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학가, '정치색' 놓고 말싸움→신상털기→국정원 신고

요즘 대학가에서는 '국정원 신고'가 트렌드다. 말싸움으로 시작해서 신상을 털고 '정치색'을 문제삼아 신고하는 흐름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지난달 A씨는 대학교 게시판에 '여성차별' 관련 글을 올렸다가 비논리적이라며 반론을 당했다. A씨는 욕설과 비아냥으로 대응했다. 화가 난 학생들이 뒷조사에 들어갔다. A씨가 친북 사이트에 남긴 정치적 발언들이 발견됐다. 한 학생이 A씨를 '이적행위' 혐의로 국정원에 신고했다.
또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학생으로 추정되는 신고자가 강사의 저서내용과 민주노동당 간부 경력을 문제 삼아 국정원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사는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 등 강의 제목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가르쳤다고 한다.
일간베스트같은 일부 사이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이 오고가야 할 대학에서도 '국정원 신고'는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표현의 자유 위축을 염려하는 목소리는 소수에 불과하다.
현직 국회의원이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구속되는 판에 대학생들의 국정원 신고를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일단 신고해서 판단받자"는 생각은 자기 정화 능력이 떨어진 사회가 택하는 가장 낮은 수단임은 분명하다. 동네 사람들끼리 막걸리 마시다 대통령 욕 한 번 했다고 남산으로 끌려가는 '효자동 이발사' 시대가 떠오른다. 남은 건 '자기검열' 뿐이다.
투철한 신고 정신이 아니더라도 한국사회는 이미 표현의 자유가 심히 제약받고 있다. 지난 5월 국제엠네스티는 '2013년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의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이 인터넷까지 확대됐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국보법 위반을 판단할 기준이 불분명하고 상당수가 '무혐의' 처분이 나고 있다는 지적도 계속됐다. 2년 전 북한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글을 리트윗했다가 구속기소 된 박정근씨는 1심에서는 징역 10월을, 2심에서는 혐의 전부가 무죄로 선고됐다.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두 가지다. 인터넷에서 꼬투리 잡힐 만한 모든 기록을 지워버리거나 아예 입을 닫거나. 안전하려면 둘 다 하는 게 좋다. 물론 신고 당할 일이 전혀 없는 건전한 시민들은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면 된다. 일부는 '불순세력'을 신고하고 상으로 국정원 '절대시계'도 챙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