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the L리포트][3월 결산주총시즌 기획]①

12월 결산법인들의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주주총회는 상법에 의해 규정된 주식회사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졸속적인 주주총회 진행 등에 의해 최고 의결기구로서의 위상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들의 모임인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지난해 8월 발간한 '2015년 상장사 주주총회 백서'에서도 그간 제기된 주총 형해화에 대한 지적이 단순히 우려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4월 이후 2015년 3월까지 1년에 걸쳐 개최된 상장사의 정기·임시주총의 평균 소요시간은 33.1분에 불과했다.
의장의 개회선언에 이어 출석주식수 보고, 의장인사, 감사보고, 영업보고 이후 재무제표 승인을 모두 거치고 주총에 상정된 각종 안건을 모두 논의한 시간이 30분 남짓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각 사당 평균 발언은 4.4명이었고 평균 발언시간은 2.4분에 그쳤다.
사실상 '날림주총'이 허다하다는 얘기다. 실제 주총을 진행하는 의장이 무언가를 논의하려고 말을 꺼내자마자 회사 측에서 동원한 직원주주가 "의장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선창하고 옆에 있는 동료직원 주주들이 박수로 이를 추인하는 등 형식적인 모습은 국내 주총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다.
졸속적인 주주총회가 나타나는 이유로 우선 과도한 주총일정의 쏠림현상이 곱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1929개 상장사(코스피 코스닥 포함) 중 95%에 해당하는 1824개사가 12월 결산사다. 이미 정기주주총회를 마친 10개사를 제외한 1814개사가 3월 중 주주총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3월의 22개 거래일마다 평균 82개 이상의 회사가 주주총회를 연다는 얘기다.

날짜별 주총일자의 쏠림현상은 더 극심하게 나타난다. 투자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2015년 결산 주총일정을 공시한 832개사 중 3월25일 하루에 주총을 열기로 한 회사의 수만 367개사로 조사대상 상장사의 44%에 달한다. 3월18일에 주총을 여는 회사의 수도 225개사(27.04%)에 이른다. 이들 단 2개 날짜에 주총을 여는 회사의 수만 해도 조사대상 전체 상장사의 2/3를 웃돈다.
이같은 문제의 원인은 우선 대주주 이해를 반영해 회사 측이 동원한 형식적 주주 아닌 소액주주들의 참석도가 저조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상장협 조사결과 주주참석률이 10% 이하인 회사가 과반에 달했다. 다만 주식참석률은 70~80%에 달했다. 기업의 오너나 경영진 등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이 주로 참여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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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우선 개인투자자 다수가 직장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2014년 9월말 기준 국내 주식활동계좌의 수는 총 240만4000여개로 이 중 98%에 이르는 234만6300개가 개인주주들의 계좌다. 개인주주들은 지리적으로 전국적으로 분산돼 있는 데다 직장생활이나 사업영위 등 이유로 주주총회에 참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기관투자자라고 해서 얼마나 주총을 내실있는 논의의 장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주총현장에서의 기관의 '거수기 투표'에 대해서는 이미 오랜 기간 지적된 바 있다. 기관이 자사에 돈을 맡긴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꼼꼼히 의안을 분석해 찬반투표를 하지 않고 기업 측이 상정한 안건에 기계적으로 찬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조사연구팀장은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기관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됐음에도 민간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는 여전히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송 팀장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기업 측이 제시한 주총안건에 대한 반대율은 국민연금이 14.5%에 달했고 캘퍼스(CalPERS,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과 APG(네덜란드 공무원연금)이 각각 11.6%, 20.8%에 달했다. 반면 국내 자산운용사의 반대율은 1.8%에 그쳤고 보험의 반대율도 0.7%에 불과했다. 국내 민간기관의 전체 반대율은 1.7%였다. 사실상 기업이 제시한 안건 대부분에 대해 무더기로 찬성표를 던졌음을 알 수 있다.
주주총회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으나 실효성은 아직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0년 상법개정을 통해 전자투표제, 전자위임장제도가 도입됐다. 지난해에 전자투표 실시를 위해 예탁원과 계약을 체결한 상장사의 수만 416개사에 이른다. 이 중 415개사가 전자투표를 실시했다. 올해도 225개사가 신규로 전자투표 시스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실제 활용률은 극히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황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전자투표, 전자위임장을 이용한 회사들 가운데 전자투표 행사율은 주식수 기준 1.62%, 주주수 기준 0.24%이며 전자위임장 행사율은 주식수 기준 0.14%, 주주수 기준 0.003%로 상당히 저조하다"며 "전자투표, 전자위임장 이용을 주주들에게 적극 알리려는 회사의 노력과 함께 주주들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위한 정책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투자자에 대한 기관투자자의 수탁자의무를 충실히 하기 위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대한 논의도 현재 멈춰져 있다.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되면 이에 가입한 기관은 기업의 주총안건에 대한 찬반내역 뿐 아니라 해당판단을 내린 근거를 공시해야 한다. 이미 스튜어드십코드 초안은 지난해 말 만들어졌지만 이의 제정은 2개월째 지체되고 있다.
그럼에도 주주총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월중순 개설한 의결권정보광장(http://vip.cgs.or.kr)이 대표적이다. 국내에 상장된 주요기업의 주총일정이나 안건은 물론 해당안건에 대한 국내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내역까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만든 홈페이지다. 지배구조원 관계자는 "현재는 코스피 상장사에 대한 정보만 모여 있으나 향후 서비스 확대개편을 통해 코스닥 안건까지도 서비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총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차원의 개입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승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대만의 경우 특정개최일에 주총을 여는 상장사의 수가 일정 수준에 달하면 해당일에는 더 이상 주총을 열 수 없도록 하는 쿼터제가 실시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주총현실화를 위한 제도개선의 여지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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