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죽었는데 눈으로 못 봤으니 믿을 수가 없어요"

1년이 지났다. 잔인한 계절이라지만 특히 더 잔인했던 지난 4월이었다. 생떼같은 아이들을 시커먼 바다에 가둬둔 부모들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며 이성을 상실해 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이곳에도 다시 꽃피는 봄이 왔다.
벚꽃과 유채꽃이 만개한 큰길을 돌아 들어간 팽목항은 그날의 흔적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팽목항 방파제에 매달린 샛노란 리본들도 지난 1년간 비바람에 시달려 하얗게 색이 바랬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시신이 수습돼 육지로 들어와 가족들이 검안을 했던 곳에서 이제는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 옆에서는 한 스님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조용히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를 올렸다.
"생각하면 답답하니까, 참사의 진실 앞에 서는 것이 힘드니까 비껴가고 싶은 거죠. 그러나 사람을 해치는 이런 참사 앞에서 눈 감으면서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비겁해지지 맙시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파견해 팽목항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최민석 팽목항성당 신부가 말했다. 매일 오후 4시, 초록색 천막으로 만들어진 팽목항성당에서는 기도 소리가 울려퍼진다.

수십 개의 임시 천막과 자원봉사 차량들로 발디딜 틈 없었던 팽목항. 이제는 희생자 가족들이 생활하는 컨테이너 박스 9개와 식당, 화장실 등 필수 시설과 분향소 하나만이 남았다.
딸을 만나기 위해 팽목항을 찾은 단원고 2학년3반 고(故) 김소연양의 아버지는 딸을 보낸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딸바보'다. "우리 딸은 맨날 '커서 아빠 같은 남자 만나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내가 '이런 남자 없다, 만나면 횡재하는 거'라고 답하고 그랬어요."
국어선생님이 꿈이었던 똘똘한 딸 소연이. 아내와 이혼하고 그에게 남은 4살짜리 딸은 그를 세상에 붙어있도록 지탱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용접일을 하면서도 남부럽지 않게 하고 싶다는 것 다 하게 해주며 키운 귀한 딸이었다.
"부모들끼리는 이런 얘기를 가끔 해요. 진상규명 다 끝나고 나면 삶을 포기하고 아이 곁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다고. 그 와중에도 부모들끼리 제가 첫 타자일 거라고 걱정을 해요. 너무 딸바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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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과는 또 다른 이유로 세월호의 흔적이 남은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사고 이전에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취소됐던 항구공사계획이 갑자기 정부에서 예산이 내려오면서 시작돼 희생자 가족들의 공간은 한 쪽으로 밀려났다.
실종자 가족들이 "나만 남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탄식으로 밤을 지새우던 진도 실내체육관은 이제 전남도민체전을 앞두고 인부들이 막판 공사에 한창이었다. 진도군이 가족들에게 철수를 요청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세월호를 집어삼킨 바다를 24시간 비추던 스크린이 있던 자리에는 연단이 들어섰다. 1년 전 '생존자 명단'이 붙었던 벽도 흔적 없이 깨끗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이불과 가족사진, 캐리커처, 아이들의 신발과 야구복이 있던 체육관 바닥은 경기장으로 탈바꿈했다. 배구 코트와 탁구대가 가지런히 놓였다.

단원고 2학년9반 진윤희양의 삼촌 김성훈씨는 "정부는 이제 완전히 손을 뗐고 재정이 힘든 진도군에 우리를 떠넘겨 '미안하지만 나가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전기를 무상으로 공급해주던 한국전력도 지난해 12월 돌연 계량기를 달았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장기화를 가정으로 컨테이너 전체로 하나의 계량기를 달아서 관리를 하고 있고 요금은 부과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점점 옅어지는 세월호의 남은 흔적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9명의 실종자 중 권재근씨(52)의 형이자 혁규군(6)의 큰아빠인 권오복씨는 여전히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그는 팽목항의 최장기 체류자다.
권씨는 "몰살당한 동생 일가족의 장례라도 치러줘야 하지 않겠냐"라며 "죽었는데 눈으로 아직 보지를 못했으니 죽음이 믿기지 않는 것은 실종자 가족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세월호 기억의 숲' 프로젝트를 위해 팽목항을 찾은 오드리 헵번의 손주들도 저마다의 생각으로 세월호를 마음에 담았다. 막내 산티아고 헵번군(11)은 "화물을 과적하고 제대로 묶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라며 "사고 이후에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기에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티나 헵번양(15)은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한 사람이라는 것, 아이들은 '방에 있어라'라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 정말 슬프다"라며 "안산 분향소에서 본 내 또래 아이들의 영정사진이 기억에서 잊히질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