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將棋를 통해 본 조직문화의 힘

[기고]將棋를 통해 본 조직문화의 힘

허진수 GS칼텍스 생산본부장(사장)
2006.09.06 09:57

여름철이면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는 동네 사람들로 늘 시끌벅적했다. 오뉴월 땡볕에 지친 동네 분들에게 시원한 나무 그늘은 한 여름 훌륭한 안식처 역할을 했다. 마을 어른들은 그곳에서 얘기꽃을 피우고 함께 놀이도 즐기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곤 했다.

가장 인기 있었던 놀이는 뭐니뭐니해도 장기였다. 일단 장기가 시작되면 장기판 주위에는 어느덧 구경꾼들로 가득했고 훈수하는 사람들로 자연스레 편이 갈려 단체경기가 되곤 했다.

지금처럼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마을 어른들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며 장기판 주위에 빙 둘러선 모습은 여름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요즘도 점심시간이면 회사 여수공장 휴게실에 모여 장기를 두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장기판과 장기알만 있으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까닭에 장기는 예나 지금이나 사랑받는 게임이다.

이렇듯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기는 그 유래를 살펴보면 중요한 교훈을 시사해 준다. 무엇보다 한 조직의 문화가 신뢰라는 덕목으로 튼튼히 무장되어 있을 때 그 조직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를 반증한다.

장기는 중국 진나라 말기 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의 각축전에서 모방됐다. 항우와 유방은 둘 다 천하통일이라는 동일한 비전이 있었다. 하지만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각자 보여준 리더십 스타일과 고유의 조직문화는 분명히 달랐다.

유방은 항우보다 모든 조건에서 열세였다. 그는 귀족 태생인 항우보다 신분이 낮은 농민 출신인데다 군주로서 출발도 늦었다. 더군다나 항우는 스스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 할 만큼 무예도 출중했다.

게다가 양귀비와 함께 중국 역사상 대표적 미인으로 회자되는 우미인과 관우의 적토마에 견줄만한 천하의 명마 오추마를 거느렸으니 스타급 군주로서 손색이 없었다.

반면 유방은 특별히 내세울만한 배경이 없었다. 대신 그에겐 유능한 부하를 고르는 눈과 용병술이 있었다. 그는 한신 장량 소하 번쾌 등과 같은 인재를 등용, 각자의 역량과 소질에 맞는 직책을 부여하고 이들을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기원전 202년. 마침내 유방은 천하통일을 이뤘고 스스로 성공의 비결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군막을 치고 천리 밖에 나가 승리할 수 있는 모책을 내는 데는 장량 만한 사람이 없고 양초와 물자의 공급을 보장해 치국안민하는 데는 소하 만한 사람이 없으며 전선에 나가 적을 무찌르는 데는 한신 만한 인물이 없소. 이들을 잘 등용한 것이야 말로 짐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얻게 된 주요한 까닭이오. 이에 반해 항우의 수하에는 오직 범증 한 사람뿐이었으며 또 그를 잘 쓰지도 못하였소."

유방은 이토록 자신의 구성원들을 철저히 신뢰했다. 반면 자신의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던 항우는 유방의 수하인 진평의 꾀에 속아 천하의 전략가인 범증을 내쫓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 결과 항우는 사면초가에 처해 사랑하는 부인 우미인도 잃고 본인도 32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유방은 인재중시, 신뢰중심의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루게 된다.

현재와 같은 개방사회에서는 경쟁사들을 포함한 모든 기업들이 똑같거나 비슷한 시설과 장비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또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출신의 구성원을 채용하기도 하고 심지어 유명 컨설팅 회사를 통해 전략까지 쉽게 모방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업체 특유의 조직가치를 바탕으로 한 고유의 조직문화만큼은 결코 모방할 수 없다. 항우와 유방의 일화에서 바로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많은 기업들이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역량이자 비전달성의 기반이 되는 귀중한 조직문화를 가꾸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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