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끼워팔기' 제동 건 공정한 시장경제 지킴이

'MS, 끼워팔기' 제동 건 공정한 시장경제 지킴이

김만배 배혜림 기자
2010.08.10 08:19

[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율촌 윤세리 변호사

- 공정거래법 제정 전에 논문 발표…1호 전문가

- "일반기업에 '금지청구권' 줘야 공정거래 실익 커

- 투자자도 기업 공정거래 준수여부 꼭 확인해야

↑법무법인 율촌 윤세리 변호사 ⓒ이명근 기자
↑법무법인 율촌 윤세리 변호사 ⓒ이명근 기자

2001년 9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이 마이크로소프트(MS)를 상대로 '윈도XP를 판매하지 말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이를 무모한 도전 혹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불렀다.

당시는 MS가 메신저 프로그램을 탑재한 윈도XP의 출시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국내 메신저 시장에서 MSN메신저와 경쟁하며 안정적인 기반을 다져온 다음은 생존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윈도95가 익스플로러 '끼워 팔기'로 웹브라우저시장 점유율 1위였던 넷스케이프를 산산조각 냈던 상황이 재현되기 일보직전인 셈이었다.

벼랑 끝에 선 다음 측에 소송을 권유한 것은 법무법인 율촌의 윤세리(57·사진)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였다. MS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 우리 기업에 입힐 타격을 일찌감치 우려하고 있었던 윤 변호사는 곧장 MS와의 전쟁에 나섰다.

윤 변호사는 다음을 대리해 공정거래위원회에 MS의 불공정행위를 제소하면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윈도XP의 판매금지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소송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2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나온 1심은 다음의 패소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윤 변호사는 '윈도가 여러 프로그램들을 끼워 팔다 보니 가격이 올랐고 그에 따라 소비자의 후생은 감소했다'는 논리로 MS를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며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MS는 2005년 공정위 신고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다음에 300억여원을 지급했다. 또한 공정위로부터 "윈도에서 메신저를 분리하라"는 시정명령과 함께 330억원의 과징금 처분까지 받았다.

ⓒ이명근 기자
ⓒ이명근 기자

◇공정거래법 전문가 '1호'

윤 변호사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전문가 1호로 통한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도 전에, 공정거래법이 시행될 경우 발생할 법률 문제를 다룬 논문을 작성했을 정도다.

특히 그가 1982년 미국 하버드 법과대학원에서 작성한 '한국에서의 혼합기업결합 규제(Regulation of Conglomerate Merger)'라는 제목의 논문은 우리나라의 재벌이 어떤 형태로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받는지 외국에 소개한 글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윤 변호사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드러난 4대 기업의 계열사 부당지원 사건을 비롯해 MS, 인텔, 퀄컴 등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한 불공정거래 사건을 줄줄이 자문하면서 공정거래법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그는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인 인텔의 '로열티 리베이트'(일정량 이상의 물품을 구매하면 물건값을 깎아주는 제도)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100억원대의 과징금을 물렸다.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 사건 당시에는 현대와 삼성그룹을 대리, 무리한 법 집행에 제동을 걸고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 변호사의 실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2004년에는 세계적인 금융전문지인 유로머니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로 선정됐다. 'Chambers Asia; 비즈니스를 위한 아시아의 선두 변호사들 2008년'은 윤 변호사를 '재치 있고 냉정해 매우 뛰어난 협상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사인(私人)에게도 '금지청구권' 줘야

윤 변호사는 법조계에 입문하면서 국가 경제에 일조하겠다는 일념으로 공정거래 분야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개척 분야에서 한 발 내딛기란 쉽지 않은 법. 법정에서는 낯선 사건이라는 이유로 소송이 기각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특히 외국의 거대 공룡기업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면 법원이나 공정위는 덜컥 겁부터 집어먹었다. 소송자료를 영어로 봐야 한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때였다.

윤 변호사의 MS 소송은 이런 분위기를 완전히 역전시키는 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로 공정위는 당시 MS의 메신저 끼워 팔기에 대해 세계 최초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판정을 내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명근 기자
ⓒ이명근 기자

윤 변호사는 "영국의 권위 있는 공정거래법 전문지인 'GCR'(Global Competition Review)이 각국 경쟁당국의 경쟁력 순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당당히 7위를 차지했다"며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놀랍고도 뿌듯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 '금지청구권'을 도입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MS를 상대로 한 다음의 메신저 소송에서 패소한 것 역시 우리 공정거래법에 '일반기업의 법원에 대한 판매금지청구' 조항이 없기 때문이었다. 금지청구권이 보장돼 있었다면 다음 메신저는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윤 변호사의 견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정위의 시정명령만 가능할 뿐, 사인(私人)의 금지청구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윤 변호사는 "공정위가 문제 삼지 않으면 피해자가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구조"라며 "피해자가 공정위의 법 해석과 다른 해석을 받을 수 있도록 사인의 금지청구를 허용해야 공정거래의 실익도 크다"고 말했다.

◇"공정거래, 투자 결정의 핵심요소"

"투자자는 주식의 가치 혹은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는 요소로 공정거래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액화석유가스(LPG) 업체들이 담합으로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는 등 불공정거래에 대한 처벌 강도가 세지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기업에 부과된 과징금은 세무상 '비용'이 아니므로 완전히 '손실'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공정거래의 중요성에 둔감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는 비밀리에 이뤄지고 의무공시 사항도 아니다. 이에 따라 일반 투자자들은 투자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정보를 얻기 힘든 실정이다. 윤 변호사는 특정업체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소문이 돌면 투자자가 즉각 조회공시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기업의 공정거래 준수 여부는 공장사고 혹은 분식회계 등과 마찬가지로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핵심 요소"라며 "공정거래로 인한 문제는 기업의 손실로 직결되는 만큼 투자자 스스로 향후 발생할 위험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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