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거리 비행에 지쳤음에도 KT 위즈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이드암 에이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고영표(35)가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공을 확인하고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고영표는 최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취재진과 만나 "몸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엄청 무거웠는데 오늘은 괜찮다"고 미소 지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라운드(8강) 진출이란 성과를 안고 지난 16일 오전 귀국했다. 1라운드 C조 최종전에서 2실점 이하 5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한다는 경우의 수를 극적으로 뚫고 미국 마이애미로 가는 전세기를 탔다. 비행시간 포함 나흘이라는 짧은 휴식 뒤 치른 도미니카 공화국과 8강전에서는 7회 만에 득점 없이 10점을 내주며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총출동한 도미니카와 기량 차이도 컸지만,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피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고영표는 "솔직히 미국에 도착하고 이틀 동안 몸이 정말 무겁고 졸렸다. 처음에 일본에서 위트컴이나 (김)혜성이가 몸이 무거워 보였다. 그때 선수들이 시차 적응 때문에 힘들다고 하길래 공감하지 못했는데, 막상 마이애미 가니까 그 말이 정말 공감됐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캐치볼 하는데 몸은 자고 정신만 깨어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전세기여도 좌석도 미끄럼틀 느낌으로 불편한 부분이 있었고 확실히 마이애미가 멀긴 멀었다"고 덧붙였다.

악조건에서도 고영표는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준 선수 중 하나였다. 그는 한국이 0-7로 뒤진 4회말 등판해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블루제이스)-매니 마차도(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오닐 크루즈(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상대했다. 게레로 주니어는 메이저리그 통산 183홈런, 마차도는 369홈런, 크루즈는 60홈런의 강타자.
고영표는 그런 그들을 상대로 주무기 체인지업을 활용해 3차례를 헛스윙을 끌어낸 뒤 삼자범퇴로 무실점 피칭을 했다. 체인지업 7구, 포심 패스트볼 5구로 총 12개의 공을 던졌는데 메이저리그 강타자들도 좀처럼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이에 고영표는 "사이드암 투수의 종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은 그들에게도 생소할 거라 생각해 한 타석 정도는 해볼 만할 거라 여겼다"라고 답했다. 이어 "타자들의 이름값이나 몸값을 생각하지 않고 내 피칭에 집중했다. 그런데 크루즈 선수는 키가 너무 커서(약 201cm) 차원이 다른 타자를 만나는 느낌이라 놀라긴 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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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앞서 있었던 한일전 아쉬움을 완벽히 떨쳐낸 피칭이라 반가웠다. 고영표는 조별리그에서 일본전 선발 투수로 등판해 2⅔이닝 3피안타(3피홈런) 1볼넷 4탈삼진 4실점으로 부진했다.
이때는 포수의 리드에 따라 주무기 체인지업이 아닌 커브를 주로 던졌는데, 홈런만 세 차례 허용하는 등 결과가 좋지 않았다. 고영표는 "본선에 가서 좋았고 일본전을 만회할 기회가 생겨서 더 좋았다. 불펜에 대기하면서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다. 일본전에 커브로 홈런 2개를 맞아 너무 아쉬웠고 커브보단 체인지업을 많이 던져보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체인지업을 많이 던지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던) 일본전이 아쉬워서 체인지업에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고 (좋은 결과가 나와) 리프레시할 수 있어 좋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빅리그 타자들도 속수무책 당하는 모습에 고영표가 더 던졌으면 하는 의견도 많았다. 이에 고영표는 "마음 같아서는 나도 한계 투구 수까지 다 던지고 싶었다. 메이저리그 야구장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들만큼의 대우받으면서 메이저리그에서 굉장한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한 라인업에 있지 않았나. 존경을 떠나서 그런 사람들과 겨뤄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회였기 때문에 한계 투구 수까지 다 던지고 싶었다"고 미소 지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온 고영표는 다시 수원의 자랑이자 KT 에이스로 마음가짐을 새로 했다. 지난 20일 수원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는 KT 유니폼을 입고 처음 등판해 4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였다.
예년과 달리 WBC가 있는 해는 일찍 몸을 만들고 공을 던지기 때문에 선수들이 저조한 성적을 거둔다는 우려가 크다. 하지만 고영표는 지난 대회 기억을 떠올리며 오히려 2026시즌을 기대했다. 공교롭게 처음 WBC에 참가했던 2023년 고영표는 정규시즌 28경기 12승 7패 평균자책점 2.78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때를 떠올린 고영표는 "2023년도는 일본만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미국에 다녀온데다 대회도 더 늦게 끝나서 시즌 준비에 어려움은 있다. 그래도 돌아보면 내가 WBC에 나갔던 때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그래서 몸컨디션을 조금 일찍 올리는 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있다. 피로감을 갖고 시작하지만, 경기 감각적인 부분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올해도 살짝 기대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