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회생법원 찾는 사람들]①

"먹고 살 돈도 없는데 회생이라니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달 18일. 식자재 도소매업자인 김모씨는 법원으로부터 개인회생 폐지 결정문을 송달받았다. 김씨 스스로 "회생을 포기하겠다"며 낸 개인회생 취하 청구가 법원에서 인용된 것이다.
50대 가장인 김씨가 서울회생법원의 문을 두드린 건 지난 2017년 11월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빚을 갚지 못하다가 개인회생 절차를 알게 됐고 이듬해 4월10일 법원으로부터 개시 결정을 받았다. 김씨의 월 평균 수입은 150만원 정도로, 이 중 생계비를 제외한 75만원을 채권자들에게 분배해 60개월간 갚는 조건이었다.
이후 김씨는 26개월간 성실하게 빚을 갚아왔지만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하루에 단 한 건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서, 지난달 2일 결국 폐업신고를 했다. 코로나 사태로 시작된 극심한 경기침체가 개인의 '패자부활 의지'마저 꺾은 셈이다.
'코로나 불황'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파산 승인을 받기 위해 법원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26일 대법원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1월부터 3월까지 전국 법원 파산부에 들어온 법인 파산신청 건수는 252건(누계)으로 해당기간 역대 최고다. 회생 신청에서 탈락하거나 아예 회생 신청을 포기하고 파산 신청을 바로 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1~3월 누적 기준으로 법인 파산신청 건수는 2016년 143건, 2017년 163건, 2018년 180건, 2019년 200건으로 최근 5년간 꾸준히 늘었고, 올해는 전년 동기 대비 26%(52건) 급증했다.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 발생 이후 소비 부진이 계속되면서, 견디다 못해 사업을 접는 경우가 늘고 있는 셈이다.
월별로도 지난 1월 파산 신청건수는 71건인데 비해 2월 80건, 3월에 101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3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66건)보다 53%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산이 경기침체에 뒤따른 후행적 성격을 띠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파산행렬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회생법원 관계자는 "코로나 타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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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연간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2018년 806건, 2019년 931건에 이어 올해는 이런 추세라면 1000건을 훌쩍 넘길 전망이다. 개인 파산 신청도 올들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1월 3252건에서 2월 3715건, 3월 4275건을 기록했다.
회생 신청은 오히려 줄었다. 회생합의사건(법인회생) 신청 건수는 1~3월 누적 기준으로 지난 2018년 223건에서 지난해 217건, 올해는 201건이다. 개인회생 신청 건수도 같은 기간 기준으로 지난해 2만3637건에서 올해 2만2248만건으로 감소했다.
장래에 계속 또는 반복해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신청할 수 있는 회생과 달리, 파산은 채권자의 동의와 채무 일부 면책을 전제로 사업을 접거나 본인의 재산이나 권리를 모두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최후의 수단이 될 수 밖에 없다. 누구라도 회생의 길을 걷고 싶겠지만 채무재조정을 통한 채무상환 능력을 입증해야 가능하다.
기업 자문·회생을 전문으로 하는 조윤상 변호사(법무법인 시헌)는 "회생 신청이 줄고 파산 신청이 늘고 있는 것은 회생을 이용할 생각조차 못하고 바로 파산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라며 "실제로 최근 파산 사건들을 인터뷰 해보면 이미 늦어 회생이 어려운 사례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회생 절차 승인을 받아 채무를 갚아가던 사람들 가운데 변제금 납입을 유예해달라는 요청도 빗발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기 불황이 깊어지면서 계획했던 채무상환을 이행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한 직장인은 법원 게시판에 "지난해 7월 개인회생 인가 결정으로 매월 변제금을 갚고 있는데 올 2월부터 회사 재정이 악화됐다"면서 "유급휴가로 월급의 70%인 200만원만 받는데 변제금이 매달 167만원이다. 여기에 월세만 50만원"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민원인은 "코로나19로 뜻하지 않게 회사가 휴업하면서 단기 실직됐다"며 "최소 1년 이상 성실하게 납부한 개인회생자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법원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도 채무 상환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결국 파산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 관계자는 "채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아 파산 승인 조차 못받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경기불황이 본격화될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