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원숭이냐. 생존권 보장하라"
담벼락에 빨간 페인트로 '생존권'을 부르짖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쪽에선 외국인을 비롯, 관광객이 몰려와 벽화를 배경으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사진에 담고 있다. 지난 13일 '날개 벽화'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을 찾았을 때 목도한 광경. 어색한 공존이다.
벽화마을로 알려지기 전까지 마을은 평범한 동네였다.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을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전문가 68명이 참여, 이화동 9번지 일대에 70여개 작품을 만들었다. 드라마,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돼 입소문을 타면서 관광객이 몰렸다.
마을은 유명세를 탔지만 주민의 삶은 반대였다. 관광객들이 쓰레기와 낙서, 소음까지 함께 몰고 왔기 때문이었다. 관계기관에 민원을 넣었지만 헛수고였다. 급기야 일부 주민이 벽화를 지워버렸다. 지난달 15일 마을 주민 3명은 벽화마을 계단의 '해바라기 그림'을 회색 수성페인트로 덧칠했고, 9일 뒤 다른 계단의 '잉어 그림'은 또 다른 주민들이 없앴다. 이들은 나란히 경찰에 입건됐다.
주민들간 반목마저 심해졌다. 관광객이 몰려 매출이 늘어난 인근 상인들, 접근성이 높아 부동산 가격이 오른 곳의 주민들은 벽화를 반기며 "지워진 그림들을 복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수혜에서 벗어나 있는 주민들의 불만은 풀 곳이 없다. 사생활 침해와 각종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수고로움을 보상받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복구는 커녕 나머지 그림도 지워버리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관광객들이 주민들의 고충을 헤아려 '주거지 관광' 예의를 지키는 건 기본이다. '기분 내고 싶은' 마음을 조금만 누르고 예쁜 벽화만 사진에 담고 큰 소리로 떠들지 않거나, 낙서를 하지 않는 등이다. "벽화 훼손 주민을 이해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이유를 관광객 모두가 곱씹어봐야 한다.
여기에 마을의 '상업화'에서 소외된 주민들을 달랠 수 있는 대안도 고민해야 한다. "손해는 나만 본다"는 불만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벽화 실종 사건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법 마련을 위해 주민들과 관계 당국, 행정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