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범죄 방지법]① 혐오가 범죄로 되기까지

[혐오범죄 방지법]① 혐오가 범죄로 되기까지

박보희 기자
2016.05.31 09:00

[the L리포트] "혐오표현, 폭력행동 돌변할 수 있어…대안 마련해야"

강남역 10번 출구
강남역 10번 출구

서울 강남역에서 여성이 살해당했다. '여자들이 무시해서' 죽였다는 가해자의 말은 곧 여성혐오(여혐) 논란으로 번졌다. 경찰은 서둘러 이번 살인을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정의내렸다. 관련 기사에는 '강제 입원시켜라'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경찰의 발표로 혐오의 대상은 정신질환자로 옮겨졌다.

경찰이 인정한 살해 동기가 정신질환인지 여성혐오(여혐)인지는 더이상 핵심이 아니다. '혐오'가 '범죄'로 이어진다는, 이미 수없이 발생했지만 다수가 무관심했던 사실은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표현으로 강남역 10번 출구를 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혐오범죄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법적 정의조차 제대로 내려져있지 않다. 혐오는 어떻게 범죄가 됐을까.

한국에 혐오범죄는 없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23일 "특정 대상을 겨냥한 범죄사례가 국내에 축적된 것은 없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혐오범죄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정확한 코멘트는 한증섭 서초경찰서 형사과장이 한 말이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성혐오 범죄는 학술·전문적인 부분도 있고 처음 접해보는 용어라 정확하게 입장을 표명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혐오범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는 상황이다. 한 과장의 말은 '무엇이 혐오범죄인지 정해져있지 않으니 범죄도 없다'는 뜻이 된다. 당연히 현황 파악도 안된다.

혐오범죄는 동기를 근거로 정해지는데 현재 경찰청 범죄 통계에서 범행 동기는 물질적 욕구, 사행심, 보복, 가정불화, 호기심, 유혹, 우발적, 현실불만, 부주의 등으로 구분된다. 혐오는 동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혐오범죄의 또 다른 말…'증오·편견' 범죄

혐오범죄에 대한 대책을 찾기 위해서는 혐오범죄에 대한 정의부터 필요하다. 미국은 혐오범죄에 대해 주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인종, 종교, 성적지향, 민족과 국적, 신체장애 등에 관한 편견이 동기가 돼 저질러진 범죄'로 정의한다.

지난 1990년 제정된 미국의 '증오범죄통계법'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에 의해 증오범죄가 일어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범죄의 동기가 대상에 대한 '편견'에 있다. 그래서 혐오범죄는 해석에 따라 증오범죄, 편견범죄로도 불린다.

편견은 '대상에 대해 근거 없이 가진 치우친 사고나 견해'를 말한다. 범죄에서 편견은 '근거없는 치우친 부정적 감정과 평가'로 해석된다. 혐오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대상을 미워하고 싫어함'이다.

이 의미의 차이에서 여혐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한다. '여자는 남자가 보호해야 할 존재'라는 말에서 누군가는 "여자가 좋아서 보호해주겠다는데 이게 왜 혐오냐"라고 말하지만, 반대쪽에서는 "여자는 남자에게 보호나 받아 하는 약한 존재라는 편견인 혐오"이라고 응답한다. "남자들은 여자가 좋아서 환장하는데 어떻게 혐오냐"라는 반발에 "여자를 성적 도구로만 보고 남자와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견이 담긴 혐오"라고 지적한다.

'혐오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측은 '싫어함'이라는 의미에 방점을 둔 반면, '혐오다'라고 주장하는 측은 '편견'에 집중한다. '혐오'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혐오가 '맞다' '아니다'의 판단이 나뉜다.

문제는 한번 자리잡은 편견은 바뀌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저서 '편견의 본질'에서 "편견은 한번 고착화되면 이후 올바른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강화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제거되기 어려운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가치판단이 아닌 심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혐오'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내 생각에 편견이 있다'로 연결하기가 힘들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현실에서 내제화 된 여성에 대한 혐오가 대중문화라는 이름으로 유포되면서 왜곡돼 고착돼 왔다"고 말했다. 이미 생활 속에서 '사실'로 자리잡은 편견은 그것이 편견인지 스스로 알아채기가 힘들다.

혐오범죄…'편견으로 생긴 혐오가 동기인 범죄'

경찰은 강남역 살인 사건의 원인을 '조현병'으로 정의내렸지만, 정신병력과 혐오 동기는 서로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최응렬 동국대 교수의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에 의한 증오범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증오범죄자 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범죄자 60%는 약물남용, 20%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는 '정신질환 전력이 있는 자가 저지른 혐오범죄'로 정의될 수 있다. 정신병이 있다고 범죄 동기인 '혐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정신질환자만 혐오범죄를 일으킨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총범죄자 중 정신장애인 비율은 0.3%에 불과하다.

혐오범죄의 정의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국에 혐오범죄가 없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당장 지난 2004년 '여자들이 몸을 함부로 굴린다'는 이유로 20여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유영철 사건이 있었다. 혐오범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혐오범죄가 발생해도 혐오범죄인지도 모르고 넘어갔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

'혐오표현'이 '혐오범죄'로…대안 마련 시급

혐오범죄에 대한 대응이 시급한 이유는 이미 만연한 '소수자 혐오' 표현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여성뿐만이 아닌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약자를 상대로 한 혐오 표현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제이슨 장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 등이 발표한 '인터넷과 인종증오범죄' 연구에 따르면 인종차별 의식이 강한 지역에 인터넷 연결이 늘어날수록 증오범죄가 함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인터넷의 인종차별적 콘텐츠들이 개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인종차별 의식을 부추겨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한다. 인터넷을 통해 지지받고 강화된 '혐오'가 범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은 지난해 11월까지 인터넷 상 '차별·비하' 등 혐오표현 1059건을 심의해 833건에 시정요구를 했다. 이는 2013년 622건, 2014년 705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 인종이나 성별, 출신지역, 장애 등을 비하한 표현들이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 분석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블로그.트위터 등을 분석한 결과 여성혐오 표현은 월 평균 8만회에 달했다. 남성혐오 글은 6월 1달간 7596건으로 집계됐다.

혐오표현의 증가는 폭력 등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고든 올포튼은 편견에 빠진 사람이 보이는 행동을 △ 적대적인 언어 사용 △ 따돌림과 같은 회피 △ 고용 교육 등 기회를 배제하는 등의 차별 △ 물리적 공격 △ 대량학살 등 멸종 등 5가지로 나눈다. 혐오 표현은 첫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조철옥 제주국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편견에 따른 행동은 순서대로 이동하지는 않지만 적대적 언어 행동이 살인이나 폭력 같은 물리적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 같이 갑자기 행동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 상황도 혐오를 부추기는 요소 중 하나다.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증오범죄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제적 곤궁기 때 소수집단은 경제적 곤경의 원인으로 취급됐고, 이런 분위기가 곧 증오범죄의 피해자를 낳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인터넷 포털 등에서는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그 탓을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에게 돌리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12년 발간한 '증오범죄의 실태 및 대책에 관한 연구'에서 665명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증오범죄피해를 조사한 결과 1.1%(7명)이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말이나 행동으로 위협을 당한 경우는 2.4%(16명)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피해조사결과에서는 0.4%만이 폭행 상해 등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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