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어느 소방관의 하소연 "응급환자라도 나오면…"

[르포]어느 소방관의 하소연 "응급환자라도 나오면…"

수원(경기)=최동수 기자
2014.06.17 06:07

수원 서둔119안전센터 24시간 동행해보니… 인력·장비 지원 시급

지난 12일 오후 3시45분쯤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의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둔119안전센터와 주변 119안전센터에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사진=최동수 기자
지난 12일 오후 3시45분쯤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의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둔119안전센터와 주변 119안전센터에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사진=최동수 기자

시민 8만5000명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경기 수원 권선구의 서둔 119안전센터. 최근 소방관들의 처우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오전 9시부터 24시간동안 안전센터 소방관들과 함께 보냈다.

여의도의 약 2배 되는 면적의 시민안전을 책임지는 이 소방센터는 다른 지방에 비해 인력과 장비 지원이 양호한 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소방관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구급차 탑승인원 달랑 2명 "1명이 휴가라도 가면…"

구급차만 8년째 몰고 있는 허근행 소방교(34)는 응급환자를 만나면 아직도 긴장된다. 2급 응급구조사인 허 소방교는 주로 구급차를 운전하며 1급 응급구조사나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동료 대원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동료 구급대원이 휴가라도 떠나면 허 소방교는 응급환자가 발생할까 더욱 애간장이 탄다. 자신이 혹시 실수라도 하면 더 일이 커질 수 있다는 부담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서둔119센터 구급대원 6명은 2명씩 3교대로 근무를 서고 구급차를 탄다.

이날 근무였던 허 소방교와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류경남 소방사(30)는 3차례의 구급출동을 나가 경상자 1명을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이송된 환자는 이날 밤 11시쯤 서둔동 한 지하 노래방에서 유리병으로 머리를 맞아 피를 흘렸다.

만취한 환자는 구급차 안에서 온몸을 비틀며 난동을 피웠다. 소방사 혼자 감당하기에 벅차 보였다. 류 소방사는 "술에 취하거나 중상을 입고 있는 환자는 혼자 조치가 힘들기 때문에 1급 응급구조사 2명이 뒤에 타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료가 휴가라도 가는 날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진압업무를 담당하는 대원들이 대신 구급업무에 투입되는데 아무리 2급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더라도 위험한 응급환자를 처치하는 일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경훈 소방장(45)은 "지난 근무지에서 동료 대신 구급차를 탔는데 의식이 없는 환자를 만났다"며 "할 수 있는 일이 심폐소생술 밖에 없었고 옆에 누가 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12일 오후 3시45분쯤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의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둔119안전센터와 주변 119안전센터에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사진=최동수 기자
지난 12일 오후 3시45분쯤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의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둔119안전센터와 주변 119안전센터에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사진=최동수 기자

◇소방대원 10명 있지만 5명만 출동하는 사연

소방대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센터에는 5명 정원의 펌프차량 2대가 준비돼 있지만 출동인원은 최대 5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날 1명이 고장난 펌프차를 고치러 가는 바람에 현장엔 4명밖에 출동하지 못했다. 중간에 교육이 있었던 때는 3명이 출동한 적도 있다.

이날 오후 3시45분쯤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에서 발생한 화재로 가로 15m, 세로 10m 크기의 샌드위치 패널 건물 하나가 통째로 탔다. 대원들은 발화지점에 도착하자마자 펌프차에서 뛰어내렸다.

1명은 펌프차에서 호스를 빼내 발화지점으로 달려갔고 남은 2명이 호스를 풀었다. 운전을 했던 1명이 펌프차 밸브를 열어 물을 공급했다. 대원들은 온몸에 검은 재를 뒤집어썼다.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4명 모두 쉴 틈 없이 움직여 겨우 진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염태문 센터장(52)은 "지금도 인원이 빠듯한데 만약 1명이 휴가 가거나 교육으로 빠지면 현장에서 조치가 늦어진다"며 "1명이 근무하는 지방의 이른바 '나홀로 지역대'는 혼자 밸브를 열고 호스 잡고 달려가서 불을 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반 골든타임인 5분에 진압해야 인명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며 "발화지점이 높아 사다리를 이용할 때나 도끼가 필요할 경우 사람이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오후 3시45분쯤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의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둔119안전센터와 주변 119안전센터에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사진=최동수 기자
지난 12일 오후 3시45분쯤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의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둔119안전센터와 주변 119안전센터에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사진=최동수 기자

◇수명 지난 펌프차에 사비 털어 보급용품 구입까지

구조와 화재진압에 쓰는 장비는 낡았지만 보급은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센터 직원 대부분은 사비를 털어 장갑이나 바지, 신발 같은 보급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또 화재 진압에 가장 중요한 펌프차 2대는 이미 수명이 지난 상태다. 새로 보급된 방화복이 아닌 구형 방화복을 입고 화재 진화에 나선 소방대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상광 소방위(48)는 "펌프차 수명이 10년인데 12년째 운행하고 있다"며 "겉은 멀쩡해 보여도 안에는 녹이 슬어 매일 정비를 하고 있을 정도로 잔고장이 잦다"고 토로했다.

허 소방교는 자신의 장갑을 벗어 헤진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내밀었다. 그는 "신형장갑이 현장에 있는 대원들보다도 공익근무요원들에게 먼저 보급됐다"며 "구급대원들은 일괄 보급되는 화재 진압용 장갑보다 얇은 장갑이 필요한데 보급이 너무 늦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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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명 기자

안녕하세요. 금융부 이창명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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