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떨어지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이유

스펙 떨어지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이유

이상배 기자
2013.11.04 06:02

[이슈 인사이트] 스펙 평범한 지원자 격려하면 '고(高)스펙' 지원자보다 성과 40% 높아

신입사원 공개채용 시즌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대부분의 주요기업들이 서류 전형을 끝내고 필기 또는 면접 정도를 남겨두고 있다.

채용 담당자들의 진짜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필기시험 성적 또는 면접 태도가 좋은 지원자를 선택할 것이냐, 이른바 '스펙'(Specification)이 뛰어난 지원자를 선택할 것이냐. 누굴 뽑아야 회사 차원에서 더 나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학력, 경력, 자격 등 스펙이 좋은 지원자와 그렇지 않은 평범한 지원자를 각각 뽑았을 때 누구의 성과가 더 좋은지에 대해 나름대로 해답을 구한 연구 결과가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경제연구소의 나탈리아 몬티나리 박사 연구팀은 630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은 뒤 각자에게 고용주, 지원자 A, 지원자 B의 역할을 부여했다. 지원자 A는 스펙이 좋은 지원자, 지원자 B는 스펙이 평범한 지원자들로 설정했다. 연구팀은 같은 연봉을 주는 조건에서 각각의 지원자를 뽑았을 때 이들이 일을 얼마나 열심히 잘 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실험 결과, 약 70%의 고용주들이 스펙이 좋은 지원자들을 선택했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중요한 것은 각 지원자들이 자신을 뽑아준 고용주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느냐였다. 연구 결과, 스펙이 평범한 지원자들이 스펙이 좋은 지원자들에 비해 50%나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실제 업무 성과에 따라 고용주들이 얻은 이익도 평범한 지원자들을 뽑았을 때가 스펙 좋은 지원자들을 뽑았을 때보다 무려 40%나 많았다.

다만 여기에는 한가지 조건이 있었다. 스펙이 평범한 지원자들이 훨씬 높은 성과를 보인 경우는 고용주가 지원자를 선택한 뒤 자유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합격자에게 별도의 메시지를 보낸 경우였다. 스펙이 좋은 지원자들은 이런 별도의 메시지를 받아도 성과가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또 별도의 메시지없이 합격 여부만 알려준 경우에는 스펙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성과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종합하면 스펙이 평범한 지원자들은 고용주들이 낮은 스펙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선택하고 격려의 말 등으로 별도의 소통을 할 때 스펙 좋은 지원자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성과로 보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유도된 상호성'(Induced Reciprocity)이라고 불렀다.

스펙이 좋은 지원자들은 자신이 합격한 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뿐 고용주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끼거나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유도된 상호성'의 영향이 약했다.

물론 이 같은 실험은 같은 연봉과 단일한 업무 등 단순한 상황을 가정했다는 점에서 실제 직장 현실과는 결과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 연구를 통해 스펙이 낮은 지원자를 선택하더라도 고용주의 소통 능력 등에 따라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 정도는 확인된 셈이다.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낸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은 "스펙은 기계에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과도한 스펙 경쟁이 소모전으로 치닫는 데 대한 아쉬움에서 나온 말이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시작된 '스펙 초월 채용'이 더욱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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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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