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인간의 존엄성과 잔인성

[기자수첩]인간의 존엄성과 잔인성

배혜림 기자
2010.06.07 07:46

'인간의 탐욕스러움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일제시대 기생 '명월이'의 생식기와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 교주의 머리 표본을 폐기해달라는 소송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잔인성에 푸념이 밀려들었다. 이 소송은 올해 초 혜문스님이 "일본 경찰이 무단 적출한 인체표본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보관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표본 폐기와 위자료 2500만원을 구하는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문제의 생식기는 1909년 문을 연 기생집 '명월관'에서 활동하던 기생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제는 명월이와 동침했던 남성들이 줄줄이 복상사하자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이 여인이 숨진 뒤 생식기를 적출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의 발상에 또 한 차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담당 재판부는 국과수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했는데, 혜문스님은 표본을 직접 눈으로 보고 돌아온 후 인간의 마성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앓아누웠다고 했다. 혜문스님은 자신의 블로그에 "표본은 피부의 탄력이 남은 젊은 여성의 둔부와 생식기를 완전히 오려낸 상태였고, 나팔관까지 이어지는 자궁까지 그대로 도려내져 있었다"고 적었다.

표본은 외과 의사가 신체를 절취한 게 아니라 비전문가나 일반인이 칼로 오려낸 듯 절취 단면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국과수는 해부방식이 연구용이나 자료용은 아닐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백교 교주 전용해의 것으로 알려진 머리 표본 역시 볼 아래의 살은 벗겨지고 머리에는 실로 꿰맨 부검 자국이 선명한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전용해는 1927년부터 10년 동안 반기들 든 신도 620여명을 무참히 살해한 인물로, 일제는 뇌 구조와 살인 행각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려 했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이번 소송은 다행히도 혜문스님이 위자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국과수가 표본을 매장 또는 화장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귀중한 과학적 연구 자료가 소실돼 안타깝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인체 표본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은 공익 및 의학적 관점에서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오늘을 사는 우리도 '연구'라는 이름하에 이기적인 호기심과 욕망을 인간의 존엄성과 바꾸는 일은 없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