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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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6 건
2020년 11월 6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 빌라에서 70대 어머니와 초등학생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한 허모씨(당시 42세)에게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다. 교도소에 수감된 허씨 대신 손자를 키웠던 어머니는 출소한 아들 손에 목숨을 잃었다. 허씨는 어머니를 숨지게 한 뒤 방에서 자던 아들도 숨통을 막아 살해했다. 이후 그는 집안 장롱에 시신을 숨기고 한 달 넘게 동거하며 어머니 카드로 여자친구와 데이트했다. 결국 붙잡힌 허씨에 대해 검찰은 "재범 우려가 크다"며 가석방 없는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따로 살 테니 돈 줘"…거절당하자 어머니·아들 살해━허씨는 이혼하고 강간상해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그동안 어머니는 허씨가 달라진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며 손자를 혼자 키웠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허씨는 출소한 뒤에도 술 마시고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았으며 아들도 돌보지 않았다. 설 연휴였던 같은 해 1월 25일 어머니는 걱정을 쏟아냈다.
2020년 11월5일. 전남편 강씨를 살해한 고유정(당시 37세)이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며 형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 도구와 방법을 검색하고, 미리 졸피뎀(수면제의 일종)을 처방받아 구매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고, 계획에 따라 피해자를 살해한 다음 사체를 손괴하고 은닉했음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범행 당시 남편이던 홍씨의 전 부인이 낳은 의붓아들(사망 당시 5세)을 살해한 혐의도 받았으나 증거 없음으로 무죄 판결받았다. 강씨 유족 측은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반성조차 없는 고씨의 행태를 보면 무기징역은 한없이 가볍다"라고 말했다. ━잔혹한 계획 살인…끝까지 모두 찾지 못한 사체━ 2019년 5월25일. 고유정은 제주시 조천읍 무인 펜션에서 전남편 강씨에게 수면제인 졸피뎀을 먹인 후 칼로 살해하고 펜션 내에서 시신을 훼손한 뒤 시신의 일부를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바다와 아파트 쓰레기 분리 시설 등에 유기했다. 이날은 전남편 강
2017년 11월 4일. 가정에 소홀한 동거남에게 복수하기 위해 생후 6개월 된 딸을 질식시켜 살해한 친모 A씨(당시 20세)가 항소심에서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충남 천안시 한 원룸에서 20대 남성과 동거하다 2016년 9월 딸을 낳았다. 하지만 동거남은 딸을 돌보지 않고 자주 외박했고, A씨는 동거남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해 불만을 품었다. 출산 이후 두 사람은 자주 다퉜다. 동거남을 향한 A씨 분노는 어린 딸에게 옮겨갔다. A씨는 이듬해 3월 4일 동거남이 전날 외박하고 연락도 받지 않자 SNS(소셜미디어)로 '귀가하지 않으면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그러나 동거남은 메시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격분한 A씨는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동거남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A씨는 인터넷에 살해 방법 등을 검색한 뒤 잠에서 깨 울고 있던 딸의 얼굴에 이불을 덮어 숨통을 조였고, 결국 딸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살인
1년 전인 11월3일 오후 7시12분.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지하도로에서 30대 남성 군인 A씨가 긴급체포됐다. 살인 및 사체손괴, 사체은닉 혐의를 받은 그는 현장에서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에 응했으며 곧장 혐의를 시인했다. 그는 카이스트 대학원을 나오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른바 '엘리트 장교' 출신이었다. 사이버작전사령부 소속 현역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서 중령 진급 예정자인 그의 잔인한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내연 관계 드러날까" 끔찍한 계획 범죄...28시간만에 덜미━체포 하루전인 2024년 11월 2일 오후 2시46분쯤. 강원 화천군 화천읍 화천대교 하류 300m 지점 북한강에 의문의 형체가 떠올랐다.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확인해보니 시신 일부로 드러났다. 경찰은 즉시 강 주변으로 수중 수색을 확대했고 이튿날 오후까지 신고 지점에서 약 600m 떨어진 붕어섬 선착장 인근 강바닥에서 비닐 자루 8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자루 안에는 조각난
2018년 11월 2일. 자신이 운영하는 경기 안양시 한 노래방에서 손님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서울대공원 인근에 유기한 변경석(당시 34세)이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다. 변씨는 범행 이후 아무 일 없다는 듯 노래방을 청소하고 게임을 하며 열흘 넘게 머물렀다. 재판부는 잔혹한 범행임에도 전과가 없고 우발적이었다는 이유로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도우미 바꿔 줘" 살인으로 번진 말다툼…서울대공원서 발견된 토막 시신━변씨는 2018년 초 부모 집에서 나와 독립한 뒤 경기 안양시에서 작은 노래방을 인수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영업하거나 이웃들과 교류하지 않고 노래방에 만들어 둔 '게임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같은 해 8월 10일 새벽 한 남성 A씨(당시 51세)가 노래방에 찾아왔다. 당시 유일한 손님이었던 A씨는 "노래방 도우미가 재미있게 놀아주지 않으니 바꿔달라"고 요구했으나 변씨가 이를 거부하면서 말다툼이 생겼다. A씨는 "도우미 불법 영업으로 신고하겠다
270년전 1755년 11월 1일. 이날은 기독교의 축일 중 하나인 만성절(기독교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날)이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시내 각 성당은 경건한 신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사가 막 시작된 9시20분. 리스본 밖 수백 킬로미터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8.7으로 추정되는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성당을 화려하게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이 산산조각나 신자들의 머리 위를 덮쳤다. 신을 찬양하는 기도 소리는 순식간에 비명으로 뒤바뀌었다. 내진 설계의 개념 따위는 없었던 리스본의 건물들은 힘없이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이 잔해에 깔려 희생됐다. 이 피해로 사망자만 4만~5만명이 발생했다. 도시의 85%가 파괴되는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훗날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켄드릭은 리스본 대지진에 대해 '5세기 로마 몰락 이래 가장 큰 충격'이라고 정의했다. ━성인 대축일에 최악의 대지진, 1만여 채 건물 무너져━지진이 발생한 1755년의 리스본은 대항해시대의 영광을 간직한 세계무역의 중심
1999년 10월 30일. 고등학교 가을 축제를 마친 학생들이 뒤풀이를 위해 인천시 중구 인현동의 한 호프집으로 몰려들었다. 해당 건물의 지하 1층 노래방과 2층 호프집을 무허가 영업 중이던 업주(당시 33세)는 청소년들에게 주민등록증 확인 없이 술을 판매했다. 호프집에는 120여명의 고등학생이 몰렸다. 50여평(165㎥) 규모의 공간에는 겨우 한 사람만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간격으로 테이블이 빽빽하게 붙어있었다. ━지하 1층에서 붙은 불 번져…탈출 막은 술집 사장 "돈 내고 가"━ 저녁 6시55분쯤, 4층 상가 건물의 지하 1층 노래방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노래방에서 일하던 10대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켜는 순간 밀폐된 공간에 차 있던 유증기에 불이 붙었다. 노래방 내부 도색 공사를 한 작업자들이 페인트와 시너 통을 카운터 앞에 남겨 놓은 게 화근이 됐다. 노래방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업주가 돈을 아끼기 위해 방염처리가 되지 않은 우레탄 폼을
11년 전 오늘인 2014년 10월27일, '마왕'으로 불린 가수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지만 한 병원에서 위장관유착박리 수술을 받은 뒤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그러다가 의식을 잃고 상급종합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46세로 허망하게 떠나면서 가족과 지인, 팬들의 충격이 컸다. 수사기관은 신씨 사망을 의료사고로 결론 내렸고 대법원도 이를 인정해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 실형 확정 판결을 선고했다. 최악의 의료사고로 알려지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 이른바 '신해철법'이 제정됐다. 신해철은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남아 여전한 마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위장관유착박리 수술 받고 극심한 복통…제때 치료 못 받아━ 신해철은 2014년 10월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의료진은 사인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이라고 밝혔다. 의식 없는 상태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던 신씨는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이에 앞서
5년 전 오늘인 2020년 10월25일, 재계 거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이 회장은 2014년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졌고 6년여간 와병 생활을 이어오다가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78세였다. 이 회장은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별세한 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 아들━ 이 회장은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운영했기에 이 회장은 어린시절을 할머니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학교 시절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 명령으로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서울사대부고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학교 상과대학,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경영 일선에 뛰어든 건 1966
1991년 10월 23일(이하 현지시간). '죽음의 의사'로 불리는 잭 케보키언 박사가 여성 두 명의 자살을 도와 논란이 일었다. 이날 오후 7시7분. 케보키언 박사는 보안관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여성 두 명이 미국 미시간주 오리온 호수 인근의 한 오두막에서 사망했다고 신고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자 케보키언은 직접 진입로 문을 열어주며 이들을 맞이했다. 사망한 여성은 12년간 다발성 경화증을 앓은 셰리 밀러(당시 43세)와 만성 골반통을 호소했던 마조리 완츠(당시 58세)였다. 두 사람은 케보키안과 수년간 알고 지낸 사이였다. 두 여성은 가족들과 함께 사망 전날 케보키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다음날 케보키안이 발명한 이른바 '자살 기계'를 이용해 죽음을 택했다. 이 기계는 마취 주사와 치명적인 약물 및 가스 등을 투여하는 장치였다. 완츠는 "3년 반 동안 디트로이트에 있는 병원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이건 삶이라 할 수 없다"며 자신의 투병
2021년 10월 21일(이하 현지시간). 할리우드 배우 알렉 볼드윈이 촬영장에서 쏜 소품용 권총에서 실탄이 발사돼 촬영감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알렉 볼드윈은 미국 뉴멕시코주 보난자 시티에서 약 100억원대 예산으로 제작되는 소규모 서부 영화 '러스트' 촬영 중이었다. ━리허설 중 소품 총에서 실탄 '탕'…촬영감독 숨졌다 ━볼드윈은 이날 오후 보난자 크릭 랜치의 한 교회에서 총격전 장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볼드윈이 몸에 두른 '홀스터'(무기 등을 휴대할 수 있는 권총집)에서 카우보이처럼 '크로스 드로우'(팔을 몸통 위로 교차시켜 반대편 허리에 있는 총을 꺼내 드는 동작)으로 총을 꺼내 카메라를 향해 겨누는 장면이었다. 총기 등 무기 소품 담당자인 한나 구티에레스-리드는 총기 3정과 탄약을 금고에서 꺼내와 소품 카트에 올려뒀고, 현장 안전 담당자이자 조감독이었던 데이비드 홀스가 "'콜드 건'(Cold gun ·공포탄이 장전된 총)"이라며 볼드윈에게 리볼버를 전달했다.
17년 전 오늘인 2008년 10월20일 오전 8시15분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고시원 3층에 살던 정상진(당시 30세)이 자기 방에 불을 질렀다. 입주민들이 화재 연기를 피해 복도로 뛰쳐나오자 정씨는 그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6명이 목숨을 잃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정씨는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부과된 벌금 150만원과 고시원비,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지 못하게 되자 처지를 비관하며 '묻지마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정씨는 현재까지 미집행 사형수로 복역 중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 계속되는 생활고…4년간 계획 후 범행━불우한 가정환경에 학창 시절 괴롭힘을 당한 정상진은 고교 졸업 후 단란주점 종업원과 다단계회사 직원으로 근무했다. 입대 후 상경해 주차 관리 요원과 식당 배달원으로 일했으나 2003년 8월 실직 후 금전적 어려움을 겪었다. 정씨는 그해 9월부터 월세 17만원짜리 1평 남짓한 고시원에 살기 시작했다. 한동안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