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블리]"진술 신빙성이…" 성범죄 판결 가르는 그들의 한마디

[검블리]"진술 신빙성이…" 성범죄 판결 가르는 그들의 한마디

오문영 기자
2020.05.02 07:00
/사진=이지혜 기자
/사진=이지혜 기자

성폭행 사건은 대개 목격자나 폐쇄회로(CC)TV가 없는 은밀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탓에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검찰이나 법원은 피의자나 피해자, 사건 관계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유무죄 여부를 따져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사람들의 진술 신빙성은 누가 어떻게 판단할까. 피해자가 사건의 충격으로 일관된 진술에 어려움을 겪거나, 피해자가 아동·지적장애인이라면 이들의 진술은 어떻게 봐야할까.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대검찰청은 2006년 진술분석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대검 과학수사부 법과학분석과에는 12명의 '진술분석관'이 근무하고 있다. 진술분석관은 일선 검찰청에서 의뢰받은 사건의 피면담자(피의자·피해자, 참고인 등)를 대상으로 직접 면담을 실시, 확보된 진술의 신빙성을 분석해 감정서를 제출하는 것을 업으로 한다. 감정서는 신뢰성을 높이고자 3명의 진술분석관이 각자 내놓은 분석을 종합해 작성된다.

감정서는 법원에 제출돼 추후 판결의 증거로 기재된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7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2019고합36).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 모순되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 중 하나로 '대검찰청 진술분석관 3인이 작성한 보고서에 피해자의 진술에 대해 '진술의 신빙성을 지지하는 준거가 다수 반결되고, 상황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세부정도들을 포함하고 있다. 피해 사실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는 취지로 기재돼 있다'고 판시했다.

진술분석관들이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 가해자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9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초등학교 교감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여기서 '피해자가 B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커서 피해 횟수나 내용이 과장됐을 수 있다'는 대검 진술분석관의 분석 등이 증거로 채택됐다.

대검에 따르면 2015~2017년 진술분석실이 분석한 849건의 사건 중 진술분석 결과와 검찰처분 및 법원판결의 일치도는 90%에 달한다. 진술 분석결과 '신빙성 있음'으로 판단되는 경우는 절반보다 조금 높다. 대검에서 2019년에 진술분석을 실시한 대상자 291명 중 '신빙성 있음'은 52.4%(131명)으로 가장 많았다. '신빙성을 확인할 수 없음'은 119명(47.6%)이었고, 기타(불실시 등)가 41명이었다.

일각에서는 진술분석관들이 진술을 분석하고 증거로 채택되는 감정서를 작성하는 것을 '정말 과학적이라 볼 수 있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진술분석관들은 SVA(Statement Validity Assessment), CBCA(Criteria Based Content Analysis) 등 분석기법을 통해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데, 국내를 비롯 해외에서도 기법의 신빙성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CBCA 기법은 '논리적 구조', '세부묘사의 양', '본인 진술에 대한 의심' 등 19개 준거를 바탕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한다. 대부분 연구에서 '피해집단'(실험집단)이 '가짜집단'(비교집단)보다 개별 준거에서 높은 총점을 받긴 하지만, 연령·면담 횟수·면담 방식·평가자의 훈련 정도 등 여타 고려돼야할 경우의 수가 많다. 평가자 별로 분석결과가 다른 점도 그 신빙성에 의심을 더한다.

진술분석관이 제대로된 전문가 양성 교육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느냔 문제도 제기된다. 2014년 1월에 시행된 대검 진술분석관 채용공고를 보면 '응시자격요건'으로는 '심리학·아동학·사회복지학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만이 요구된다. 채용 이후엔 대검 프로그램에 따라 단 6개월의 교육이 이뤄진다. 교육 프로그램은 이론 및 실무(면담 프로토콜 실습·결과통보서 작성·공개 사례회의 및 슈퍼비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예현)는 "진술분석관들이 내는 보고서는 감정서, 즉 증거서류가 된다"며 "형사소송법에서 감정이란 어떤 분야에 대해 학식이나 경험이 있는 자가 진술한 것을 의미한다. 진술분석관 보고서가 감정에 해당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법리적으로 다툴 필요가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진술분석관의 감정서는 '변호인의 의견서와 같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진술 밖에 없는 사건에서 진술 내용이라도 분석해서 의견서를 제출해볼 필요는 있다"면서 "재판부가 진술 분석 보고서를 무조건적으로 채택하지는 않기 때문에 변호인의 의견서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진술분석기법은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고, 성문법처럼 법전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면서 "이미 재판부도 기법이 맞느냐 틀리냐하는 문제는 넘어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감정서를 과학적인 증거로 여기기 보다는 검찰의 의견서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판결문에 증거로 기재하는 이유는 판결 자체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함"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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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영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오문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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