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4월 10일. 경남 창녕군 한 야산에서 불에 탄 채 시멘트로 암매장된 윤모양(당시 15세) 시신이 발견됐다. 가출한 지 26일 만이었다.
시신을 유기한 범인은 20대 남성 3명과 10대 여학생 4명으로 구성된 '김해 가출팸'이었다. 고향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윤양에게 성매매를 강요해 생활비와 유흥비를 마련하고, 가혹 행위를 일삼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겼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윤양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경기도에서 김해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 둘 곳을 찾던 그는 평소 연락하던 남성 김모씨(24)와 가깝게 지내기 시작했다.
김씨는 김해 가출팸과 연결돼 있었다. 당시 부산 한 여관에서 같이 지내던 가출팸 일당은 성매매시킬 대상을 찾고 있었다. 김씨는 윤양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잘 대해주며 환심을 산 뒤 가출을 유도했다.
같은 해 3월 15일 윤양이 집을 나와 가해자들과 함께하면서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됐다. 이들은 울산 한 모텔에 윤양을 감금하고 약 2주간 하루 평균 3차례 '조건 만남'을 하게 했다. 많게는 하루 8번 성매매를 시켜 120만원을 벌었다. 이 수익은 생활비와 유흥비로 탕진했다.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가해자들은 채팅 사이트에 윤양 사진을 올려 성매수 남성을 물색했다. 조건은 '시간당 15만원. 콘돔 착용 필수. 변태 안 됨. 젊은 사람 안 됨. 30대 이상'이었다. 성매매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제압하기 쉽지 않은 젊은 남성을 배제한 것이다.

3월 29일 윤양 아버지가 가출 신고한 것을 알게 된 가해자들은 윤양에게 "성매매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윤양은 아버지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고, 아버지는 이튿날 경찰에 신고하기 전 딸과 함께 교회를 찾았다.
지인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가해자들은 윤양이 교회 갔을 때를 노려 납치하기로 했다. 이들은 윤양이 아버지와 예배 공간이 달라 잠시 떨어진 틈을 타 승용차에 태워 울산 한 모텔로 데려갔다.
윤양 아버지는 "딸이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며 경찰에 4차례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윗선에 이를 보고하지 않았고, 교회 납치 사건을 신고했을 때도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며 수사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더 악랄한 범행을 이어갔다. 윤양이 모텔에서 SNS(소셜미디어)에 접속하자 가해자들은 "우리 위치를 노출했다"며 번갈아 가면서 폭행했다. 남성 가해자들은 여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내 말을 거스르면 똑같이 당할 것"이라며 윤양 폭행에 가담하게 했다.
이들은 조를 짜서 윤양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감시하기도 했다. 한 남성은 "(공범인) 여학생 중 한 명과 싸워 이기면 집으로 보내주겠다"며 일대일로 다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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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에게 '앉았다 일어서기' 100회를 시킨 뒤 중간에 멈추면 때리거나 냉면 그릇에 소주를 부어 마시게 했다. 윤양이 이를 토해내면 토사물을 핥게 했다. 윤양이 "너무 맞아서 답답하니 물을 뿌려달라"고 하면 몸에 끓는 물을 부었다.
지속적인 가혹 행위로 윤양은 이온 음료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혼자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4월 9일 가해자들은 윤양을 승용차에 태우고 돌아다니면서도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윤양은 4월 10일 새벽 12시30분쯤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서 웅크린 상태로 숨을 거뒀다. 사인은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정지였다.
가해자들은 시신을 땅에 묻기로 했다. 이들은 4월 11일 새벽 2시쯤 승용차 트렁크에 시신을 싣고 경남 창녕군 한 과수원으로 향했다. 미리 준비한 삽과 곡괭이로 구덩이를 파서 시신을 넣었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휘발유를 뿌리고 붙 붙여 그을린 뒤 흙으로 덮었다.
그러나 범행 발각을 우려한 가해자들은 다음날 현장을 다시 찾아 시신을 꺼내 트렁크에 실었다. 이들은 윤양 유인을 담당했던 김씨에게 시신 처리 방법을 물었다. 김씨는 모르타르(시멘트 또는 석회에 모래를 섞어서 물에 갠 것)와 빨리 굳는 급결 시멘트를 쓰라고 조언했다. 인근 야산으로 향한 7명의 악마는 시신에 시멘트를 붓고 돌멩이와 흙을 덮어 매장했다.
가해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다. 윤양 사망 9일 만이었다. 이들은 대전 유성구에서 만난 40대 성매수 남성으로부터 금품을 갈취하기 위해 승용차에 태워 집단 폭행했고, 남성이 숨지자 시신을 버리고 도주했다.
현장에 다시 나타난 가해자들은 잠복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윤양 실종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고, 처참하게 훼손된 윤양 시신이 발견되면서 끔찍했던 범행이 세상에 드러났다.

7명 모두에게 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주범이었던 이모씨(25)는 살인과 시체유기 등 19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가해자들은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이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여학생들은 자신들도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며 "오빠들이 시켜서 했다"고 진술했다.
2015년 12월 대법원은 이씨와 허모씨(24)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나머지 남성 이모씨(24)는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윤양 가출을 유도했던 김씨는 3년을 복역하고 풀려났다.
재판부는 이씨 등에 대해 "피고인들이 아직 20대 중반"이라며 "교화 여지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사형에 처하기보다 수감 생활을 통해 잘못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여학생 4명 중 2명은 장기 9년, 단기 6년을 선고받았다. 중학생이었던 나머지 2명에게는 장기 7년, 단기 4년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남자 피고인들은 여자 피고인들보다 나이가 10살 정도 많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며 "피해자 사망 후에는 범행 발각을 염려해 여자 피고인들을 감시하고 성매매를 강요했다. 여자 피고인들은 '가해자 겸 피해자'라는 이중적 지위를 겸유했다"고 밝혔다.
여학생들은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다. 이씨 2명은 현재 복역 중이다. 허씨는 지난해 1월 교도소에서 병사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