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으로 드러난 김기춘의 '검은 손'…입 다문 두 기관

'비망록'으로 드러난 김기춘의 '검은 손'…입 다문 두 기관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김종훈 기자, 이경은 기자
2016.12.1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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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살롱<145>]김기춘 '모르쇠'에 두 기관도 입장 내놓지 않아…비망록 진실로 드러날 경우 사법부 전체에 타격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결과 발표하는 언론노조. /사진=뉴스1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결과 발표하는 언론노조. /사진=뉴스1

법조계가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으로 술렁이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사법부 및 변호사 단체를 사찰했다는 정황이 비망록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최심부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동을 했다면, '최순실 게이트'와는 별개의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이 의혹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영장판사부터 헌재까지…곳곳에서 보이는 '검은 손'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조 등은 김 전 수석의 비망록 중 법조계와 관련된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발표에 따르면 김 전 수석의 2014년 9월4일자 비망록에는 '법원영장-당직판사 가려 청구토록'이라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평일에는 영장전담판사가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하지만 주말에는 당직판사가 결정합니다. 민변은 이같은 기재가 "청와대가 영장 당직판사 명단과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가 개별 법관의 성향을 분석해왔으며 근무일정 역시 사전에 모두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틀 후인 9월6일자 비망록에는 더 심각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견제수단 생길때마다 다 찾아서-검찰입장'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갑일시에만' '법원 지도층과의 현하(現下) communication 강화' '법원도 국가적 행사 때 국가안보에 책임있다는 멘트 필요' 등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법원을 '길들일' 대상으로 봤다는, 헌법이 규정하는 3권분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취지의 내용입니다.

9월22일자에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개진한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 방안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이라고 적혀 있었고 김 부장판사는 세달 뒤인 12월, 2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았습니다.

헌재 역시 빠지지 않습니다.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당시 청와대가 결론을 이틀 전 알고 있었던 정황이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서 드러납니다. 2014년 12월17일자 비망록에는 '정당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 지역구의원 상실 이견-소장 의견 조율 중(금일). 조정 끝나면 19일, 22일 초반'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헌재소장이 청와대와 의견을 조율했다는, 헌재의 독립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자료입니다.

이 외에도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세월호 유족 측 변호사의 이력을 주시한 정황,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에 애국단체 관여가 요구된다거나 보수법률단체 및 변호사단체를 활용해야 한다는 기록도 있었습니다.

'검은 손' 김기춘이라는데…"나는 모르는 일"

이 논란의 중심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있습니다.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의 발언임을 알 수 있는 장(長)이라는 표시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이같은 일이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입니다.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이같은 일이 이뤄졌다면 직권남용 등 현행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 시각입니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이 증거로 사용된다면 김 전 실장의 혐의가 충분히 입증될 수 있다고 합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법정에서 이뤄진 진술만을 증거로 삼습니다만 증인이 사망하는 등 진술이 불가능할 경우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진술 또는 작성됐다고 인정되면 증거로 인정됩니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 대해 특신상태가 인정되면 증거로 쓰일 수 있고, 이 경우 김 전 실장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비망록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부인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7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김 전 실장은 "비망록을 직접 본 일이 없고 누가 작성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회의를 하다 보면 장부를 작성하는 사람의 주관적 생각도 가미돼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간혹 제 지시도 있었겠지만, 장이라고 기재돼 있다고 해서 그게 모두 다 저의 지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또 "청와대 수석회의는 비서실장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회의가 아니다"면서 "거기 적힌게 전부 실장이 하나하나 지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모두 비망록의 증거능력을 부인해 혐의에서 빠져나가려는 수로 읽힙니다. 이미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특검팀이 자신에 대한 수사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형사처벌만은 피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입니다.

김 전 실장과 관련된 의혹은 이제 특검 조사로 밝혀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조성래 언론노조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청와대 수석을 모아놓고 지시한 사람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인데도 그는 국회 국정조사에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김기춘을 포함해 민주공화국을 훼손한 일당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용한 사법부…아직도 정권 눈치보나

김 전 실장과 함께 하나 더 짚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청와대로부터 간섭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사법부와 헌재입니다. 법원행정처장은 '법원 길들이기'는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일선 판사들에게 해명했습니다. 헌재도 '사전에 정당해산 결과를 유출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드러난 사실만 보면 이들은 현 정권의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권이 사법부를 사찰했다'가 아닌 '사법부가 정권에 동조했다'는 쪽으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얽혀있는 상고법원, 재판관 인사권 등을 보면 이 의심은 설득력이 없지 않습니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법관과 재판관들이 지켜야할 가장 큰 가치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 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됐고, 법원, 헌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중입니다.

두 기관은 특검이 비망록을 '허위'라고 결론내리길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저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 하는지, 우려가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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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성 기자

2011년 입사해 사회부 법조팀, 증권부, 사회부 사건팀, 산업1부 자동차팀을 거쳐 현재는 정치부 국회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양성희 기자

머니투데이 양성희입니다

한정수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법조팀장 한정수입니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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