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당당한부자] 달리기 대회 수익금 전액기부하는 '달리는의사들'과 이동윤 원장

금세 숨이 가빠와 턱 밑까지 차오른다. 머리끝에서 발바닥은 온통 땀으로 흠뻑 젖는다. 얼마를 달렸나. 이제 내 옆을 달리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뺨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과 훅훅 거리는 거친 숨소리, 가슴에서 느껴지는 심장의 압박감이 '내가 살아있음, 그래서 지금 달리고 있음'을 깨닫게 할 뿐이다. 달리기의 묘미는 이처럼 생(生)의 환희를 느끼는 순간에 있다.
의사인 이동윤 원장은 오늘도 달린다. 변변한 놀거리가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그저 놀거리로 뛰었다. 청장년기에는 '한계'를 넘어서는 쾌감에 달렸다. 나이 50을 훌쩍 넘어선 지금. 그는 남을 위해 달린다.
암의 고통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위해 이 원장은 달리고 또 달린다.

지난 2000년 시작된 '달리는의사들'은 마라톤을 즐기는 의사들의 순수 친목모임으로 마라톤 대회를 '기부하는 달리기'로 운영해 오고 있다. '소아암환자 돕기 마라톤'은 올해로 5회째를 맞았다.
'달리는의사들'의 회원들은 '소아암환자 돕기 마라톤'을 지금 모습으로 발전시킨 공로를 지난 2001년부터 이 모임을 주도해온 이동윤 '이동윤외과' 원장에게 돌린다.
'돈이 적게 드는데다 나의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어서' 마라토너로 입문했다는 이 원장이 '달리는 의사들'모임을 결성하고, 마라톤 대회를 주관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남과 나누기 위해 달리는 쾌감이 더 커진다는 믿음'에서다. 총동적이거나, 일회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나눔과 기부의 실천문화를 보다 널리 확산시키겠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다.
◇청년, 달리기 인생의 2막을 맞이하다=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2년 경남 울주군 상북면에서 태어난 이 원장은 "어릴 때 가지고 놀 장난감이 없어서 그냥 달리고 놀았다"고 말했다.
가난한 소년이 튼튼한 두 다리로 할 수 있는 놀이는 산을 타거나 뛰는 게 전부였다. 그의 달리기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원장은 달리기의 매력에 대해 "숨이 넘어갈 것 같다가도 갑자기 몸이 개운해지는 순간 '나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년 이동윤'은 혼자 뛰면서도 달리는 순간이 마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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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의대, 연세대 보건대학원을 다닐 때는 물론 청와대 의무실장(1987~1993), 국군서울지구병원장(1993~1995)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달리고 또 달렸다.
개인병원 '이동윤외과의원'을 차린 1995년 이후에는 일반인들이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원장은 이 때부터 각종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어서 대회에 참가했던 이 원장은 몇해 지나지 않아 자신의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그의 42.195km 풀코스 최고기록은 3시간17분. '4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를 의미하는 '서브4(four)' 중에서도 단연 우수한 기록이다.
외로운 달리기를 즐겼던 이 원장이 지난 2000년 의사들의 인터넷 친목 동호회인 '메디게이트(http://www.medigate.net)'를 통해 자신처럼 '달리기를 좋아하는 의사들'을 만났다. 여기서 만난 동료 의사들과 함께 '달리는 의사들'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것.

이 때부터 그의 달리기 인생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달리는 2막을 맞이한다. 모임 결성 이듬해인 2001년부터 이 원장은 모임의 대표로 활동했다. '이제 나만을 위한 달리기는 이제 그만'.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자 했다.
◇ ‘일년에 하루는 이웃을 위해’ 대회수익 전액기부로 나눔실천=그렇게 시작된 것이 '소아암 환자 돕기 마라톤 대회'. '일년 중 하루는 이웃을 위해 뛰자'는 모토를 내걸고 2002년 처음으로 열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2003~2004년 두해는 운영비를 마련하지 못해 대회 개최가 무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선행'은 '복'을 부르는 법. 다행히 2005년부터는 '달리는의사들' 회원도 늘어 회비도 더 많이 모였다. 제약사들의 협찬도 얻어냈다. 덕분에 이 모임은 올해까지 4년 연속으로 대회를 열 수 있었다.
대회 참가자들은 풀코스에서부터 하프코스, 10km 단축코스는 물론 걷기코스까지 다양한 부문에 코스별로 2만~4만원씩 등록비를 낸다. 대회가 끝나면 시상식이 열린다. 순위에 따라 5만~40만원의 상금이 걸려 있지만 수상자들이 받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적힌 기부증서다.
대회 수익금 전액이 소아암 환자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수상자든 아니든, 몇 등으로 들어왔든 간에 이 대회에 참가하는 모두가 소아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의 손길을 건내는 셈이다.
참가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액 기부여서 부담이 없다. 소아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미는 더 크다.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다.

지난 5월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던 올해 대회의 참가자 수는 3500명, 운영비 등 지출을 빼고 남은 순이익금만 1200여 만원이었다.
'달리는의사들'은 대회 비용 정산이 끝난 지난 5월말, 이 수익금을 3명의 환자들에게 각 400만원씩 전달했다. 이 모임이 소아암 환자들에게 전달한 금액은 지금까지 8000여 만원에 이른다.
지난 2001년부터 '달리는의사들' 대표를 맡아 온 이 원장은 "백혈병 등 소아암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았을 때의 완치율은 80%를 웃돌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가정 전체가 빈곤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소아암 환자를 돕는 것은 곧 가정해체를 막는 예방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도움을 받은 어린이들이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이들이 또 다시 나눔을 실천하는 식으로 나눔과 기부 문화가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며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