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들이 발로 뛰는 취재 현장의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물의 앞면 보다는 뒷면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기에 기자수첩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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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정보통신) 전시회인 'CES 2026' 전시장에 등장한 한 로봇이 인형을 집었다가 연거푸 떨어뜨렸다. 집어 든 인형도 정확한 위치에 옮기지 못했다. 옆에 있던 관계자는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LG전자가 공개한 가정용 홈 로봇 '클로이드'는 단순해 보이는 빨래 개기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썼다. 다양한 로봇의 '실수'는 결함보다는 진화의 신호에 가깝다. 정해진 시나리오를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달라지는 환경에서 센서와 AI(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다음 행동을 선택해서다. 반복되는 실패는 오류가 아니라 학습의 과정이다. 과거 산업용 로봇은 정확성이 핵심이었다. 입력된 값(명령)을 오차 없이 출력(행동)하는 기계였다. 하지만 지금의 로봇은 다르다. 시각과 촉각으로 환경을 인식하고, AI가 맥락을 해석해 행동을 결정한다. 정답을 외우는 단계에서 벗어나 판단하고 선택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수하는 로봇'이야말로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이제는 생존의 문제다. " 지난달 열린 한국화학산업협회 신년회엔 비장한 공기가 감돌았다. 한자리에 모인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 수장들은 수차례 '위기'를 언급하며 올해 역시 녹록지 않을 것이란데 뜻을 같이했다. 현장에선 "수십 년 업계에 몸담았지만 이런 장기 불황은 처음"이란 토로까지 나왔다.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는 유독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정부 주도의 구조재편이 본격화되며 각 기업이 설비 감축과 인력 구조조정까지 사업에 '메스'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재편안 초안이라도 제출하기 위해 물밑에선 몇개월간 논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1호 사업재편안인 충남 대산 산단 이후 좀처럼 '2호'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호안엔 롯데케미칼 대산 공장을 물적분할해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고, 중복 설비를 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로 전남 여수와 울산 산단 모두 정부에 초안을 제출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모두 뚜렷한 진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정부의 대산 산단 최종 금융지원 방안마저 늦춰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보이는 서학개미의 해외 레버리지 투자 수요를 국내로 돌리기 위한 조치다. 정부가 환율 상승의 한 축으로 지목한 해외투자 수요를 줄이고 국내 증시 상승세도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주목 해야 할 것은 서학개미가 테슬라·팔란티어라는 '종목'에 투자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개별 종목 레버리지라는 '수단'에 끌리는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말 기준 국내 투자자의 해외 레버리지 상품 보유액은 19조원을 넘어섰다. 또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해외 레버리지 상품 순매수도 8500억원을 넘었다. 해당 자금 대부분이 테슬라와 팔란티어,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 레버리지 상품에 몰려있다. 홍콩에 상장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AUM(순자산총액)은 약 2조원이다. 이 중 국내 투자자 자금은 약 1400억원으로 약 7%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곧 망할 것 같다. " 미국 대학 교단에 서는 한 외국인 교원이 농반진반 내뱉은 말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된 이후 법과 제도가 너무 빨리 바뀌어 혼란스러울 지경이라고 했다. 실제 '트럼프 관세'와 전쟁이 국제 뉴스를 장식한 지난 1년 미국 교육계도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을 중시하는 캠퍼스 문화를 지적하며 보조금을 무기삼아 대학들을 굴복시켰다. 전례없는 행동에 캠퍼스는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의 한 교육 전문지를 통해 공개된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영국, 호주 대학 교직원들이 미국 대학 교직원들에게 트럼프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모든 응답자들이 익명 처리를 요구했다. 감시당할지 모른다며 특정 메신저 사용을 거부하기도 했다. 연구를 진행한 교직원들은 출판을 거부 당하자 언론을 통해 연구 경과를 공개했는데, 후환이 두렵다며 실명을 숨겼다. 대학의 최고 가치이자 대학을 보호하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제안 후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시 전문을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당 안팎의 비판에 대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결단을 꺾지 않고 합당 추진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한 건 정 대표가 피우려는 꽃이 민주당의 정체성과 가치를 흔들었다는 지적들이다. 합당 제안은 내용 이전에 절차와 방식에서 민주당이 내세우는 '당원 주권주의'와 정면 충돌했다. 정 대표는 지난 22일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당에 전격 합당을 제안했다. 당 지도부는 회견 20분 전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사실상 통보받았다고 한다. 당내 대다수 의원도 언론 보도로 소식을 접했다. 합당 제안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일부 최고위원들은 정 대표의 독단을 공개적으로 규탄했다. 반발이 커지자 정 대표는 "제안을 한 것일 뿐 결정은 전 당원 투표로 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다시 방향을 틀었다. 엔화 급등 속에 달러 매도 물량이 늘며 20원 넘게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언에 즉각 반응했다. '달러 불패 신화'의 균열도 잠시, 시장 분위기는 다시 달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는 환율이 경제 펀더멘털만으로 설명되는 숫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단기적으로는 '엔화 강세'와 '관세' 같은 이벤트가 환율을 크게 흔들지만, 충격이 증폭되는 배경엔 구조적인 '달러 수급 불균형'도 깔려 있다. 경상수지 흑자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민간은 달러를 '장기 축적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선 국내 주식시장의 성과가 높은데도 해외 투자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자산을 상대적으로 더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동안 정부는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통화스와프 연장이나 세제 인센티브 같은 수급 대책을 쏟아냈지만 시장은 이를 달러를 싸게 사는 '저점 매수 기회'로 학습했다. 외환당국의 정책 발표든, 미국 재무부의 구두개입이든 환율 안정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배터리 산업이 저물어가는 국면이라면 모르겠는데 지금 상황이 그렇지는 않잖아요. "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달 초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임원을 만나 "3사 체제가 존속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이후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김 장관의 소집 자체가 배터리 기업들의 연쇄 계약 취소에 따른 '긴급 점검' 성격이 짙었던 만큼 업계에서는 '구조조정 신호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이후 김 장관 쪽에서는 "다양한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지만 배터리업계는 "석유화학에 이어 배터리업계에도 칼을 들이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쳤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LG·삼성·SK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그룹의 주축으로 삼은 사업인데 쉽게 접을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분위기다. 배터리 3사 체제 개편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다는 얘기다. 실제로 호황기였던 2022년 한해에만 3사 합산 약 2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에서 낙마한 이혜훈 전 의원의 '강남 래미안원펜타스' 사례는 그간 우리 사회가 말해온 '주거 정의'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강남 원펜타스는 이른바 꿈의 아파트 중 하나다. 서울 강남이라는 입지와 래미안이라는 1군 브랜드, 더구나 신축이다. 누구나 이런 아파트를 갖고 싶고 또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동네 사시는 부모님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와 본인 집 주소를 갖다붙이기도 한다. 청약통장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을 것이고 실제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위장전입이나 가족관계 조작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이번 논란이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허탈과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부정청약이 반복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적발돼도 실익이 남기 때문이다. 위장전입·허위혼인·부양가족 조작처럼 고의성이 분명한 행위라도 제재는 대개 당첨 취소나 과태료에 그친다. 이미 입주했거나 집값 상승의 이익을 누린 뒤라면 사실상 '벌금만 내면 끝'이다.
AI(인공지능)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데이터의 위상이 달라졌다. 과거 개인정보가 단순한 신원확인용이었다면 지금은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핵심자본이다. 한 사이트에 가입된 정보로 개인의 취향, 위치, 가족구성원, 직업군까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보가 정교한 피싱 등 AI 기반 범죄에 악용된다면 그 피해속도는 걷잡을 수 없고 범위 또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 같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기업에 보안은 단순한 비용지출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투자여야 한다. 보안에 실패한 기업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보유출로 기업가치가 하락하듯 보안역량은 기업의 수명과 더욱 직결될 것이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고 그 대가는 기업의 미래를 송두리째 흔들 만큼 치명적이다. 단순한 사과와 보상쿠폰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2차 사고와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예방·후속조치다.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유출된 정보는 회수할 수 없기에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의대 정원을 놓고 의정 간 '수(數)' 싸움이 치열하다. 증원에 반발하는 의료계가 미래 의사 수에 대한 자체 관측(과잉)까지 내놓은 가운데, 정부가 고심하는 증원 규모도 계속 변하고 있다. 당초 2040년 최대 1만1136명의 의사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본 추계치는 기준연도로 정해진 2037년 기준 '2530~4800명 부족'으로 그 범위가 상당 부분 축소됐다. 정부는 내달 3일, 늦어도 10일까지는 의대 정원을 확정하겠단 계획이다. 부족한 의사 수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면서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물론 추계 자체가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인 만큼 딱 떨어지는 과학적 판단을 기대하긴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앞서 '2025년 연내'로 정해진 기한에 맞춰 추계가 진행되면서 이후 논의를 거칠 때마다 결괏값이 큰 폭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 당초 추계 발표가 성급했단 결론에 도달한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향후 최종 결정까지 두세차례 회의가 남은 셈인데 이 동안 합리적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모두 '친명'이고 친청와대입니다. " 지난 19일 청와대·더불어민주당 새 지도부 만찬에서 정청래 당 대표는 "혹시 '반명'이십니까"라는 이재명 대통령 농담에 이같이 답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분열을 봉합해 뭉치는 모양새다. 앞서 청와대 참모들은 출마를 위해 줄사표를 냈다. 여당은 흔들리되 낙하하지 않는 대통령 지지율을 발판 삼아 선거에 몰두할 태세다. #"100일간 정치인 4000명을 모을 겁니다.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후보당 99만원으로 선거 치르겠다'는 도전에 나섰다. '온라인 공천'도 도입했다. 당 정체성을 살려 인재 영입 문턱을 낮추고 거대 정당보다 빠르게 선거운동에 돌입하려는 포석이다. #"할 게 산더미인데 우리는 '당게'에 갇혀 있네요. "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여당은 분열을 단칼에 봉합하고 청와대까지 끌어안아 '올인' 모드로 돌입하고, 신당은 99만원 파격 공천과 온라인 속도로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동안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대표 가족들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일명 '당게(국민의힘 홈페이지 익명게시판) 사건'에 발목이 잡혀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앞으로 복잡한 경제 범죄일수록 구속이 어려워지겠어요. 법리가 어려우니 방어권 보장이 꼭 필요하다면서 잘 피해나가더라고요. 요새 추세가 그래요. 문제는 화이트 칼라 범죄 피의자들이 더 치밀하게 수사를 회피한다는 거죠. 그래서 구속이 필요한 건데, 앞으로 수사 난이도가 더 높아질 겁니다. 얼마 전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한 검찰 관계자가 한 말이다. 김 회장 등이 홈플러스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등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숨겨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검찰 시각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충분한 방어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기각 사유를 밝혔다. 아직 이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 지난하고 치열한 법리적 다툼이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열린 영장실질심사가 그 예고편이었다. 심사에만 13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이는 역대 최장 기록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복잡한 범행의 양상을 하나하나 설명해 가며 법원을 설득했다. 김 회장 변호인들은 몇 달 내내 새벽까지 일하며 검찰 주장에 대응할 논리를 만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