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년 전 오늘인 2008년 10월20일 오전 8시15분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고시원 3층에 살던 정상진(당시 30세)이 자기 방에 불을 질렀다. 입주민들이 화재 연기를 피해 복도로 뛰쳐나오자 정씨는 그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6명이 목숨을 잃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정씨는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부과된 벌금 150만원과 고시원비,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지 못하게 되자 처지를 비관하며 '묻지마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정씨는 현재까지 미집행 사형수로 복역 중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학창 시절 괴롭힘을 당한 정상진은 고교 졸업 후 단란주점 종업원과 다단계회사 직원으로 근무했다. 입대 후 상경해 주차 관리 요원과 식당 배달원으로 일했으나 2003년 8월 실직 후 금전적 어려움을 겪었다.
정씨는 그해 9월부터 월세 17만원짜리 1평 남짓한 고시원에 살기 시작했다. 한동안 처지를 비관하던 정씨는 이듬해 2월쯤 '고시원에 불을 질러 다른 입주자를 살해하고 인질극을 벌여 경찰 총에 맞아 죽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부터 4년간 가스총, 회칼, 과도 등 각종 범행도구를 인근 시장에서 차곡차곡 사 모으며 범행 의지를 다진 정씨. 그가 범행 계획을 실천에 옮기게 된 직접적 계기는 향토예비군설치법(향군법) 위반으로 받게 될 경찰 조사였다.
당시 정씨는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아 향군법 위반으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고도 이를 내지 않아 지명수배됐던 상황. 범행 당일인 20일은 정씨가 경찰 조사를 받기로 한 날이자 밀린 고시원비를 내기로 한 날이었다.
정씨는 경찰 조사 뒤 구속되면 고시원 측에서 숙박비 미지급을 이유로 자기 짐을 창고로 옮기면서 범행도구를 발견할 가능성을 우려해 당일 오전 8시15분쯤 계획하던 범행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진은 고시원 3층 자기 방 침대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오전 8시20분쯤 건물이 연기로 가득 차 주민들이 복도로 뛰쳐나오자 무장한 채 기다리고 있던 정씨는 이들과 마주치는 족족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정씨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앞을 볼 수 있게 고글과 마스크를 썼고, 눈앞을 밝힐 헤드랜턴(머리띠형 전등)도 착용했다. 허리춤엔 가스 권총을 찼고 손엔 50㎝ 회칼을 들었으며 예비용 과도 2개는 바지 속 두 발목에 숨겨 찼다.
정상진은 피해자들 배를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저항하면 더한 공격을 퍼부었다. 무방비 상태였던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좁은 복도에 퇴로는 없었다. 경찰과 소방이 출동하기까지 약 30분간 지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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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씨가 휘두른 흉기에 여성 5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몸에선 인당 1∼7개 자상이 발견됐다. 다른 희생자 1명은 화마를 피하려고 3층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가 추락사했다. 4명은 중태에 빠졌고 3명은 경상을 입었다.
사상자 13명은 인근 영동시장 먹자골목 등 근처 식당에서 일했던 40~50대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아들 치료비를 벌던 중국 동포(조선족) 여성과 학비를 마련하려 가족 몰래 고시원에 살던 20대 여성이 희생자에 포함됐다.

고시원 건물은 3개 층이 전소했다. 경찰은 화재 진압 후 소방대원 인도를 받아 나오던 정상진 옷차림이 수상하다는 점을 들어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해 체포했다.
정씨는 경찰에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했다. 한때 자살도 생각했다. 고시원비와 휴대전화 요금, 벌금 낼 돈도 없어 '이렇게 살면 뭐 하나' 하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고시원 숙박비 17만원과 향군법 위반 벌금 150만원, 휴대전화 미납 요금 60만원, 지병인 하지정맥류 수술비 300만원이 필요했지만 별다른 직업 없이 일용직을 전전하느라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범죄 영화 영향도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공포 영화나 액션물을 좋아했다는 정씨는 2005년 개봉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고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이들에게 복수하는 주인공 모습에 반해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현장에선 정씨가 자기 처지를 비관하며 쓴 일기장 4권도 발견됐다. 화재에도 비교적 훼손이 덜한 상태로 발견된 일기장엔 삼색 볼펜으로 막연한 공상과 신변 비관, 범행 각오 등을 담은 내용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일기장엔 "난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 몸과 두뇌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종자가 좋지 않으니 삶이 좋을 수 있겠느냐고" "나 같은 태생은 결국 이렇게 끝난다. 있는 듯 없는 듯 아무런 가치가 없다" 등 자책이 담겼다.
또 "조국은 날 버렸다. 이젠 필사의 항쟁뿐이다" "내 피로 인해 조금이나마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 있는 자는 잃을 게 많고 없는 자는 잃을 게 없다" 등 세상을 향한 원망과 범행 각오도 드러났다.

정상진은 현주건조물방화죄, 방화치사죄, 살인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09년 5월12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정씨는 치밀한 계획하에 범행했고 수법이 같은 사람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하다"며 "재범 가능성이 크고 교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다. 정신감정, 심리분석 등 세밀한 과정을 거쳤지만 아무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도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판시했다.
정씨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확정됐다. 다만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어 정씨는 여전히 사형수로 복역 중이다.
이 사건 이후 사실상 무허가 숙박 시설로 이용되는 고시원 실태가 조명됐다. 고시원에도 피난 유도선과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고, 복도 폭도 기존 90㎝에서 최소 120㎝ 이상으로 강화됐다. 또 2013년부턴 고시원과 노래방 등도 의무적으로 화재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