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갈등에 시위도구화… 원색적 문구 필터없이 거리로
배재고 앞 수거 화환 122개… 회수·관리 책임 '사각지대'

야구부의 5·18민주화운동 조롱 논란이 불거졌던 배재고 앞에 100개가 넘는 화환이 배달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축하와 애도에 쓰이는 화환이 정치적 갈등현장에서 세를 과시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모습이다. 과격한 문구가 별다른 검수 없이 거리에 노출되고 설치 이후 관리책임도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13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까지 배재고 앞에서 수거된 화환은 총 122개다. '역사를 망각한 배재고' 등 원색적 비난이 담긴 근조화환이 잇따라 놓이자 보수성향 인사들의 맞불성 화환도 등장했다.
화환이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다. 당시 정부와 대립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대검찰청 앞에 줄지어 놓였다. 이후 지지와 항의의 메시지를 담은 화환은 정치적 갈등이 불거진 현장마다 잇따라 등장하며 의사표현 수단으로 확산했다. 수요가 늘자 '시위화환'을 별도상품으로 판매하는 업체도 생겼다.
문제는 화환의 문구가 업체에서 별도로 확인되지 않고 주문내용 그대로 제작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과격하거나 모욕적인 표현도 아무런 제약 없이 거리로 나온다. 화환업체 관계자는 "주문자가 보내온 문구를 그대로 복사해 리본에 붙인다"며 "업체가 따로 내용을 제한하거나 수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설치 이후 화환을 관리하거나 회수할 책임도 명확하지 않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화환을 배달하고 설치한 뒤에는 회수까지 책임지지 않는다"며 "주문자에게 해당 장소에 설치할 수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달라고 안내한다"고 했다.
배재고 앞 화환도 한동안 방치되다 결국 구청이 수거했다. 통행을 방해한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강동구청은 도로법상 불법적치물 정비규정에 따라 화환을 치운 것으로 파악됐다.
수거한 화환은 원칙적으로 소유자에게 통보한 뒤 찾아갈 때까지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설치된 화환만으로는 주문자나 소유자를 확인하기 어렵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수거시점에는 화환을 배달·설치한 업자들도 이미 떠난 상태여서 소유자에게 통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통상 한 달 정도 보관한 뒤 찾아가지 않으면 폐기한다"고 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위화환은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을 물리적 공간으로 가져와 정치적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내는 방법"이라며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문구는 모든 청소년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회수하지 않는 행동 역시 무책임하게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