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강간 목적 살인혐의 입증할 '리얼돌' 폐기 논란
"비인륜적 중대범죄 가족 면책 타당한가" 지적 잇따라
정성호 장관 "재산범죄선 폐지… 개선부분 검토 필요"

일면식도 없는 여고생을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혐의를 받는 장윤기(23)의 부친이 아들의 범행과 관련된 증거를 없앴지만 현행법상 처벌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형법상 친족 특례규정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에서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장씨는 경찰 수사단계에서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취지로 주장했고 경찰은 장씨에게 살인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보완수사로 장씨의 범행동기가 성범죄였다고 볼 증거와 정황을 추가로 확보했다.
검찰은 단순살인혐의로 송치된 장씨의 죄명을 강간목적 살인혐의로 바꿔 재판에 넘겼다. 같은 살인사건이라도 범행목적에 따라 피고인이 받을 수 있는 형량의 범위가 크게 달라진다. 단순살인은 형량 하한선이 징역 5년이지만 강간목적 살인죄는 무기징역 또는 사형만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직 경찰 간부인 장씨의 아버지가 아들의 범행동기와 관련된 증거인 리얼돌과 휴대폰을 폐기해 실물로 확보하진 못했다. 리얼돌은 인간의 신체와 흡사하게 제작된 성인용 전신인형이다. 검찰은 해당 물품들이 장씨의 범행동기가 강간이었음을 밝힐 주요 증거라고 본다. 하지만 장씨의 아버지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 형법 제155조는 타인의 형사사건과 관련한 증거를 인멸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5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친족이나 동거가족이 가족을 위해 증거인멸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 특례규정이 있다. 검찰은 해당 규정을 근거로 장씨의 아버지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족 특례규정은 가족에게 가족의 처벌을 돕도록 강제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한 70년 넘은 규정이다. 한 법조인은 "국가가 부모나 배우자, 자녀에게 수사협조를 강요하는 것은 인륜과 가족관계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있다"며 "가족을 숨겨주거나 도와주고 싶은 심정까지 형벌로 다스릴 수 있느냐가 쟁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선 살인·성범죄 등 비인륜적 중대범죄에서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증거인멸죄를 면책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SNS(소셜미디어)에 "지난해 가족간 절도와 사기 등 재산범죄의 처벌을 면제하던 '친족상도례' 규정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폐지됐다"며 "친족 특례 역시 개선돼야 할 부분은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증거인멸죄가 보호하려는 법익은 사법절차의 정상작동"이라며 "진술거부나 소극적 비협조와 달리 증거를 물리적으로 없애는 행위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길을 막는다"고 밝혔다. 이어 "증거를 없앤 사람이 현직 경찰관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라며 "일반시민보다 수사절차와 증거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피할 수 있다면 법감정과 제도 취지 사이의 간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