세상을 등진다. 아들은 훗날 복수를 다짐하며 바로 그 은행에 입사한다. 한국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보면 씁쓸한 이질감이 든다. 극 중 악덕 은행조차 그 나사 공장을 직접 들여다보고 평가하기는 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은행들은 그 매몰찬 거절조차 하지 않는다. 번듯한 담보가 없는 나사 공장은 시작부터 은행의 고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은 아파트라는 확실한 담보와 획일화된 신용점수에 좌우되고 자영업자 대출은 보증기관의 보증서 유무로 결판난다. 담보와 보증서만 확인하는 기계적인 과정에 은행의 주체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없고 판단이 생략된 곳에 진정한 '심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심사하지 않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 담보대출이 변제되지 않으면 경매가 실행되고, 보증부 대출이 부실화되면 보증기관이 대위변제하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전가된다.
세계 교육계 '학력 올림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5 결과가 발표됐다. 성적표는 올해도 눈부시다. 대한민국 만 15세 학생들은 OECD 38개국 중 수학 1~2위, 과학 1~3위, 읽기 1~9위를 휩쓸며 최상위권을 지켜냈다. 처음 도입된 '디지털 세계에서의 학습'에서도 2~5위에 올랐다. 비회원국 53개국을 포함해도 선두권을 놓치지 않았다. 부모의 배경이 학력에 미치는 영향도 작은 것으로 나타나 교육의 '공정성'과 '포용성' 지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화려한 순위 이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문해력의 추락이다. 한국 학생들의 읽기 평균 점수는 2022년 515점에서 501점으로 14점 급락했다. 상위수준(5수준 이상) 학생 비율은 13. 3%에서 10. 3%로 줄었다. 영상과 쇼츠, 파편화된 디지털 정보에 둘러싸여 호흡이 긴 글을 읽으며 사유하는 능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이 부른 문해력의 약화는 비단 우리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마주한 도전이기도 하다.
요즘 소셜미디어를 통해 농업인,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이 많다. 댓글과 메시지를 읽다 보면, 땡볕 아래서 땅을 일구는 농업인의 고단함과 우리 농촌의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농업 지원이 아직 부족하다는 현장의 목소리, 식량안보와 농촌의 가치를 지켜달라는 국민의 당부를 접할 때마다 농정을 책임진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다시 새긴다.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마련한 2027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안은 총 22조2215억 원이다. 전년보다 10. 4% 늘었다. 단순히 예산의 몸집을 키운 것이 아니다. 농업인의 삶을 지키고,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우리 농업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았다. 먼저 농업인이 안심하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 공익직불 예산 3조 원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고 기본직불 단가를 높인다. 전략작물직불·친환경농업 직불을 확대하고 동물복지축산직불도 새로 도입한다. 농산물 가격 하락에 대응하는 가격안정제를 도입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에 대비해 재해보험도 보강한다.
최근 정부와 국회는 온라인 플랫폼의 거래 대금 정산주기를 기존 60일에서 35일 이내로 단축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미정산 리스크를 방지하고 소상공인의 자금 유동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플랫폼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정산 시점만 앞당기는 규제가 상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태의 본질은 오픈마켓 중개 모델의 대금 유용과 방만한 자금 운용이었다. 엉뚱하게 건전한 거래 생태계 전반의 '안정성'을 무너뜨리는 정책적 모순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정산주기는 플랫폼의 재무 구조와 거래 생태계 전반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법으로 일률 강제하면 수수료 인상이나 거래조건 악화로 이전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 특히 쿠팡, 마켓컬리, SSG닷컴처럼 자체 재고를 확보해야 하는 직매입형 플랫폼의 부담이 치명적이다. 정산기한이 줄어들면 상품이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기도 전에 대금부터 먼저 지급해야 하는 현금 잠김 현상이 발생한다. 유통사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재고 회전율이 빠른 소수 대기업 브랜드 위주로 매입 예산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은 한국 외교가 실용외교 1단계를 완성하고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9월 7일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제1회 뤼미에르 정상회의'를 공동 주재한다. 영화와 글로벌 콘텐츠 거버넌스를 논의하는 문화·과학기술·가치 정상회의를 주도하면서 안보와 경제를 중심으로 전개해 온 실용외교의 외연을 문화와 미래산업으로 확장한다. 인공지능(AI)이 영화·드라마·게임 등 콘텐츠 산업에 가져올 변화와 새로운 산업모델을 세계 지도자들과 함께 논의하는 것은 한국의 문화적 소프트파워를 국제규범 형성에 기여하는 외교적 자산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다. '케이(K)-컬처'의 세계적 위상을 더 격상시킬 것이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은 한미동맹을 안정시키고 중국·일본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한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EU), 인도와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 및 지역과 협력을 넓혀왔다. 이제 전략적 외교 자율성과 다자주의를 축으로 독자적 외교 공간을 확보해 온 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해 AI 시대 문화외교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기술혁신을 이끌어 온 기업 연구자들의 노고를 기리는 '기술개발인의 날 기념식'이 9월 7일에 첫 법정 국가기념일 행사로서 개최된다. 기술개발인은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오직 연구개발 업무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연구전담인력을 의미한다. 2024년 기준, 그 규모는 무려 45만명에 달해 우리나라 전체 연구 인력의 7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이들은 대한민국 산업 현장의 최전선에서 기술 주권을 수호하는 핵심 전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이 연구개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업부설연구소 제도'를 1981년에 처음 도입해, 일정한 연구 공간과 전담 인력을 갖춘 기업에 연구개발 활동에 대한 세액 공제, 국가연구개발 사업 참여 및 가점 부여, 전문연구요원 활용 등 전방위적인 혜택을 제공하며 민간의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제도 도입 첫해, 자동차·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등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주요 대기업들이 앞다퉈 기업부설 연구소 운영을 시작했다. 이 혁신의 불씨는 점차 중소·중견기업으로 확산되어 최근에는 7만여 개에 달하는 기업부설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다.
경축순환농업은 양질의 퇴비와 액비로 농산물을 생산하고, 그 농산물과 부산물을 다시 축산에 활용하는 순환경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성공은 축산농가와 경종농가, 퇴·액비 생산업체와 살포대행업체가 서로 신뢰하며 협력하는 데 달려 있다. 이러한 협력은 상호신뢰와 경제적 이익이 함께할 때 지속될 수 있다. 우리나라 농경지 면적은 계속 줄어든 반면 가축분뇨 발생량은 크게 줄지 않아 퇴·액비의 소비는 정체되고 있다. 결국 축협 자원화시설에는 연간 생산량의 약 21%에 해당하는 퇴비가 재고로 남아 있다(2023년 한국축산환경학회 심포지엄). 퇴비 적체 문제를 풀고자 바이오차(Biochar) 활용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경제성과 시장성은 아직 불확실하다. 이런 사업은 대부분 공급자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소비자인 경종농가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경축순환 사업은 수급 안정이 관건인 만큼 소비자인 경종농가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사업이 확대되어야 한다. 2025년 축산농가의 평균 소득은 8,838만 원으로 논벼 농가의 2.
30년 넘게 자본시장에서 일하며 수많은 상승장과 하락장을 지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성패의 핵심은 늘 비슷했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볼 때 한 걸음 물러서 기업의 본질을 살피는 일,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었다. 요즘 시장을 바라보면 오래된 원칙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시장의 관심은 빠르게 옮겨가고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산업이 어느새 변화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금리와 유가, 지정학적 변수까지 겹치면서 투자자의 판단은 한층 어려워졌다. 이럴수록 무엇을 살 것인가만큼 무엇을 사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ETF(상장지수펀드)는 낮은 비용으로 시장의 성장에 동참하게 해준 효율적인 도구다. 그 장점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모든 기업이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 시장에서는 지수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질문이 남는다. 변화의 앞자리에 선 기업, 아직 숫자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을 가진 기업을 어떻게 골라낼 것인가. 액티브 ETF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절세와 탈세 사이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하다. 올해 대법원이 선고한 취득세 부과처분 취소 판결(2025두34929)은 그 경계에 관한 이야기다. 갑(甲)은 자신의 부동산을 배우자 을(乙)에게 신탁하는 관리신탁계약을 체결한 후 그 위탁자 지위를 소액의 대금만 받고 자녀 병(丙)에게 넘겼다. 병은 위탁자 지위 승계에 따른 취득세를 납부했는데 과세관청이 병이 지급한 대금을 부동산 취득가액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시가를 기준으로 취득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병은 신탁계약이 애당초 무효라고 주장하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핵심은 신탁계약의 실질이다. 계약서에는 분명 '관리신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수탁자 을에게는 신탁재산을 관리하거나 처분할 권한이 사실상 없었다. 을은 단순히 등기부상 명의만을 취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며 신탁 보수조차 받지 않았다. 반면 최초 위탁자 갑은 언제든지 위탁자 지위를 회복해 신탁재산을 자유롭게 회수하고 매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상품은 종합부동산세·재산세 절감을 목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홍보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