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음주운전만큼 위험한 약물운전(下)
③감기약도 위험하다

병원에서 흔히 처방받는 약도 운전을 방해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약물운전 사고가 늘어나는 만큼 처방부터 복약 단계까지 약물운전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약물 운전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오는 2일 시행된다. 단속 대상이 되는 약물은 총 490종이다. '마약류관리법'에 명시된 마약·향정신성의약품·대마 481종과 화학물질관리법상 환각물질 9종이 포함된다.
일상적으로 처방받는 일반 의약품도 예외가 아니다. 감기약이나 알레르기약처럼 졸음을 유발하거나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약물은 상황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도로교통법은 과로·질병·약물뿐 아니라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인 운전이 어려운 경우까지 폭넓게 금지하고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항히스타민제가 꼽힌다. 종합감기약에서부터 아토피피부염까지 광범위하게 쓰이는 항히스타민제는 졸음을 유발한다. 1세대 항히스타민제인 △디펜히드라민 △클로르페니라민 △독실아민 등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특성 때문에 이런 부작용이 흔하게 발생한다. 최근 대한약사회는 법 시행을 앞두고 '운전 주의 약물 리스트'를 발표하면서 해당 약물을 위험도가 가장 높은 '운전금지(레벨3)'에 분류했다.
실제 사고 사례도 있다. 지난 1월 '서울 종각역 택시 돌진 사고' 운전자는 약물 간이 검사에서 모르핀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밀검사 결과 종합감기약을 복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4년 국립중앙의료원 돌진 사고도 비슷한 사례다. 당시 운전자 역시 모르핀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평소 복용하던 약물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병 치료제도 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6년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는 당뇨·고혈압·치매 치료제가 부작용과 지속시간 측면에서 운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인슐린은 혈당을 빠르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저혈당으로 오히려 의식이 흐려지거나 운전 판단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고혈압약도 오히려 저혈압을 일으켜 판단 저하가 일어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약물운전 '빨간불'…"단계적 고지 필요"

일반의약품 복용도 운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사전 고지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약물 운전 위험성과 주의사항을 복약지도서와 의약품 용기·포장에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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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단순 안내를 넘어 체계적인 복약지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감기약도 사람에 따라 개인에 따라 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성분을 모르고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존에 복용중이던 약과 비슷한 성분이 겹치면 영향이 과도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영미 보건의료정책연대 공동대표는 "환자에게 한 번 설명하는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처방 단계부터 반복적으로 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국들은 약물 운전에 해당하는 약물 종류와 허용 농도를 수치화해 명확한 단속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혈중 농도가 법정 기준을 초과할 경우 처벌한다. 우리나라처럼 직선보행·한발서기 등 상태 평가에 의존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영국은 도로교통법을 통해 약물 운전 기준을 구체화했다. 불법 약물과 의료용 약물 등 17종에 대해 혈중 농도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초과하면 '운전 부적합' 상태로 판단한다. 기준은 △코카인 10㎍/L △벤조일렉고닌 50㎍/L △케타민 20㎍/L 등이다. 의료용 약물인 △클로나제팜(50㎍/L) △디아제팜(550㎍/L) 등에도 각각 기준을 정해뒀다.
단속 절차도 체계적이다. 음주·약물 영향이 의심되거나 교통 법규 위반, 사고 발생 시 단속 대상이 된다. 예비 호흡검사 이후 약물 영향이 의심되면 손상검사와 약물 검사가 이어진다.
손상검사에선 경찰이 △동공 반응 △균형 유지 △보행·회전 △한쪽 다리로 서기 △손가락으로 코 짚기 등을 통해 운전 적합성을 판단한다. 이후 타액이나 땀 검사를 통해 약물 반응을 확인하고 기소 절차로 넘어간다.
미국과 캐나다도 '약물 평가 및 분류(DEC)' 프로그램을 통해 약물 운전자를 판별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던 검사 방식을 바탕으로 12단계의 표준화된 평가를 체계화한 제도다.
훈련된 약물 인식 전문가(DRE) 경찰관이 운전자의 신체 반응, 행동, 진술, 생리적 지표 등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7가지 약물 범주 중 원인 약물을 추정하고, 혈액·소변 등 독성 검사로 최종 확인한다.
약물 복용 이후 운전 가능 시간에 대한 기준도 제시돼 있다. 영국과 독일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 복용 후 최대 24시간, 호주는 12시간 운전을 자제하도록 권고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약물 운전 시 '운전 능력 저하'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다만 이번 제도 개정으로 일정 부분 보완이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찰이 약물 측정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신설됐고, 측정 절차도 단계화되면서 기존보다 단속 체계가 정비됐다는 평가다.
운전자는 경찰의 약물 측정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명시됐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규정도 도입됐다. 처벌 수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음주 측정 거부와 동일한 수준이다.
단속 방식도 보다 구체화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운전자 상태를 평가한 뒤 필요 시 타액 등을 활용한 간이 시약검사를 실시하고, 약물 반응이 확인되거나 추가 정황이 있을 경우 혈액이나 소변을 채취해 정밀 감정을 진행한다. 다만 간이 시약검사는 단독 증거로 활용되기 어렵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약물 청정국이라는 인식 속에 대비가 미흡했던 측면이 있다"며 "상황이 달라진 만큼 제도 전반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우리나라에 맞는 혈중 농도 기준은 해외 사례를 단순 적용하기보다 실험 연구를 통해 과학적·객관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며 "기준 마련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약사의 부작용 안내 권고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찰 등 관계 기관이 약물운전 처벌 강화에 맞춰 혈중 농도나 복용 후 경과 시간 등 구체적인 단속 기준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연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오는 2일부터 시행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약물운전 처벌 수위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약물운전 측정 불응죄도 함께 신설됐다.
개정안은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의 운전을 금지한다. 하지만 약물에 따른 혈중 농도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앞서 약물운전도 음주운전처럼 일률적인 수치를 적용할 수 있는지 논의가 지속돼왔지만, 종류가 다양하고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일괄적인 수치를 적용하는 데 어렵다는 이유로 개정안 시행때까지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
모호한 기준은 법원 판단이 엇갈리는 사례로도 이어진다. 공황장애 약을 복용한 뒤 타인의 차량을 운전한 혐의로 적발된 방송인 이경규는 지난해 11월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반면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하고 교통사고를 낸 혐의를 받은 벽산그룹 3세 김모씨는 같은 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기준 마련 나섰지만…'장기간 소요 예상'

관계부처와 전문기관 등이 뒤늦게 과학적인 혈중 농도 기준 마련에 나섰지만 법 정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경찰청은 지난 17일 대한의사협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도로교통공단 등 관계기관과 '약물운전 혈중 농도 기준 도입 및 운전 금지 기준 검토' 연구를 위한 킥오프 회의를 진행했다. 국과수는 단속 약물을 선정하고 국내 검출 빈도가 높은 졸피뎀의 혈중 농도 기준 설정을 우선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도로교통공단은 약물운전자 적성검사 개선 등 관련 연구를 맡는다. 다만 경찰은 이번 연구에 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대한약사회는 운전 시 주의가 필요한 386개 약 성분을 담은 '운전 주의 약물 리스트'를 공개했다. 다만 해당 리스트는 법적 기준이 아닌 참고 자료에 그친다. 약사회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경찰청에 공식적인 지침 마련을 요청한 상태다. 국가권익위원회도 지난해 12월 경찰청과 보건복지부에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노수진 대한약사회 홍보이사는 "약물이 운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객관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약을 먹고 몇 시간 내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혈중 농도가 어느 정도일 때 금지되는지 등 기준 마련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진의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 교수도 "처벌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빨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기준이 없다보니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도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음주운전 시 혈중알코올농도처럼 명확한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