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이인호·권인규 선생 후손 인터뷰
"독립운동가 후손 알게된 이후 인생 전환점"…"독립유공자에 더 많은 관심 기울였으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반전돼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독립유공자 후손인 원희정씨(23)와 홍우진씨(25)는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진행한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선조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에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가족사를 넘어 삶의 태도와 진로를 바꾼 전환점이 됐다.
원씨는 안동 이인호 선생의 후손이자 퇴계 이황·이육사 선생의 가문으로 이어지는 진성 이씨 후손이다. 홍씨는 강원 강릉 지역에서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나선 권인규·권종해·권기수 선생의 대를 이었다. 권인규 선생은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 활동의 당위성을 알리는 '창의포고문'을 발표한 인물이다.
원씨에게 2022년 3월25일은 잊을 수 없는 날로 남아 있다. 2003년생인 원씨는 스무살이 되던 해 큰아버지로부터 이인호 선생의 표창장을 전달받으면서 자신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된 뒤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원씨는 "안동에 있는 '나라를 빛낸 100명의 위인' 비석에 선조의 성함이 적힌 것을 보고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했다"며 "그때부터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발표와 노래, 운동 등 해보고 싶던 많은 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일상을 버티는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홍씨에게도 선조의 독립운동은 삶의 기준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중학생 때 처음 집안의 독립운동 역사를 접한 뒤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겠다'는 다짐을 품고 살아왔다고 했다.
특히 고등학생 시절 다른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함께 길을 걷다 겪었던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홍씨가 무심코 길에 쓰레기를 버리자 함께 있던 한 대학생이 "남들이 보지 않더라도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 게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크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그날 이후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거나 부도덕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선조들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조들의 책임감과 연대 정신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독자들의 PICK!
원씨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해서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번아웃을 호소하는 젊은 세대가 많은 지금 저뿐만 아니라 다른 청년들에게도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개업주의(皆業主義)' 정신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씨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게임으로 구현해 미래세대에 전달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현장에 직접 들어간 것처럼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창업하는 것이 꿈이다.
예를들어 이용자가 김구 선생의 비서 시점에서 독립 운동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당시를 살아갔던 다양한 사람의 시선으로 독립운동을 바라보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홍씨는 "학창시절 역사 교육이 암기과목에 그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다"며 "역사 현장을 재구성해 이용자들이 다양한 시선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독립유공자뿐 아니라 그 후손들의 삶에도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배우 하영의 가족사 논란을 계기로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선조의 역사를 후손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씨는 "친일 행적이 있는 선조를 뒀다는 이유만으로 후손에게 직접 죄를 물을 수는 없겠지만 그 역사를 대하는 데 있어서는 당당하기보다 겸손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친일 행적을 한 선조의 과거를 반성하는 내용의 노래를 꾸준히 발표한 밴드 '양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시도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씨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부나 주거환경 개선 등 독립유공자 후손을 지원하는 사회 프로그램이 있지만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후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국가 차원에서도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반전돼야 할 시점"이라며 "아직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도 많은 만큼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2005년부터 독립유공자 후손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이어온 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로부터 지난해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지난 13일 진행된 흥사단 주최 광복절 포럼에서는 '미래세대의 독립운동 정신 계승'을 주제로 직접 발표에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