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가족부가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추진한다고 했다가 9시간만에 철회한 가운데 법률전문가들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범죄자들이 현행법의 맹점을 이용해 처벌을 피해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성범죄 처벌 체계를 뒤바꾸는 것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여가부는 지난 26일 오전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하면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가 같은 날 오후 "소위 '비동의 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밝히자 여가부는 계획 발표 9시간 만에 "비동의 간음죄 개정 검토 계획이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비동의 간음죄는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비동의 간음죄는 20대 국회 때 백혜련·강창일·나경원·천정배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에 미칠 영향력은 크다. 기존 판례에서 상정하지 않은 범죄가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현행 형법 제297조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법원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폭행·협박'이 수반될 때 강간죄를 인정한다는 판례를 따르고 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주장하는 쪽은 그간 보호가 어려웠던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민고은 변호사(법무법인 새서울)는 "지금은 피해자가 성관계 경험이 없거나 피해자가 적극 저항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도 높은 수준의 폭행·협박을 하지 않는 경우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범죄 성립 요건이 '동의 여부'로 넓어지면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 입증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 폭행이 수반되지 않을 때가 많아 강간죄 인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도입이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당장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기존의 행태와는 전혀 다른 성폭력을 인정하는 것인 만큼 도입 후 큰 혼란이 일 수 있다"며 "심도 깊은 검토와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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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청한 법률전문가도 "상대방이 어제는 동의했는데 오늘은 하지 않는다거나, 관계 중 돌연 싫다고 하면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며 "수사기관이 아무런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등을 기준으로 동의 여부를 판단해야 해 법 적용의 명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도 반대 의견을 내면서 "성범죄의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라며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포함해 성폭력범죄 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