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속 유병언 탈출시켜 동행? '사건의 열쇠' 지목

"검찰이 들이닥쳐 회장님을 순천 숲속에 놔두고 왔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의 운전기사 양회정씨가 친지들에게 남긴 말이다.
24일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검사)에 따르면 검찰이 유 전회장의 은신처를 급습한 다음날인 지난 5월26일 양씨는 전주에 나타나 처제와 처형에게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양씨의 처제와 처형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진술을 확보했다.
양씨의 처제와 처형, 유 전회장의 여비서 신모씨의 검찰 진술을 종합해보면 양씨는 유 전회장의 행적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지난 5월25일 전남 순천 송치재 인근 별장 '숲속의 추억'을 압수수색하는 2시간여 동안 유 전회장은 건물 내 비밀 장소에 숨어 있었다. 간밤에 유 전회장의 측근들이 잇따라 체포됐다는 소식을 구원파로부터 접한 신씨는 벽으로 위장된 문 뒤에 있는 9.9㎡(3평)짜리 공간에 유 전회장을 숨겼다.
신씨는 수사관들을 상대로 영어로 말하는가 하면 건강 상태가 나빠져 별장에 요양을 왔다는 둥 횡설수설했다. 검찰로서는 유 전회장이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 신씨가 연막을 피운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검찰은 범인 도피·은닉 혐의로 신씨만 체포하고 눈앞에 있던 유 전회장을 내버려둔 채 발걸음을 돌렸다. 한 달 뒤 신씨가 유 전회장을 비밀 공간에 은닉했다고 털어놓을 때까지 '숲속의 추억' 별장은 '어두운 등잔 밑'으로 남았다.
한편 송치재 근처 구원파 수련원에 머물던 양씨는 유 전회장의 측근들이 잇따라 체포된 직후인 5월25일 새벽 3시10분쯤 승용차를 타고 황변IC 부근을 빠져나갔다. 양씨가 전주에 나타나 '숲속에 회장님을 두고 왔다'고 말한 것은 다음날이다. 양씨의 행적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종합해 보면 일단 급하게 몸을 피한 양씨는 검찰이 수색을 마친 뒤 별장을 찾아가 비밀 공간에 숨어 있던 유 전회장을 꺼내 근처 숲 속 모처에 숨기고 전주에 도움을 청하러 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양씨가 남긴 말에 대해 "숲속의 별장이 아닌 숲속 모처에 유 전회장을 두고 왔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유 전회장이 처해 있던 환경을 고려하면 이같은 가설은 무게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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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상황을 짐작하기 어려운 유 전회장으로서는 인기척이 사라졌다고 해서 선뜻 밖으로 나오기 어렵다. 밖에 아직 수사관들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밀 장소의 문 앞에는 검찰 의심을 피하기 위해 소파가 놓여 있었는데, 70대 노인 혼자 안쪽에서 소파를 밀어내고 빠져나왔다고 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결국 유 전회장이 비밀 장소를 빠져나오려면 조력자가 필요했고, 조력자로서 가장 유력한 인물은 행적이 묘연해졌다가 다음날 전주에 나타난 최측근 양씨라고 볼 수 있다.
유 전회장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그의 시신 근처에 술병들이 놓여 있었던 점부터 자살·타살 여부, 사망 시점까지 모든 것의 베일에 싸여 있다.
검찰은 현재 공개수배된 양씨가 유 전회장의 마지막 행적과 사망 당시 상황을 밝혀 줄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양씨를 검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